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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밖의영상들

[경주]를 경유하다 - 기표는 끊임없이 미끄러진다 (1)

by 길철현 2019. 4. 8.

영화 [경주]는 내가 가장 많이 반복해서 본 영화이다. 열두 번 아니면 열세 번 정도 보았다.


(그 다음으로 많이 본 영화는 곽경택 감독의 [친구]이다. 열 번 정도 보았던 것 같다.

[친구]를 많이 보게 된 것은 그 당시에 혼자 자동차로 전국 일주를 하면서,

저녁에 할 일이 없어서 시간 땜을 하기 위한 방편이었다는 사정도 있지만

- 그래서 원주, 대전, 여수, 부산 등 다른 지역의 극장에서 보았다 -

나와 거의 동시대인 곽경택 감독이 그려내는 고등학교 시절의 모습

- 30대의 배우들이 맡아서 어떻게 보면 좀 우스꽝스럽기도 하지만 -이나,

그 이후의 우정이 살인 교사로까지 변질되는 모습, 그리고 영화가 그려내는 폭력성에 매료된 면도 없진 않았다.

아니 이 영화와 관련해서 더욱 흥미롭게 다가왔던 것은

영화의 판본이 두 가지로 중간에 한 장면 정도가 달랐던 것과,

지역에 따라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이 완전히 달랐다는 점,

다시 말해 부산을 배경으로 부산 사투리가 심한 그런 영화라서

부산 사람들이 대사 하나하나에 반응하는데 반해

여수 사람들은 그 부산 사투리가 주는 뉘앙스를 잘 알아차리지 못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아서

언어의 정서적 측면, 함축(내포 connotation)이 갖는 중요성

--사전적 의미를 가리키는 지칭(외연 denotation)과 대조되는--을 실감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이 역시 영화 외적인 곁가지적 이야기이지만--

몇 년 전에 고등학교 반창들 모임에서 한 친구가 이 영화의 광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 친구는 이 영화를 스물 몇 번이나 보았다고 했는데,

영화의 세부 사항이나 대사를 나보다 훨씬 더 잘 기억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 영화가 한국 '누아르 영화'의 지평을 새롭게 열어젖혔다고 격찬을 했다.


나는 당시 7박 9일 간의 [전국 일주]를 글로 쓰기 위해 이 영화를 여러 번 다시 보면서

나름대로 정리를 해보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고,

이 영화에 대한 평가도 시대상을 어느 정도 담아내고 있는 영화라는 생각과

과도한 폭력과 비속한 언어 등에 기대고 있는 통속 영화라는 생각을 오락가락했다.


두 영화는 흥행이라는 면만 놓고 보더라도 극과 극이다.

사실 [경주]는 또 다른 지인의 말처럼 '한 개인의 일상을 돈 주고 볼 필요까지는 없지 않느냐?'는 말처럼

밋밋한 영화이기도 하다.

우연히 지나치는 인물의 자살과 우연히 만난 사람과의 불륜의 유혹 등 몇 가지 엄청난 사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라면 지구가 아니라 전 우주의 운명을 구해야 하는 블록버스터의 영향 아래

이 영화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어찌보면 정말 자질구레하다.)  

[경주]가 주는 매력은 '여행자가 갖는 환상'이라는 주제가 소설이나 영화에서 많이 시도되는 것인데다,

혼자 나들이를 즐기는 나에게는 주인공과 동화하기가 쉽고,

그러한 때에 갖게 되는 의식 * 무의식적 환상과 부합하는 면도 많으면서도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잡힐 듯 말 듯 감질나게 해서 자꾸만 되풀이해서 보게 되었다.

(한 가지 더 덧붙이지만 영화에 대한 나의 또 다른 관심사는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실제 장소인데,

이 영화의 경우에는 대부분의 장소를 찾아냈다.)


그런데, 어제 이 영화에 대한 정한석의 평을 읽다가

이 영화가 홍상수 감독의 2002년 영화 [생활의 발견]과 여러모로 유사한 점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영화를 보긴 했지만 워낙 시간이 오래 지나서,

전반부의 배경이 춘천이었다는 것은 기억이 나지만 선영(추상미)의 집이 있는 곳이 경주였다는 것은 까마득하게 있고 있었다.

그래서 밤 늦게 이 영화를 다운 받아서 다시 보고 나니

[경주]에 앞서 [생활의 발견]에 대해서 또 몇 자 써야 되는 것은 아닌가?

하지만 이 영화 역시 만만치가 않다. 


완결될 수 없는 이야기는  끝을 모르고 흘러간다.


(장률이 홍상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럼에도 두 사람의 색깔이 같은 것은 아니다.

장률은 윤리적인 면에서 훨씬 더 엄격한 면이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서 하나 기억나는 것은--맞는지 확인을 해봐야겠지만--

홍상수의 영화 [밤과 낮]에서서인가 김영호가 무술 장면을 따라하는 것이

영화 [경주]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것은 하나의 예에 지나지 않고 그 예를 찾아보자면 상당히 많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