부연사에서
조심스레 쪽문을 열고 법당으로 들어서자
세상의 번뇌 모두 떨쳐버리고
물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이치를 되새기라는 듯
폭포 소리가 오히려 크게 들려온다
사랑은 사람을 얼마나 절박하게 만드는가
나는 불제자도 아니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
불전함에 시주 드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
부처님께 지성으로 절을 올린다
내 사랑하는 님은
세상의 백팔 번뇌를 백팔 배례로 풀어내려는 듯
쉬임없이 쉬임없이 머리를 조아리고 있다
나는 안다
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또 나는 안다
님이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보다 더 사랑한다는 것을
쓸쓸한 늦가을 폭포 소리가 내 안을 가득 채울 즈음
진정으로 님을 사랑하는 길은
님의 발걸음을 돌려놓는 것이 아니라
떠나는 님의 발걸음을 축원하는 것이라는 묵언
부처님의 다문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다
그 축원이 내 폐부가 너덜거리는 아픔이라는 걸
묵언을 뒤따르는 부처님의 미소는 모두 헤아리고 계신 것일까
내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
아무리 괜찮다 괜찮다 달래보아도
안에서 소용돌이치며 거꾸로 솟구쳐 오르는 울음
걷잡을 도리가 전혀 없다
*부연사(釜淵寺): 신철원의 삼부연(三釜淵) 폭포 맞은편에 위치한 사찰
(2000년 12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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