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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들·용어

헤겔 - 진리와 현상 [정신 현상학]

by 길철현 2019. 2. 8.


그러나 내적인 것 또는 초감각적인 피안은 생겨난 것이다. 그것은 현상으로부터 온다. 그리고 현상은 그것의 매개이다. 또는 현상은 그것의 본질이며, 사실상 그것의 실현이다. 감각적이며 지각된 것이 마치 진리 속에 존재하는 양 만들어진 것이 초감각적인 것이다. 그러나 감각적인 것과 지각된 것의 진리는 그것이 현상이라는 데 있다. 그러므로 초감각적인 것은 현상으로서의 현상이다.


(헤겔은 이 구절에서 현상 자체가 진리를 구성한다는 사실을 주장하고 있다. 진리는 현상일 뿐이며 따라서 현상이 진리의 본질을 이룬다. 초감각적인 진리라는 것은 원래부터 존재하는 게 아니라 감각적인 우리의 현실에서 유추하여 만들어낸 표상이다. 헤겔은 여기에서 본래적인 실재로서의 진리가 먼저 있고 현상은 이 영원한 진리로부터 파생된 부차적인 세게에 불과하다고 생각한 플라톤적 전통을 전도시킨다. 플라톤은 이데아의 세계와 감각적 세계를 구분하고 이데아의 우월성을 옹호한 바 있다. 헤겔은 이러한 플라톤의 생각과는 반대로 현상이 먼저 있고 진리는 현상으로부터 생겨난다고 주장한다. 현상을 벗어난 영원한 진리의 세계란 있을 수 없다. 진리는 현상함으로써 비로소 (사후적으로) 진리로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헤겔은 진리는 "현상으로서의 현상"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헤겔의 사유가 진리의 사후성에 대한 라캉의 사유와 긴밀히 맞닿아 있다는 점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김현강. [슬라보예 지젝]. 이룸. 2009. 137-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