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홍콩 여행에서 나는 또 많은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고, 배우고, 느꼈다. 올해에는 외국 여행을 세 번이나 다녀왔다. 50 평생을 살면서 외국에 나간 것이 딱 두 번, 그것도 가족들과 함께 간 것이 전부였는데, 올해에는 그보다도 더 많이 그것도 혼자 갔다온 것이다. 갑자기 경제 형편이 나아져서 그런 것은 아니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잠시 밀어두고 삶을 좀 더 향유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일 월 말에 다녀온 영국 여행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황홀에 가까운 경험이었기 때문이리라.
영문학을 전공을 했고 영어도 어느 정도 되니까 큰 어려움은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막상 부딪혀본 영국은 생각하던 것과는 백팔십 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커다란 차이를 보였고, 사람살이의 많은 부분은 옳고 그르고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그 보다는 굳어진 관습이나 문화라는 점도 깨닫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차를 렌트해서 운전을 한 것은 잊을 수 없는 경험이고 다소 무모할 수도 있는 모험이었다.
차를 운행하는 방향은 언제나 오른쪽이라는 현실에 익숙해 있다가 왼쪽 방향으로 운행해야 하는 새로운 현실에 맞닥뜨리게 되자 20년이 넘는 운전 경험도 큰 도움이 안 되고 처음에는 완전 생초보처럼 운전을 해야했다. 차의 오른쪽에 있는 운전석도 이상하고, 맞은 편 오른쪽에서 차가 오면 반사적으로 브레이크에 발이 올라갔다. 와이퍼는 우리처럼 내리는 것이 아니라 올려야 작동이 되었는데 이것은 렌트한 마지막 날인 5일째에도 실수를 반복해야 했다. 하지만 영국에서 오래 운전을 하게 된다면 오른쪽으로 운행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해질 것이다. 펜홀더로 탁구를 친 기간보다 셰이크로 탁구를 친 기간이 더 긴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펜홀더가 더욱 이상한 것처럼.
영국에서의 이 '다름' 경험은 다수 타인들의 생각을 너무 추종할 필요가 없으며, 언제나 주어진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마음가짐,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해주었다.
홍콩 여행은 여동생 집에서 숙식을 해결했고, 또 여동생이 가이드를 해주었기 때문에 영국 여행 때처럼 길을 잃어 헤매고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묻고, 연신 구글 지도를 들여다보고 그런 일은 없었다. 또 홍콩이라는 곳 자체가 그리 넓지 않은 곳인데다가 전체적인 시스템이 영국적인 것이라 상당히 친숙한 느낌을 주었다. 이번 여행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부분은 4일 째 되던 일요일 아침의 홍콩 거리 산책이었다.
동생 집이 있는 [타이쿠싱 역]에서 [홍콩 대학 역]까지 혼자 지하철을 타고 갔다가 홍콩 대학을 잠시 구경하고 도심까지 걸어들어왔는데, 그 때 느낌이 묘했다. 길도 모르고 아는 사람이라고는 동생 가족 뿐인 이곳에서 거의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이 무심히 거리를 걸으면서 사람살이를 바라보는 것, 이해의 당사자가 아니라 사심 없는 관찰자에 가까운 나의 위치가 나에게 굉장한 여유를 주었다. (물론 처음 외국 여행을 갔을 때에는 이런 여유가 없었다. 그 때에도 상하이에 살던 동생 가족을 방문한 것이었는데 아침 일찍 동생 아파트 단지 주변을 한 바퀴 도는 데에도 두려움이 따랐다.)
과일 가게며, 불교와 도교의 물품들을 파는 가게-이 가게에 들어가 그리운 사람에게 줄 물건을 하나 샀다-며, 청계천의 풍물 시장처럼 각종 중고 물품이나 골동품을 파는 가게며, 또 유일하게 발견한 헌책방 - 다른 중고 물품과 함께 헌책도 파는 곳이었는데, 내가 살만한 책은 없었다 - 이며, 또 거리의 공원 - 그 공원에 있는 화장실에는 '공산당 만세'라는 낙서가 적혀 있었다-이며, 장기를 두는 노인들, 신문을 보는 노인에게는 홍콩에서 가장 흔하게 보이는 커다란 자주빛의 꽃이 피는 나무의 이름을 물었는데 안타깝게도 알지 못했다. 토속 신을 모신 사원(보충 -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이곳은 도교 사원이었다. 200120), 향 냄새와 연기가 가득한 그 사원 내부도 독특한 느낌을 주었다.
호기심을 갖고 거리를 걸으며 바라보는 것 이외의 다른 욕망이 없는 상태는 굉장한 여유로움과 함께 자유로움을 주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가 대체로 그런 여유를 준다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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