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점심도 먹고, 산보도 하고, 쇼핑도 즐기기 위해 청계천으로 차를 몰았다. 휴일이라 그런지 때이른 더위에도 불구하고 청계천은 사람들로 넘쳐나 주차할 곳을 찾기가 힘들 정도였다. 없는 것이 정말로 없는 청계천(가장 많은 곳은 중고 의류 판매점이지만, 각종 생활용품, 골동품, 공구, 서점 등등)에서 난 충동 구매로 거금을 쓰고 말았다. 좋은 중고 물품을 싼 가격에 사려는 사람들. 우리나라 사람들뿐만 아니라, 동남아, 혹은 인도나 파키스탄 쪽 사람들, 백인들은 물론 흑인들도 눈에 띄고, 케냐 토산품을 파는 한 가게는 아마도 케냐에서 온 몸집이 좋은 흑인 여성이 유창한 한국말로 "8천 원이에요. 싸게 파는 거예요."라고 외치기도 했다. 그 가게의 여섯, 일곱 살 난 곱슬머리의 남자 아이는 정말 귀여웠다. 지난번엔가 갔을 때 본 동묘 앞의 중고옷을 파는 곳에서는 다소 거무스럼한 피부에 매부리코를 한 인도나 파키스탄 쪽에서 온 듯한 중년의 남자도 한국말을 유창하게 했다. 국제화는 오래전부터 청계천에도 와있었다. (모교(대학)의 도서관에서 공부를 할 때 중국 유학생이 워낙 많은 듯해서, 나는 우스개 소리로 '중국 유학생이 반이고, 나머지 반은 한국 학생이고, 나머지 반은 외국에서 온 학생들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청계천이 복원되고 원래 청계천변에 형성되어 있던 가게들 다수가 신설동의 "서울 풍물시장"으로 옮겨 갔는데, 주말에는 청계천 주변의 쉬는 가게를 중심으로 노점상들이 대거 참여하여 그 규모가 주중의 몇 배로 늘어나는 듯하고, 곳곳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정말 발디디기 힘들 정도였다(아마도 동묘 주변이 가장 붐비는 듯하다). 이날 본 장면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온 몸에 "허경영"을 알리는 안내 문구로 도배한 사람이었다. 차마 사진을 찍지는 못했는데, 2019년의 한국이 "각종 서사가 경쟁하는 다양성의 시대"라는 걸 입증하는 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 식사 - 동묘 부근 한식부페 집]
한식 부페(뷔페)는 내가 가장 선호하는 식당. 다양한 음식들을 기다리지 않고 곧장 먹을 수 있는 데다, 혼밥을 해도 눈치가 별로 보이지 않아서. 이집의 별미는 돼지껍데기.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는 쫄깃한 돼지껍데기가 나를 당긴다. 6천 원이라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인파를 찍으려 했는데 그 순간 들어선 분의 등짝만 찍었다.
여긴 그래도 조금은 여유 공간이 있다. 사람들을 찍는 것은 초상권, 기타 법적 문제로 조심스럽다.
[구매한 물품들]
책이 많다(책 구입을 자제해야 한다). 몇 번을 망설이다 산 책도 있다.]
아프리카의 민담들이 실려 있는 아동용 책. 논문을 쓰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해서 구입했다. 아체베의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에도 나이지리아의 민담들이 많이 나오는데. 두 권 다 아프리카인 줄 알고 샀는데, 자세히 보니 아래 책은 아메리카의 이야기이다. 보통 어메리카로 많이 써서 두 단어 사이의 공통점에 주목하지 않았는데, 아메리카로 써놓고 보내까 한 자만 틀린다. -rica라는 접미사가 하나의 공통된 뜻인지는 모르겠다. 아프리카는 아프리--아마도 아프리카 북쪽에 살던 베르베르 인--인들의 땅이라는 말이 있고, 아메리카는 아메리카가 유럽인들이 몰랐던 신대륙이라는 것을 밝힌 이탈리아 인 아메리고 베스푸치에 여성형 접미사가 붙었다는 말이 있으니. (노점상. 한 권에 2천 원인데, 두 권에 3 천원으로 득템)
중고이고, 여름에 입을 수는 없는 봄, 가을 용이긴 했지만 옷이 너무 예뻐서 샀다. 2만 원 달라는 것을 만 오천 원으로 할인
논문 때문에 동남아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데, 마침 [영광서점]에 동남아 역사와 관련된 오래된 책들이 꽤 들어와 있었다. 운 때가 맞은 것이라고 해야 할까? 도서관에서 폐기한 책인 듯하다. 책 옆에 붙여 놓은 가격대로라면 전부 합쳐서 2만 5천인데 주인 아저씨가 2만 천 원을 불렀다. 천 원은 떼고 2만 원하면 좋지 않을까, 흥정을 했더니 너무 많이 깎아 주어서 그렇게는 안 된다고 했다. 스포츠 머리를 한 이 집 주인 아저씨는 16,7년 전에는 망원동에서 같은 상호로 중고 서점을 운영했다. 그 때 그 집에서 책을 많이 구입했으나, 청계천으로 옮기고부터는 거의 들르지 않아 내가 주인 아저씨의 기억 끝에 간신히 자리하고 있는 듯하다. 워낙 사람들이 많이 지나 다녀서 그래도 장사가 잘 되는 편이라고. 사모님도 같이 나와서 일을 하고 있었다. 책값을 내려는데, 파키스탄 쪽 사람 두 사람이 영어로 "카드가 있느냐?"고 물었다. 주인 아주머니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들어서 어리둥절하고, 나도 서점에서 무슨 카드를 찾는지 의아해 하면서, "무슨 카드를 찾느냐"고 되물었더니, 그들이 원하는 것이 명함(name card)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아무런 전후 설명도 없이 그들은 왜 명함을 원하는 것일까?
존 버컨의 이 책은 세 번 째 들른 끝에 구입을 했다. 1936년에 나온 이 책에 관심이 간 것은 아체베가 어느 에세이에서 대표적인 인종주의자의 한 명으로 이 사람을 지목했던 것이 기억이 났기 때문인데, 얼마나 도움이 될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선뜻 거금?을 지불하기가 망설어져서 책을 들었다가는 놓고 말았다. [청계천 서적]에는 1920,30년대에 나온 나름 영어 고서적들이 꽤 많이 있다. 대체로 19세기의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인데, 내가 보유하고 있지 않은 책들은 별로 없는 데다가, 오래된 책이라고 가격대가 최소 1만 원에서 2,3만 원에 이르는 고가여서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지난번에 들렀을 때에는 만오천 원이면 사려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사장님의 젊은 아들이 1만 8천 원을 불러 내려놓고 말았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만오천 원을 불렀더니 젊은 아들이 사장님의 인가?를 받고 내주었다. 그런데,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스릴러 물이라(첫 번 째 실린 [39계단]은 히치콕의 영화로 더욱 잘 알려져 있다) 제국주의와는 큰 관련이 없는 듯하다. 아체베가 언급한 작품은 [Prester John]이라는 책이었다.
콘래드 논문을 쓰려면 아프리카 물품 하나 쯤은 있어야 할 듯해서, 앞에서 이야기한 케냐 토산품을 파는 가게에 가서 작은 코끼리 한 마리를 구입했다. 그의 작품의 배경은 콩고이지만, 꿩 대신 닭이라고 해야 할까? 케냐의 고원지대 중 하나인 은공 산지는 덴마크 출신의 소설가 이작 디네센(본명 카렌 블릭센)이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아름답게 그려내었다(시드니 폴락의 동명 영화로 사실 더 잘 알려져 있고, 나 역시도 영화를 먼저 접했지만). 지구 상의 모든 곳, 아니 지구 밖으로까지 발 닿는 어디든지 가볼 수 있다면. 코끼리는 서구의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적 팽창으로 인해 아프리카 인들 못지 않게 수난을 당했다. 이 코끼리는 상아가 없다. (밀렵의 피해로 코끼리들은 상아가 없는 종으로, 있어도 그 크기가 대폭 줄어든 종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 코끼리도 그런 종인가?)
재질이 단단한 나무 같은데 만 원이란다. 상징물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그다지 잘 만든 것도 아니고 [Tenya]라는 회사가 수작업으로 만들었다는 라벨이 붙어 있긴 하지만 이것도 그다지 믿음이 가지 않아 그냥 나오는데, 몸집이 좋은 흑인 아줌마가 '8천 원'에 가져가란다.
중고 자전거를 사서 한두 달 열심히 타다가 그 다음에는 흥미를 잃고 말았다. 어느 순간 타보려고 하니 잠금 장치의 비밀번호를 까먹어 거치대에서 빼낼 수가 없어서 방치해 둔지가 두어 해는 된 듯하다. 절단기로 자르고 이것을 새로 설치 한 다음 자전거나 좀 타볼까? 6천 원 불렀는데 천 원 깎아서 5천 원.
충전기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어서 컴퓨터에 연결해서 충전하고 있었는데, 마침 이것이 눈에 띄어 구입을 했다. 그런데 집에 와서 보니 꽂는 부위가 큰 옛날 충전기다. 천 원 날렸다.
주차를 해둔 곳 주변에서 발견한 좀 시간이 지난 대한애국당의 전단지. 현재 한국은 말들의 전쟁터이다. 민주주의라는 것이 총 대신 말로 싸우고, 다수의 의견을 따르면서도 소수에게도 발언의 기회를 주자는 것이라면, 한국은 민주주의를 잘 실천하고 있는 셈이라고 해야 하는가?
분실 위험도 있고 해서 지갑을 차 안에 두고 7만 2천 원을 들고 나갔는데, 4천 원만 남기고 다 썼다(원래 그 정도 쓸 것을 생각하고 그 정도의 돈을 들고 나온 것은 아닌가?). 지출이 좀 과했다.
'여행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순창 강천산, 담양호, 순창 읍내(190611) 1 (0) | 2019.06.14 |
---|---|
엄마와 상주 식당에서 추어탕을 먹고 영천호를 한 바퀴 돌다 (0) | 2019.05.31 |
동네 산책 - 한내교, 중랑천변, 경춘선 숲길(190519) (0) | 2019.05.19 |
군위호를 향하여(190510) (0) | 2019.05.13 |
홍콩 여행 넷째 날 - 외국의 낯선 거리를 거닐다 (0) | 2018.06.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