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콘래드, 조지프/콘래드아프리카제국

[제국주의]해리슨 M. 라이트-- 제국주의란 무엇인가. [1961] (1)박순식 편역. 까치 (Harrison Wright - New Imperialism) 1981

by 길철현 2019. 1. 13.


[인용]


- 서문

(9) 무역업자와 선교사 그리고 탐험가들이 점점 더 정력적인 활동을 벌였음에도 불구하고 전유럽의 일반적인 감정은 1850년이 되면 해외에 대한 여하한 팽창 정책도 반대하였다.

- 1870년과 1900년 사이에 유럽 국가들은 갑자기 그리고 거의 동시에 세계의 광대한 지역에 대한 자신의 지배력을 확대하기 시작

(10) [이 당시] 획득한 영토의 규모도 놀라운 것이지만 그 다양한 해외의 이익을 추구하는 유럽 인들의 침략적인 수법이 교묘하고도 뻔뻔스러웠던 점도 마찬가지로 놀랄 만한 것이었다.

(11) 19세기말의 유럽의 팽창은 세계사의 대사건의 하나

- 19세기말은 단순히 유럽인의 팽창의 시대라기보다는 범세계적인 팽창의 시대. 미국,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및 기타 국가들도 해외 영토를 점령하거나 혹은 점령할 것을 주장.

(12) 죠셉 슘페터 - 제국주의란 한 국가의 편에서 보면 무제한한 경제적 팽창을 향한 맹목적인 성향

레닌 - 자본주의의 독점 단계

레인저 - 서구의 국가들에 의한 다른 세계의 대부분의 착복과 비슷한 것.

(15) 홉슨 - 금융 자본가들의 이익

; 금융계의 거두들은 자기들의 잉여 자본을 보다 유리하게 투자하기를 바랐기 때문에 해외로의 팽창을 소망했다는 것.

(19) 한나 아렌트 - 경제적 및 민족주의적 압력이 19세기 말의 팽창에 기여했음을 인정함과 동시에 이 둘을 통합하여 그 시대 전반을 보다 넓게 평가.  


상충되는 견해들


1. J. 홀랜드 로우즈(Holland Rose) - 팽창의 세 가지 조건 [The Development of the European Nations, 1870~1900]

(23) 유럽인들이 새로운 땅을 개척할 때 보통 다음과 같은 사건 진행이 이루어진다. 맨 처음에는 탐험가들이나 개척자 혹은 선교사들이 온다. 이들이 미지의 땅이나 그곳 사람들에 관하여 어느 정도 밝혀 주면 그 다음에는 상인들이 따라오고, 당연한 순서로 공장이 생기고 거류지가 생긴다. 재산권이나 토지 소유권에 대한 이들 신참자들의 관념은 원주민의 그것과는 너무나 차이가 나기 때문에 분쟁과 다툼이 자주 일어난다. 그러면 군함과 병정들이 현장에 나타나고 영국기나 프랑스 혹은 독일의 삼색기가 게양됨으로써 구질서는 끝장이 난다.

[탐험 정신의 이면에 있는 것 -- 정복욕]


2. J. A. 홉슨(Hobson) -- 제국주의의 한 연구 [제국주의론 볼 것]


3. 레오나드 울프(Leonard Woolf) -- 제국과 상업

(69) 울프는 "제국주의"는 반드시 불가피했던 것은 아니고 자본주의 사업가와 정부의 탐욕으로 인하여 최근의 결과를 가져왔다고 주장

(71) 체임벌린 - 1894년: 현재 문명과 상업에 문을 열고 있는 저 거대한 아프리카 대륙으로 우리의 영향력과 지배를 확대시키기 위하여 모든 합법적인 기회를 이용할 필요성을 현정부와 과거의 정부에 대해 강력히 주장해 왔읍니다.

(72) 필자가 말한 바와 같이 상업의 한 수단으로서 제국을 추구하기 시작하는 국가나 인간은 결국에는 제국 "그 자체"에 대한 미각을 얻게 될 수도 있다. 이는 갈증을 없애기 위한 수단으로 맥주를 마시기 시작한 많은 사람들이 결국에는 맥주에 대한 미각을 얻게 되는 것과 꼭 같다.

(73) 신제국주의의 경제적 본질은 영국보다는 프랑스에서 보다 일찍 감지되거나 받아들여졌다. 이는 프랑스의 통킹 탐험의 동기가 보여 주고 있다. 이 탐험은 프랑스 공화국의 제국적인 활동의 서곡에 해당되는 셈이었고 또한 유럽 국가들이 경제적 목적을 위해 중국을 분할하거나 지배하게 된 첫번째 행위였다. 이 탐험의 주무 장관이었던 줄로 페리는 그 당시 통킹의 소유는 프랑스 인의 적강(Red River) 항해를 보장하고 또한 그 거대한 천연 도로 덕택에 프랑스는 중국으로 뚫고 들어가 중국의 서부 성(Province)들의 상업적 독점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하여 자기 행동을 거듭 옹호했다.

- 특히 1880년과 1890년 사이에는 "식민 정책"의 도당들이 그들의 제국주의에 경제적인 아닌 동기들을 제안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 초창기에는 예컨대 프랑스는 알제리아에서 프랑스 문명의 사명을 완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그러나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의 유럽 문명의 사명에 대한 소망과 신념은 금세기 마지막 10년 동안에는 정책 동기로서의 지위를 급속히 상실했다. 1890년 이후에는 제국주의를 하나의 의무로서 추천하는 설득력있는 제국주의자는 발견하기 퍽 힘들었다. 경제적 필요와 상업적 이익을 강조하게 되었다.

(75) 고데프로이(Godeffroy) 상사는 재정상의 난관을 제국으로 향하는 첫 번째 디딤딜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가장 먼저 깨달은 회사였다. 파산을 수지 맞는 제국주의로 전환시키는 방법은 그 이후 식민 정책의 상식이 되었지만 이 초창기의 예는, 비록 성공하진 못했지만, 시사적이다.

[[막대한 유산]에서 필립이 이집트로 떠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4. 조셉 A. 슘페터

(83) 제국주의는 무제한의 강제적 팽창을 지향하는 국가의 무목적적 성향


캐치프레이즈로서의 제국주의

(84) 디즈레일리 - 이 비참한 식민지는 . . . 우리의 목에 걸린 맷돌이다.

(86) 노상 강도가 자기의 희생자를 다루는 방법으로 옛날에는 식민지를 다룰 수가 있었음.

- 지배를 향한 본능적인 충동


실제상의 제국주의

(90) [이집트의 경우 신제국에 들어와서 침략적인 전쟁을 벌이면서 제국주의적 모습을 보임.]

- 이 계급[직업 군인]의 지원으로 승리한 왕들은 . . . 제국을 중심으로 인식하고, 지방의 봉건 영주와 많은 귀족 지주들을 억누를 수 있었거나 아니면 최소한 그들의 중요성을 줄일 수가 있었다.

- 정치적 조직은 본질적으로 전쟁 기구였다.

- 그 기구는 전쟁의 필요성에 의해 창출되었으나 이제는 전쟁을 필요로 하여 전쟁을 창출했다.


제국주의와 자본주의

(91) 역사상의 증거에 대한 우리들의 분석은, 첫째, 명백하고도 실리적인 제한이 없이 강제적인 팽창을 지향하는 "무목적적인" 경향--즉, 전쟁과 정복을 향한 반합리적이고 비합리적인, 순전히 본능적인 성향--이 인류 역사에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92) 제국주의는 성격상 격세 유전적이다. 그것은 모든 구체적인 사회 상황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 옛부터 존속해 온 거대한 일단의 특징에 속한다. 다시 말하면 제국주의는 현재가 아니라 과거의 생활 조건에서--혹은 역사의 경제적 해석의 용어로는 현재가 아닌 과거의 생산 관계에서--유래하는 요소이다. 그것은 사회 구조 속의, 정서적 반작용의 개인적, 심리적 습관 속의 하나의 격세유전이다. 그것을 창출한 결정적 필요성이 영원히 없어졌기 때문에 그것은 물론, 비록 전쟁과 관련된 모든 것들--그 성격상 아무리 비제국주의적이라 하더라도--이 그것을 되살리려는 경향이 있다 하더라도, 점차적으로 사라지지 않으면 안 된다.

(96) 순수한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한때 전쟁에 쓰인 에너지가 단순히 모든 종류의 노동을 위한 에너지가 된다. 정복의 전쟁과 일반적인 해외 정책의 모험주의는 인생의 의미를 파괴하는 귀찮은 소동이요, 익숙해진 나머지 "진정한" 임무로 생각되는 것에서의 이탈로 간주되지 않을 수 없다.

- 그러므로 순수한 자본주의 세계는 제국주의적인 충동에 비옥한 토양을 전혀 제공할 수가 없다.

- 자본주의 세계의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전쟁을 좋아하지 않게 될 것 같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본주의가 경제에 침투하고 또 그 경제를 통하여 현대 국가의 정신에 침투하는 곳에서는 어디서든지 반제국주의 경향이 모습을 보이게 될 것이라는 점을 예상하지 않으면 안 된다.

(97) 현대의 평화주의는 말할 필요도 없이 자본주의 세계의 한 현상이다.

(100) 제국주의를 자본주의의 한 필연적인 국면으로 묘사한다든가 심지어는 자본주의가 발전하여 제국주의가 된다고 이야기 하는 것은 근본적인 오류라는 것이다.

[슘페터의 주장은 지금까지 내가 읽은 글들과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다.]

(102) 초기 자본주의 시대의 무역과 산업은 따라서 전(pre)자본주의적인 방법으로 가득 찬 채 강력하게 남아 있었고, 전제 정치의 특징을 갖고 있었으며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전제 정치의 이익에 도움을 주었다. 이와 같은 노선에 따라 형성된 감정과 사상과 행동의 전통적인 관습을 가진 채 부르조아지는 산업 혁명에 들어갔다.

(103) 오늘날에도 유럽의 생명과 이데올로기와 그 정치는 봉건적인 실체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는 것과 부르조아지가 모든 곳에서 자기의 이익을 주장하고는 있으나 부르조아는 단지 예외적인 환경에서만 그것도 단지 잠시만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정치 -- 봉건적 요소 잔존, 경제 -- 자본주의로 변화]

(105) 제국주의는 민족주의와 군국주의에 의해 지원을 받듯이 그것들을 지원하면서 그것들과 융합되기는 하지만 그것들과 일치하지는 않는다. 또한 제국주의는 역사적으로도 그리고 사회학적으로도--독재 국가의 유산이며 독재 국가의 구조적 요소들과 조직적인 형식과 이해 관계의 제츄와 인간의 태도의 유산이며, 독재 국가가 부분적으로는 초기 자본주의의 방법에 의해 재조직한 전자본주의적 세력들의 결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