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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밖의영상들

맨 프롬 어스(The Man from Earth) - Richard Schenkman. 2007

by 길철현 2018. 5. 28.


[180527]

전 장면이 주인공의 집 안팎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연극으로 만들었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이 영화는, 그럼에도 영화가 먼저 나오고 나중에 연극 무대에서 공연이 되었다. 배심원들이 한 명의 용의자를 두고 어떤 평결을 내릴까를 두고 토론하는 [12 Angry Men]이라는 영화가 배심원실을 배경으로, 배심원들이 만장일치에 이르는 과정을 흥미롭게 그려낸 것처럼, 별다른 이유도 없이 교수직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는 존 올드맨(John Oldman)이 이별 파티에 모인 그의 주변 친구들에게 자신이 석기 시대부터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것(30대 정도에서 노화를 멈춘 채로)을 이야기 해주었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흥미롭게 보여주고 있다.


가정 자체가 비현실적이긴 하지만 만약 그런 사람이 실제로 있다면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을 할까? 그는 다른 사람의 수백 배에 해당하는 긴 세월을 살아왔기 때문에 정말로 다양한 경험들을 해왔다. 반 고흐의 친구였을 뿐만 아니라, 더 거슬러 올라가서는 부처의 제자이기도 했고, 심지어 자신이 예수라는 주장까지 한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한 여성은 그러한 존의 주장을 신성모독이라 비난하고, 다른 사람들도 그의 정신 상태를 의심하는 지경에 이르자 존은 자신의 이야기가 거기에 온 사람들의 반응에 장단을 맞춘 허구라고 발을 뺀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존이 그의 이야기에 강한 의심을 표명하던 나이든 정신과 의사의 아버지임이 드러나고, 이에 충격을 받은 정신과 의사는 급사하고 만다.


전체적으로 이 영화는 비현실적인 가정을 토대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탐구해보는 그런 영화라고 할 수 있는데, 반기독교적인 요소가 강하다. 저예산에다 아주 정적인 영화이지만 사람들의 흥미를 끌게 만드는 것은 비현실적인 착상을 아주 현실적으로 이끌어가는 세부적인 대화의 힘 때문이다. (정신과 의사와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오이디푸스적으로 이 영화를 본다면, 정신과 의사가 존의 이야기에 극도로 흥분하여 그를 총으로 쏘아 죽이려고 위협하는 장면, 그리고 그가 마지막에 급사하는 것 등은, 아버지를 극복하는 것과 관련시켜서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