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머레이 그린(Murray Greene) - 슘페터의 제국주의에 대한 한 비판
(108) 슘페터의 정의는 특정한 팽창적 사회의 내적 충동에만 배타적으로 주의를 집중시키고 예컨대 그 팽창의 목적이나 목표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이냐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도 금새 분명히 드러난다.
- 슘페터의 정의의 일방성은 마르크시스트의 자본주의적 제국주의에 대한 개념과 비교해 보면 아마 가장 잘 나타날 것이다. 마르크시스트의 개념 역시 팽창적인 사회의 내적 충동을 강조하고 있고, 자본주의적 팽창이 계속 압박을 가하여 새로운 착취 대상 지역을 항상 고갈시킨다는 점에서는 슘페터의 무제한성의 개념과 어느 정도의 유사점이 있다. 그러나 마르크시스트의 개념에서는 주체와 객체간의 관계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다. 주체는 팽창에의 요구를 갖고 있으며 그것은 단수히 팽창하기 위한 팽창이 아니다. 팽창의 목적, 예컨대 시장은 주체의 특정한 요구와 유기적으로(변증법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팽창은 무제한적일는지 모르나 그것은 슘페터의 팽창과 같이 무목적적인 것도 아니고 순수한 주관적인 의미에서의 단순한 기능적인 것도 아니다.
(109) 로마의 제국주의
- 라티푼디움의 지주들에 대한 국가 기구의 지배를 강화하고 국내의 토지 개혁을 가로막기 위하여 의도된 로마의 제국주의적 행동도 슘페터가 고전적인 예로 들고 있는 이집트, 앗시리아, 페르시아, 아랍의 전사 사회의 행동과 꼭 같은 기능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110) 삼단 논법
- 전사 계급적 사회 구조의 표현이 아닌 것은 제국주의가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전사 계급적 사회 구조가 아니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사회는 비제국주의적이다.
(111) 영국이 자유 무역 국가가 되었던 것은 영국이 맨 먼저 무대에 등장했기 때문이고 자유 무역이 없었더라면 영국 경제가 세계의 산업, 금융 및 무역의 중심지로서 기능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115) 발자크는 그의 회계 사무실에 틀어박혀 한푼한푼을 쌓아 올리는, 그러나 일단 그의 상점을 나서서 그보다 더 나은 사람들의 모임에 들어서면 우스꽝스럽고도 거의 애처로울 정도의 모습이 되어 버리는 초창기 부르조아의 전형에 대한 완벽한 통찰력을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19세 초의 자본주의 모습]
6. 윌리엄 L. 레인저 (William Langer) - 제국주의의 비판
(118) 네오 마르크시스트 - 루돌프 힐퍼딩, 로자 룩셈부르그
- 그[제국주의에 대한] 이론은 자본의 축적이라는 개념에 걸려 있으며 그 이론의 지지자들은 제국주의는 자본주의 발전의 최종 단계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고 그 단계에서는 생산 조직의 결과로 생긴 잉여 자본이 국내에서의 수익 체감으로 말미암아 해외 투자를 위한 새로운 분야를 찾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주장.
(119) 반론
- 자본 수출은 영토 확장과 직접적인 관계가 거의 없다는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120) 제국주의 물결이 가장 높던, 그러니까 1885년에서 1914년 사이의 팽창주의자들 가운데에서는 해외 투자 지역의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보다 새로운 시장의 필요성과 경쟁국의 관세 제한으로부터 시장을 안전하게 지켜야 할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가 훨씬 더 많았다.
(121) 새로 개방된 지역을 다른 나라들이 차지하여 관세 장벽으로 둘러싸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의 영토 쟁탈전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123) 홉슨 - 국내에서 팔 수도 이용할 수도 없는 상품과 자본을 처분하기 위하여 해외 시장과 해외 투자를 모색함으로써 잉여의 부를 흘려보낼 통로를 넓히려는 산업의 거대한 통제자들의 노력
(124) 슘페터 - 자본주의는 본질상 팽창, 전쟁, 군비 및 직업적 군국주의의 반대이고, 제국주의는 일종의 격세 유전, 즉 사회 구조 안의 그러한 요소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며 이것은 현존하는 여건으로는 설명할 수 없고 오직 과거의 여건으로만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127) 전반적인 제국주의적 견해의 밑바탕에는 경제학에 대한 약간의 오해, 많은 자기 기만과 독선, 진화론적 가르침의 잘못된 적용, 그리고 무엇보다도 명예와 위신과 심지어는 명백한 전투성과 같은 고색창연한 전통 이상의 것이 확실히 있었다. 제국주의는 항상 그 말 속에 황제(Imperator)와 지배의 전통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힘, 야만성, 무자비함이라는 의식적이거나 잠재 의식적인 개념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 [키플링을] 제국주의의 최대의 사도로 만든 것은 그의 시대와 그의 시대의 사람들의 감정을 인식한 거의 신비에 가까운 그의 능력이었다.
(128) 무솔리니 - 인간의 정복욕
- "어제의 우리의 운명이었던 것이 또 다시 내일의 우리의 운명이 될 것이라고 우리가 믿는 것을 아무도 막지 목한다.
- 일본 정치가 - 우리는 성장하여 해외로 팽창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129) 사업가들은 영토의 획득에 관심을 가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군인과 관리 계급은 거의 언제나 관심을 갖는다. 군인은 전쟁이 직업이다. 따라서 전쟁과 제국주의가 거의 언제나 한덩어리가 되어 있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관리에게는 팽창은 다스려야 할 새로운 영토와 충원되어야 할 새로운 자리를 의미한다.
(130) 경제적으로는 우리는 제국주의의 미망에서 깨어났다. 우리는 식민지가 수지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국은 제국 방위에 들이는 지출이 엄청나지만 아직도 그에 상응하는 수익과 같은 것을 확보할 수 있는 방식은 결코 만들어내지 못했다.
7. 유진 스테일리(Eugene Staley) - 해외 투자와 해외 팽창
(132) 투자와 정치적 팽창간의 관계에 대한 스테일리의 결론은 그 시대의 경제적 및 비경제적 해석 양쪽에 약간의 위로를 준다.
- 어쩌면 팽창주의와 같은 복잡한 사회 현상의 원인은 결코 확실하게 결정할 수는 없다.
(133) 러시아와 이탈리아의 전전[1차 세계 대전 이전] 역사를 보면 해외 투자를 모색하는 "잉여자본"의 압력이 근대 국가적 팽창주의의 기원에서 한 필수적인 요소라는 가정을 지지하는 것을 전혀 발견할 수 없다.
[홉슨의 이론의 허점 지적. 하지만 홉슨의 이론은 영국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다.]
(134) 러시아 팽창주의의 원인은 정치적 야심, 왕조의 과대망상증, 군사적인 정복욕에서 찾아져야 한다. 자본은 분명히 하나의 도구였지 원인이 아니었다.
(135) 새로운 해외의 기회를 모색하는 민간 자본의 경향은, 예컨대 오래된 그리고 아직도 적극적인 식민주의의 전통, 해군의 전통, 식민지 관료 계급의 영향, 귀족의 젊은 자제들의 출세 추구, 선교 사업, 수출 시장의 탐색, 자기 나라가 점점 더 세계 지도의 넓은 부분을 뒤덮고 있는 것을 보는데서 오는 심리적 만족 등과 같은 중요한 요인들과 함께 근대 영국 팽창주의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136) 비스마르크에게 영향을 준 단 하나의 가장 중요한 고려는 십중팔구 19세기 후반의 보호 무역주의의 발생과 그것을 다른 강대국들이 자기의 속령에 적용한 데서 기인.
(137) 오히려 일본도 러시아나 이탈리아와 마찬가지로 해외에서 돈을 빌었고 정치적 이해 관계를 수립하기 위하여 정부 보조를 받은 기업들을 탐나는 영토로 내몰았다. 어쩌면 일본 정치가들은 언젠가는 일본이 "잉여 자본"을 위해 수익성 있는 해외 출구를 필요로 하게 될 것이라는 고려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이것조차도, 예컨대 인구가 생활 수준에 미치는 압력에 대한 우려, 일본에 없는 원료는 해외에로의 국가적인 팽창에 이해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신념, 군인 계급의 사회적 정치적 위신, 그리고 다른 국가들의 식민지 사업을 추진시켰던 것과 같은 민족주의적 자부심 등에 비교하면 보잘것없는 요인으로 생각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