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
오래 전에 출간된 책이고 읽는 것도 지하철에서 크게 주의를 집중하지 않고 읽었는데, 지금 정리를 하면서 보니 다양한 필자들의 주장이 제국주의의 다양한 면모를 흥미롭게 지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이 좀 더 와닿게 된 것은 그 동안에 신제국주의에 대한 지식이 좀 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홉슨의 경제적 제국주의 이론과, 거기에 반대하는 슘페터(이전 시대의 전근대적인 요소를 강조, 격세유전), 민족주의와의 관련성을 언급하는 논문 등, 제국주의가 워낙 방대한 것이라서 그것을 해명하는 방식 또한 다양하기 짝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유진 스테일리의 말처럼
"어쩌면 팽창주의와 같은 복잡한 사회 현상의 원인은 결코 확실하게 결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 적절한 말일 수도 있을 듯하다.
[인용]
(10) [이 당시] 획득한 영토의 규모도 놀라운 것이지만 그 다양한 해외의 이익을 추구하는 유럽 인들의 침략적인 수법이 교묘하고도 뻔뻔스러웠던 점도 마찬가지로 놀랄 만한 것이었다.
(11) 19세기말의 유럽의 팽창은 세계사의 대사건의 하나
- 19세기말은 단순히 유럽인의 팽창의 시대라기보다는 범세계적인 팽창의 시대. 미국,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및 기타 국가들도 해외 영토를 점령하거나 혹은 점령할 것을 주장.
1. J. 홀랜드 로우즈(Holland Rose) - 팽창의 세 가지 조건 [The Development of the European Nations, 1870~1900]
(23) 유럽인들이 새로운 땅을 개척할 때 보통 다음과 같은 사건 진행이 이루어진다. 맨 처음에는 탐험가들이나 개척자 혹은 선교사들이 온다. 이들이 미지의 땅이나 그곳 사람들에 관하여 어느 정도 밝혀 주면 그 다음에는 상인들이 따라오고, 당연한 순서로 공장이 생기고 거류지가 생긴다. 재산권이나 토지 소유권에 대한 이들 신참자들의 관념은 원주민의 그것과는 너무나 차이가 나기 때문에 분쟁과 다툼이 자주 일어난다. 그러면 군함과 병정들이 현장에 나타나고 영국기나 프랑스 혹은 독일의 삼색기가 게양됨으로써 구질서는 끝장이 난다.
[탐험 정신의 이면에 있는 것 -- 정복욕]
슘페터
(92) 제국주의는 성격상 격세 유전적이다. 그것은 모든 구체적인 사회 상황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 옛부터 존속해 온 거대한 일단의 특징에 속한다. 다시 말하면 제국주의는 현재가 아니라 과거의 생활 조건에서--혹은 역사의 경제적 해석의 용어로는 현재가 아닌 과거의 생산 관계에서--유래하는 요소이다. 그것은 사회 구조 속의, 정서적 반작용의 개인적, 심리적 습관 속의 하나의 격세유전이다. 그것을 창출한 결정적 필요성이 영원히 없어졌기 때문에 그것은 물론, 비록 전쟁과 관련된 모든 것들--그 성격상 아무리 비제국주의적이라 하더라도--이 그것을 되살리려는 경향이 있다 하더라도, 점차적으로 사라지지 않으면 안 된다.
5. 머레이 그린(Murray Greene) - 슘페터의 제국주의에 대한 한 비판 (108) 슘페터의 정의의 일방성은 마르크시스트의 자본주의적 제국주의에 대한 개념과 비교해 보면 아마 가장 잘 나타날 것이다. 마르크시스트의 개념 역시 팽창적인 사회의 내적 충동을 강조하고 있고, 자본주의적 팽창이 계속 압박을 가하여 새로운 착취 대상 지역을 항상 고갈시킨다는 점에서는 슘페터의 무제한성의 개념과 어느 정도의 유사점이 있다. 그러나 마르크시스트의 개념에서는 주체와 객체간의 관계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다. 주체는 팽창에의 요구를 갖고 있으며 그것은 단수히 팽창하기 위한 팽창이 아니다. 팽창의 목적, 예컨대 시장은 주체의 특정한 요구와 유기적으로(변증법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팽창은 무제한적일는지 모르나 그것은 슘페터의 팽창과 같이 무목적적인 것도 아니고 순수한 주관적인 의미에서의 단순한 기능적인 것도 아니다. 6. 윌리엄 L. 레인저 (William Langer) - 제국주의의 비판 (118) 네오 마르크시스트 - 루돌프 힐퍼딩, 로자 룩셈부르그 - 그[제국주의에 대한] 이론은 자본의 축적이라는 개념에 걸려 있으며 그 이론의 지지자들은 제국주의는 자본주의 발전의 최종 단계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고 그 단계에서는 생산 조직의 결과로 생긴 잉여 자본이 국내에서의 수익 체감으로 말미암아 해외 투자를 위한 새로운 분야를 찾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주장. (119) 반론 - 자본 수출은 영토 확장과 직접적인 관계가 거의 없다는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120) 제국주의 물결이 가장 높던, 그러니까 1885년에서 1914년 사이의 팽창주의자들 가운데에서는 해외 투자 지역의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보다 새로운 시장의 필요성과 경쟁국의 관세 제한으로부터 시장을 안전하게 지켜야 할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가 훨씬 더 많았다. (127) 키플링을] 제국주의의 최대의 사도로 만든 것은 그의 시대와 그의 시대의 사람들의 감정을 인식한 거의 신비에 가까운 그의 능력이었다. (138) 1840년대에서 1870년대에 이르기까지 바로 전시대에 자유주의가 고양되어 유럽 제국주의가 현저하게 쇠퇴했었다는 사실에 비추어볼 때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1870년대 이후 제국주의의 각축) (142) 근본적으로 신제국주의는 민족주의적인 현상이었다. 신제국주의는 매우 강력한 독일과 통일 이탈리아를 만들어 낸 민족주의 전쟁, 러시아를 콘스탄티노플 가까이까지 팽창시키고 영국을 공포에 몰아 넣었으며 프랑스 세력을 약화시킨 민족주의 전쟁을 바짝 뒤따라 나타났다. 그것은 그 심리적 반응, 민족적 위신을 유지하거나 회복하려는 열렬한 욕망의 표현이었다. (150) 일부 자본가들이 제국주의를 주창했고 제국주의로 인해 더 많은 이윤을 올렸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철저히 분석해 볼 때, 제국주의를 가능하게 했고 가장 열렬하게 제국주의를 찬양했으며 가장 한결같이 제국주의를 후원했던 것은 민족주의적인 대중이었다. - 대중들은 그런 것[경제적 이득]보다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벌어지는 일과 앞으로 있을 전투에 관한 대중 신문의 일면 기사에서 스릴과 흥분을 느꼈다. 그들은 라이더 해거드 같은 사람들이 엮어내는 얘기를 게걸스럽게 받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