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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크리스마스에 팔공산 갓바위에 오르다

by 길철현 2016. 12. 25.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체험이 먼저인지 글이 먼저인지 헛갈린다. 글의 눈 위에서 체험이 굴러가는 느낌이다.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내가 그래도 살아있다는 느낌을 준다. 두려움 - 요며칠 전 누군가가 날더러 '비겁하다'라고 말했다. 과녁을 빗나가긴 했지만 이 말은 내 폐부를 찔렀다. 삶과 맞대결을 하지 못하는 것은 비겁함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 보다는 '두려움'이나 '불안'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불안이 두 눈을 부릅뜨고 나를 내려다 보면 나는 무기력한 아기 같은 기분에 빠져든다. 사는 것도 죽은 것도 아닌 그러면서도 굴러가는 삶. 그 와중에도 심장은 뛰고 있고 숨도 쉬고 있고 무력증에서 벗어나야지, 하는 의지도 조금씩 꿈틀 거린다. 차라리, 차라리.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 혹은 부인하면서 혹은 몸부림치면서 왜, 왜, 왜를 외쳐보아도 답은 없다. 아니 답이 없다, 는 것이 정답이다.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살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차라리 이 삶을 떠나고 싶지만, 또 누군가의 말처럼 이 시간 또한 지나 갈 것이라는 생각이 없진 않지만 그 시간은 때로 영겁을 능가한다. 기쁨이 금새 지나가듯, 아픔도 지나가고, 고통도, 고통도,


너무 무겁구나. 내 몸에 산소를, 아니 아주 가벼운 수소를 집어 넣고 나를 공중에 뜨게 만들어 본다.]


한 달여만에 고향 대구를 다시 찾았다. 요즈음 한가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연로하신 어머니가 이제는 서울로 올라오기도 힘들어서 내가 그래도 자주찾아 뵙는 것이 도리라는 생각, 그리고 또 고향에 오면 단추 하나는 더 풀어도 될 듯한 기분도 든다. 내려오는 날에는 중학교 때부터의 친구들과 탁구를 치고 술 한 잔을 했고, 어제는 어머니와 여동생, 조카와 가까운 곳에 나들이도 하고 또 저녁은 요즈음 유행하는 한식 부페에서 배부르게 먹었다.


크리스마스이자 일요일인 오늘, 어머니는 교회로 가고(어머니는 '같이 가자'는 말을 한두 번 건네보지만, 거듭된 실패 때문에 거의 건성이다), 혼자만의 자유로운 시간이 주어졌다. 근 이십 년 동안 마음 속에 품어 왔던 계획, 앞산(모르는 분들은 산 이름이 앞산이니까 동네 야산 정도로 생각하겠지만 해발 5백 미터가 넘는, 팔공산과 함께 대구를 대표하는 산이다)에서 비슬산까지의 능선을 종주하는 것--들리는 말로는 짧게는 여덟 시간에서 열 시간까지 걸린다고 하던데--을 정말 실행에 옮겨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어제는 여동생 앞에서 공언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등산복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상황에서 너무 무리를 하는 것이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고, 탁구를 치다 허벅지 근육이 뭉친 것이 아직 풀리지도 않은 상황에서 장거리 산행이 부상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현실적인 판단이 나를 막았다.


그래서 대신 택한 곳이 그 유명한 '갓바위'였다(이 갓바위에 오르는 것도 우리가 흔히 말하는 '버켓 리스트' 중의 하나이긴 했다). 크리스마스 날 부처님을 찾는 것은 내 안에서 언제나 꿈틀거리는 아마도 '상징 질서의 전복'이겠으나, 그보다는 장거리 산행 대신에 가벼운 산행을 택했고 그 장소가 우연히도? 불교적인 것이라고 말하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조금 더 돌이켜보면 현재 나는 아무런 종교를 믿고 있지 않으나 - 프로이트 교를 믿는가 - 토착화가 덜 된 기독교보다는 그 뿌리가 훨씬 깊은 불교에 대한 반감이 덜한 편이기 때문이기도 하다(솔까말하자면 아무도 몰래 빌고 싶은 소원 하나가 있었던가? 갓바위에 와서야 알게 된 것이지만 갓바위에는 '지극정성으로 빌면 한 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 속설이 있다). 한 때 좋아했던 여자가 불제자여서 그녀의 꽁무니를 쫓아 다닐 때는 부처님께 머리를 조아리며 그녀와 나 사이가 잘 되게 해달라고 빌기도 했다. 


대구를 떠난지가 오래 되어 그 영험함이 전국적으로 유명한 팔공산 갓바위로 가는 길도 알기가 힘이 들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어떻게 어떻게 찾아가긴 했으나 대구쪽에서 올라가는 길은 나와 있지 않아서, 멀리 하양까지 간 다음 반대편에서 올라왔다(이 반대편에서 오르는 코스가 짧아서 - 내 걸음으로 2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하양 초등학교 앞에서 갓바위로 가는 버스에 오르고 보니 대부분 갓바위로 가는 등산객들인 듯한데 하나 같이 할아버지 할머니이다. 노인분들만 기도를 드리는가 했으나 조금 생각을 더 짚어보니 중*장년층을 비롯하여 좀 젊은 사람들은 대체로 자가용으로 올 것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내 낡은 아반테가 속도를 올리면 하도 덜덜거려서 그렇지, 그렇지만 않았다면 나는 차를 가지고 내려왔을 것이고, 그랬다면 나 역시도 자가용으로 이곳으로 왔으리라).


버스가 거의 산중턱까지 올라가고 거기서부터 사람들과 뒤섞여 가파른 경사를 쉬지 않고 올라갔다(크리스마스라고 하지만 마침 일요일이고 날씨도 많이 풀려서 갓바위로 올라가는 길은 남녀노소할 것 없이 사람들로 가득했다. 워낙 유명한 곳이라 사시사철 사람이 많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운동으로 단련이 되어서 경사가 상당히 가팔랐음에도 쉬지 않고 끝까지 한달음에 올라갔다. 또 솔까말하자면 중간중간에 사진을 찍는 가운데 휴식을 취했다고 해야 하나? 




'지극 정성으로 기도를 하면 기적이 일어나 소원성취'를 하게 된다는 안내판을 보는 순간 무릇 종교라는 것이 기복신앙과 결탁하여 사람들을 현혹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분노가 가슴 속에 일어났고,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마르크스의 말도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더 나아가 등산로에서의 사적인 탁발이나 시주는 철저히 금한다고 해놓고는, 갓바위에서는 갓바위와 연결된 사찰의  금동 기와 불사며, 시주며, 공양미며 인등 등등을 독점적으로 걷고 또 판매하는것을 보고 있자니, 기득권은 언제나 반대 세력을 철저히 배척한다는 생각도 함께 일어났다. 그렇지만  갓바위를 바라보며(머리에 갓같은 바위를 이고 있는 이 부처님의 정확한 명칭은 [관봉석조약사여래좌상]이다) 배를 올리거나 가부좌를 한 채 기도를 드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염원을 생각하자 그렇게 속단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마르크스의 말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레몽 아롱의 "공산주의는 지식인의 아편이라는 말도.)


공리주의자로 알려져 있는 존 스튜어트 밀은 [벤담 론]과 [콜리지 론]이라는 글에서, 어떤 면에서는 자신의 사상적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벤담의 지나친 이성중심주의와, 수량적, 도구적 사고를 비판하고, 반면에 사상적으로는 그의 반대편이었다고 할 수도 있는 콜리지의 주장, 일견 모순적으로 보이는 것들, 특히 국가 체제나 종교와 같이 오랜 시간을 두고 지속되어 온 것들에는 그 모순을 넘어서는 더 큰 의미가 있을 수 있음을 강조한 콜리지의 주장을 옹호하여 자신의 사고의 편향성을 경계하는 태도를 보였는데, 그것이 과연 바람직한 자세였는지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


사람살이를 이끌어 온 생각들은 때로는 우리를 구원으로, 또 때로는 파멸로 이끌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래서 때로는 밀턴이 자신의 소네트에서 말했듯이 달려나가지 않고 '서서 기다리는 태도'가 필요한지 모르겠다.

    



이 봉우리에 있는 자연석을 조각하여 만든 이 통일신라 시대의 불상은 다른 불상과는 다르게 육계 위에 갓을 쓴 듯 돌이 하나 얹혀 있다. 저 갓이 상징하는 바는 무엇일까? 인간고의 응집일까? 해탈로 가는 관문일까? 서산마애불처럼 약간은 바보스럽기까지 한 미소는 없고 다소 근엄한 얼굴인데, 세월의 흔적인 듯 왼쪽 윗입술 부분이 약간 깨져서 언청이 같은 느낌마저 준다. 몸에 비해 머리가 다소 크고 몸 부분은 섬세하게 조각한 듯하지는 않다. 예술 작품으로서의 이 갓바위 부처상은 절로 감탄사를 부를 정도는 아니다.


여기까지 왔으니 나도 소원을 빌어나 볼까? 공양미도 시주도 인등도 켜지 않아서 효험이 있기 힘들 겠지만 그래도. 나의 소원은 무엇인가? 내년에는 올해보다 탁구를 더욱 잘 치게 되기를. 논문을 무사히 마치게 되기를. 보다 많은 글을 쓸 수 있기를. 그녀와의 관계가 잘 되기를. 무엇보다 적자 인생에서 벗어나게 되기를. 그런데, 한 가지 소원만 들어준다고 했지. 그렇다면, 이렇게 소원을 바꾸자. 내가 신이 될 수 있기를(신이 되면 다른 소원은 필요 없으리라. 하지만 이 소원은 한 가지 소원의 범주에 들지 않는 것으로 암암리에 약정을 맺었는가?) 좀 더 삐딱선을 타서 내가 태어나지 않았게 해주세요. 소원 따위를 빌 필요도 없게(이것 또한 불가능한 것인가? 이미 일어난 일은 없었다고 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인가?).


 

[중단]

프로이트의 세 가지 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