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콘래드, 조지프

조지프 콘래드 - [나르시스 호의 검둥이](Joseph Conrad - The Nigger of the "Narcissus"). 1897

by 길철현 2018. 11. 8.

[Norton]


[재독 후]

(일단 1독 후의 느낌을 되살려 본다)

콘래드의 작품은 공들여 읽지 않으면 중간에 자꾸 맥락을 놓쳐 버리기 십상이고 또 다 읽고 나서도 별다른 느낌이 없거나, 느낌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어둠의 심연]이 그렇고, [노스트로모]가 그렇다. [어둠의 심연]은 대학원 시험에 대비해서 삼성에서 나온 세계문학전집 번역판으로 허겁지겁 읽었는데(그 책이 어디로 갔지? 남겨 두었어야 했는데, 아마도 버린 듯하다)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노스트로모]는 원문을 읽으면서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부분은 번역본을 참조했는데, 한 번 맥락을 놓쳐 버리면 어떤 상황인지 종잡기가 어려웠다. 참을 인을 머리에 새기며, 이를 악물고 읽어냈던 기억이 난다. (누구는 [노스트로모]가 서양판 [삼국지]라는 말도 했다. 물론 재미있다는 의미에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만큼 많은 인물들과 사건들이 등장한다는 의미에서.)


이 작품은 당시 시력이 급격히 약화되어(2013년) 컴퓨터에서 킨들 판으로 읽었는데,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알 수도 없었고, 무엇보다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이번에 다시 킨들 판을 보니 몇 군데 메모를 남겨 두긴 했다. 그 중에서도 '제임스의 특이성이 그를 특별하게 만든다'라고 적은 구절은 인상적이었다.) 


공책에는 다음과 같은 말만 적혀 있다.


- 주인공도 없고, 중심 사건도 보이지 않아 글이 흥미롭지가 않다. 

- 자신의 일에 열중하는 사람들(선원들)과 일을 회피하는 J. W. 와의 대조.


(재독 후)

[논문에서 직접 다루는 작품은 아니지만 콘래드의 작가 이력에서 초기의 전환점이 된 작품이기 때문에 재독을 했다. 첫 번째 읽을 때보다는 수월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만만한 작품은 아니다.]


이 작품은 우선 콘래드 자신의 선상에서의 체험을 소설로 형상화한 최초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중요성이 크다. 그리고, 이 작품은 또한 콘래드 최초의 영국 소설--봄베이에서 영국으로 귀환하는 영국 상선의 이야기라는 점에서--이라는 점(Oxford)에서 또 의의가 있다. 콘래드 자신 또한, 이 작품을 완성하고 따로 [서문]을 쓸 정도로  이 작품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였다. (지금에 와서는 콘래드의 '소설론'을 담고 있다고 해야 할 이 서문이 더욱 유명하다. 소설에 있어서 관념보다 감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그의 글은 그의 선배들이라고 할 수 있는 플로베르와 모파상의 문학관을 많이 닮아 있다.)


작품을 따라가는 것 자체가 수월치 않아서 내 생각을 제대로 담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그러기 위해서는 이 작품에 좀 더 매달려야 한다). 다만 몇 가지 인상들은 적을 수 있을 듯하다. 먼저 이 작품은 선상에서의 생활을 단순한 모험 소설류의 겉핥기가 아니라, 오랜 선원 생활을 바탕으로, 제대로(authentic) 담아내었다. 헨리 제임스도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콘래드가 아니면 쓸 수 없다고 했으며, 콘래드 자신도 자신 외에는 이 작품을 쓸 수 없을 거라는 자부심을 드러내었다. (그럼에도 Marryat, Cooper, Melville, Dana, (Ames) 등의 작품의 영향력 내지는 상관 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 Wait, Belfast, Podmore, Baker, 선장 Allistoun, Donkin, Singleton 등은 각자의 개성을 잘 보여준다. 특히 배라는 고립된 공간 혹은 공동체에서 선원들이 폭풍우라는 어려움과 맞서 싸우는 가운데 다양한 인물군들의 다양한 대응이 흥미롭다. 물론 이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James Wait는 폐병에 걸린 자신의 상황을 부정하는 가운데(꾀병을 부린다고 스스로를 기만하는 가운데)  배에 묘한 기류가 흐르게 한다. 부정적 인물로 인식되는 이 웨이트는 어떻게 보면 멜빌의 "바틀비"를 연상시킬 정도로 특이한 인물로, 그의 특이성이 갖는 의미를 계속 추찰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시점의 혼재이다. 이 작품은 "우리"라는 시점에서 출발해서 전개하다가, 어느 순간에는 전지적 시점이 되었다가, 마지막 부분은 "나"의 서술로 끝이 난다. 이 시점의 혼란스러움은 이 작품을 이전의 작품들과 구분시켜 주는 큰 특징 중의 하나이다.


이전의 선원 생활을 소재로 한 작품들의 차원을 한 차원 뛰어넘은 듯한 이 작품은 이제서야 그 진가가 나에게도 조금씩 다가오는 듯하다. (그와 함께 멜빌과 콘래드는 비교해서 연구할 만한 작가라는 생각도 든다.)

 


[인용]

-C1

3) Bulwer Lytton - Pelham [싱글턴이 이 책을 읽음. 반문맹인. 선원들 사이에 이 사람 책이 인기]

5) Donkin - He looked as if he had known all the degradations and all the furies.

9) all feel themselves equal before the unconcerned immensity of the sea and the exacting appeal of the work.

10) James Wait - He was naturally scornful, unaffectedly condescending, as if from his height of six foot three he had surveyed all the vastness of human folly and had made up his mind not to be too hard on it.

11) Podmore, cook, 종교적 광신자.

15) 선원의 묘사


- C2

18) 콘래드의 초기 소설 (그리고 후기 소설 중 일부)은 실제 있었던 일을 그대로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 선장 Allistoun이름 거의 안 바꿈.

23) 웨이트가 배 안에 불러온 영향. Belfast는 웨이트에 헌신

26) 싱글턴은 웨이트가 죽을 것이라고 단언. (나중에는 육지가 보이면 죽을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말함.)


- C3

29) Who would be a sailor if he could be a farmer?

30) 일상적 고난, 힘겨움.

41) 폭풍우가 몰아치고 선실에 갇힌 웨이트를 구해 냄

49) 웨이트가 벨패스트에게

You wouldn't call me nigger if I wasn't half dead, you Irish beggar!

57) Is there no rest for us! (폭풍우 후에도 계속 일 할 것을 종용하자)

No rest till the work is done. Work till you drop. That's what you're here for.

- Do or die.

[이 말은 [청춘]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는데, 젊은 시절 콘래드의 모토 중의 하나. 어딘가에서 읽은 기억이 있는데.]

60) 싱글턴 쓰러짐.

62) We were indubitably good men; our deserts were great and our pay small.

- We were oppressed by the injustice of the world, surprised to perceive how long we had lived under its burden without realising our unfortunate state, annoyed by the uneasay suspicion of our undiscerning stupidity.

63) His[Belfast] devotion to Jimmy was unbounded.

74) The man's a man if he is black. 흑인도 어른은 어른이다.

83) 선장 - your best is no better than bad

 돈킨이 선장을  the piece of iron(pin?)을 떨어뜨려 죽이려 함. (의심)


85) He[Wait] was so utterly wrong about himself that one could not but suspect him of having access to some source of supernatural knowledge.

- Through him we were becoming highly humanised, tender, complex, excessively decadent.

86) He influenced the moral tone of our world --

90) 4개월 만에 육지를 처음 봄

91) 돈킨과 웨이트만 있는 공간에서의 일 묘사. 전지적 시점.

95) 웨이트의 죽음. 아버지의 죽음을 연상시키는 면.

99) the boatswain : The chap was nothing but trouble.

104) 서기 : How stupid those sailors are! he thought.

- 선장 - 돈킨 해고

107) Donkin, who never did a decent day's work in his life, no doubt earns his living by discoursing with filthy eloquence upon the right of labour to live.

- Good-bye, brothers! You were a good crowd. As good a crowd as ever fisted with wild cries the beating canvas of a heavy foresail; or tossing aloft, invisible in the night, gave back yell for yell to a westerly gale.


 


[Preface]

(이 글이 예전에는 와닿지 않았는데 지금 다시 읽어보니 - 세 번째 정도 되는 것 같은데 - 콘래드의 예술관(문학관)이 압축된 글이다. 다소 과장된 느낌을 주고 플로베르의 영향을 뚜렷이 느낄 수 있으며, 예술이나 문학이 우리 삶의 진실을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고, 소수의 작가들은 그 그릇에다 진실을 잘 담아서 독자에게 전달한다는 것이 전체적인 인상이다. 그렇지만 굉장히 잘 쓴 글이라는 느낌 또한 지울 수 없다.)


(네 번째로 이 글을 읽고 난 느낌은 플로베르와 콘래드가 하나로 겹쳐서 보이는 그런 것이다. 이 당시의 작가들, 예를 들자면 헨리 제임스 등은 문학이나 예술의 가치나, 그것이 진리의 바로미터가 될 수 있음을 신봉했다. 현재에 와서는 그러한 믿음은 포스트 모더니즘의 영향 아래 어느 분야에도 적용되지 않는다. 예술에의 절대적인 헌신, 형식과 내용의 일치, 예술 혹은 문학을 통해 진리에 도달하고자 하는 신념 등은 플로베르적인 것이고, 좀 더 나아가면 예술지상주의의 신념에서도 멀지 않다.)   




Ian Watt - Conrad's Preface to The Nigger of the "Narcissus" 볼 것. (Norton) 


(145) A work that aspires, however humbly, to the condition of art should carry its justification in every line. And art itself may be defined as a single-minded attempt to render the highest kind of justice to the visible universe, by bringing to light the truth, manifold and one, underlying its every aspect. It is an attempt to find in its forms, in its colours, in its light, in its shadows, in the aspects of matter and in the facts of life what of each is fundamental, what is enduring and essential — their one illuminating and convincing quality — the very truth of their existence.

(진리truth에 대해서 이 당시와 같은 입장을 지금도 이야기할 수는 없으리라. 우리는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해 볼 뿐이다. 그것이 맞아들어지는 듯하면 받아들이고, 상황이 변하여 또 통용이 되지 않으면 바꾸고. 언어에 대해서 예전같은 무게를 둘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것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다. 주에 적은 글)

- Confronted by the same enigmatical spectacle the artist descends within himself, and in that lonely region of stress and strife, if he be deserving and fortunate, he finds the terms of his appeal. His appeal is made to our less obvious capacities: to that because of the warlike conditions of existence, is necessarily kept out of sight within the more resisting and hard qualities — like the vulnerable body within a steel armour. His appeal is less loud, more profound, less distinct, more stirring — and sooner forgotten. Yet its effect endures forever.

- He speaks to our capacity for delight and wonder, to the sense of mystery surrounding our lives; to our sense of pity, and beauty, and pain; to the latent feeling of fellowship with all creation — and to the subtle but invincible conviction of solidarity that knits together the loneliness of innumerable hearts, to the solidarity in dreams, in joy, in sorrow, in aspirations, in illusions, in hope, in fear, which binds men to each other, which binds together all humanity — the dead to the living and the living to the unborn.

(146) Fiction — if it at all aspires to be art — appeals to temperament. And in truth it must be, like painting, like music, like all art, the appeal of one temperament to all the other innumerable temperaments whose subtle and resistless power endows passing events with their true meaning, and creates the moral, the emotional atmosphere of the place and time. Such an appeal to be effective must be an impression conveyed through the senses; and, in fact, it cannot be made in any other way, because temperament, whether individual or collective, is not amenable to persuasion. All art, therefore, appeals primarily to the senses, and the artistic aim when expressing itself in written words must also make its appeal through the senses, if its highest desire is to reach the secret spring of responsive emotions.(예술은 감각에 호소해야 한다는 말도 잘 반추해 보아야 할 말이다. 감각은 그 다음 감정으로 이어지는가? 감정과 이성의 관계는?) It must strenuously aspire to the plasticity of sculpture, to the colour of painting, and to the magic suggestiveness of music — which is the art of arts. And it is only through complete, unswerving devotion to the perfect blending of form and substance; it is only through an unremitting never-discouraged care for the shape and ring of sentences that an approach can be made to plasticity, to colour, and that the light of magic suggestiveness may be brought to play for an evanescent instant over the commonplace surface of words: of the old, old words, worn thin, defaced by ages of careless usage.

[감각을 통해 전달된 인상, 예술은 감각에 호소해야 한다는 말 등은 예술이 우리의 의식보다는 무의식과 좀 더 밀접하게 연결된다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고, "형식과 내용의 완벽한 혼합" 운운은 플로베르의 주장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은 그런 것이다.]

(147) My task which I am trying to achieve is, by the power of the written word to make you hear, to make you feel — it is, before all, to make you see. That — and no more, and it is everything. If I succeed, you shall find there according to your deserts: encouragement, consolation, fear, charm — all you demand — and, perhaps, also that glimpse of truth for which you have forgotten to ask.

[잘 알려진 이 부분도 감각에 호소한다는 위의 말의 연장선상에서 해석해 볼 수 있다.]

(148) To arrest, for the space of a breath, the hands busy about the work of the earth, and compel men entranced by the sight of distant goals to glance for a moment at the surrounding vision of form and colour, of sunshine and shadows; to make them pause for a look, for a sigh, for a smile — such is the aim, difficult and evanescent, and reserved only for a very few to achieve. But sometimes, by the deserving and the fortunate, even that task is accomplished. And when it is accomplished — behold! — all the truth of life is there: a moment of vision, a sigh, a smile — and the return to an eternal rest.

[예술을 통해 삶의 모든 진실을 포착할 수 있다는 믿음을 이야기하는 부분 등은 예술의 가치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Oxford] (246-48)

- Conrad's first English novel (a celebration of the traditions of its creator's adopted homeland)

- Henry James : the very finest & strongest picture of the sea and sea-life that our language possesses

- 줄거리 요약

- the 'respectable bond of a sentimental lie' (이 말은 콘래드 작품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

- The opposition between land and sea values is starkly presented through the pay-clerk's contempt for the crew

- Narcissus호와 다른 배에서의 개인적 체험에 기초한 작품. (하지만 역사를 쓰는 것이 아니라 소설을 쓰는 것임)

- 미국에서의 제목 The Children of the Sea.

- the lack of incident/ its realism 칭찬

- the psychology of mass(Last Essays - Stephen Crane 편 / The Red Badge of Courage

- There maybe better tales of the sea than this, but we have never read anything in the least like it. (CCH 89)

- the value of the book lies in the telling, and not in the events of the tale (90)

- the unstable narrative authority (전지적 - we - I)

- Hawthorne : Wait porvides a focus for Conrad's own ideological contradictions and uncertainties and those of his age. [흑인인 Wait를 중심 인물로 채택한 것] (이 부분은 racism과 관련해서 중요함)

- the story by which, as a creative artist, I stand or fall, and which, at any rate, no one else could have written. A landmark in literature. (편지 5. 145. 1912)


* Wait, James 항목도 볼 것. 이 작품 역시 racism의 문제와 연관. (3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