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옛 생각이 하나 떠올라 몇 자 적어본다. 전자 오락실도 당구장도 출입할 수 없었던 그 옛날 학창 시절, 탁구는 학생에게 그나마 허용된 여가시설이자 체육시설이었다. 초등학교 4,5 학년 정도에 시작된 나의 똑딱 탁구는 초등(국민)학교에서 중학교에 올라가던 겨울 방학 시기에는 월 등록을 할 정도였는데, 그 당시에는 개인 라켓이 없었던 것은 물론이거니와 탁구복이나 탁구화는 들어보지도 못했다(얼마 전에 오래 전부터 알던 친구가 갑자기 탁구에 재미를 붙였는지 나에게 몇 가지 조언을 구했다. 버터플라이와 셰이크가 어떻게 다른 것인지? 초심자 다운 엉뚱한 질문에다, 내가 십육만 원 정도에 탁구 라켓과 러버, 하드 라켓 케이스 등을 맞춰 줄 수 있다고 하니 나름 인터넷에서 조사를 해보니 만 육천 원이 좀 넘어서 망설이고 있다는 말도 했다).
그 당시에 쓰던 라켓이나, 공, 탁구대의 상표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라켓은 그래도 [크로버]가 유명했던 것 같은데, [참피온]이 생긴 것이 1976년이니 탁구대는 [참피온]이었을까? 공은 피스를 썼을까? 고등학교 때 같이 탁구를 치던 한 친구는 아버님이 외국에 나간 길에 꽤 유명한 라켓과 러버--[버터플라이]는 아니고 유럽 어느 회사의 제품이었던 듯한데, [스티가] 정도였을까?--를 사왔는데, 탁구 전용 풀이 있다는 걸 몰랐던 이 친구는 돼지표 본드로 러버를 붙이는 만행을 저지르고 말았다.
어쨌거나 중*고등학교 시절, 그러니까 70년대 말 80년대 초에 탁구를 칠 때는 탁구장에 비치된 라켓을 들고 신나게 쳤다. 그 중 마음에 든 것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내 맘대로 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고등학교 1학년 때였으리라(2학년 때라고 해도 별 차이가 없다. 수십 년의 세월에서 일 년 정도는 별 것이 아니리라). 누군가가 늘 가는 학교 앞의 탁구장이 아니라 시내 중심가에 있는 어떤 탁구장엘 가자고 했다. 그 때 그가 내세웠던 구실이 무엇이었는지를 떠올릴 도리는 없다. 탁구장이 넓다고 했던가? (자칭 우리 학년의 강자이긴 했어도 그렇게 넓은 공간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을 텐데) 라켓이 좋다고 했던가? 새로운 경험을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아마도 흔쾌히 따라 나섰을 것이다.
그 탁구장이 어디었는지도 잊어버렸지만, 탁구장 내부의 장면은 머릿속에 어른거리는 듯하다. 어쨌거나 이 탁구장에는 [버터플라이]에서 나온 '스리버' 러버를 붙인 라켓들이 있었다. 그 러버라는 것이 온전한 것이 아니라, 러버를 붙이고 남은 자투리 러버를 대여섯 장 오려서 붙인--지금으로보자면 규정상 사용할 수 없는 것이지만--그런 것이었지만(당시만 해도 자원을 최대한 아껴 쓰는 것은 절약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었다), 탄성이 어찌나 좋은지 넘어온 공을 갖다 대기만 했을 뿐인데도 공이 자꾸만 상대편 탁구대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그 때 나는 아마도 탁구를 치면서 처음으로 용구가 갖는 위력이라든가 용구에 따른 차이, 이런 문제들을 진지하게 생각했던 듯하다. (약간 여담이긴 하지만 이해되지 않는 대로 다소 중요한 기억이라는 생각에 다음 이야기도 적어 둔다. 이 당시 또 다른 어떤 탁구장에 탁구를 치러 갔는데, 탁구대의 크기가 다른 것이 있었다. 미니 탁구대는 아닌데 탁구대가 보통 탁구대보다 작은 것이 있었다. 나의 착각인 지는 몰라도 이 탁구장의 타구대는 그 크기가 뒤죽박죽이었다.)
지금은 탁구 용품이 춘추전국 시대라고 해야 할 정도로 다양화되어 있지만, 그 당시만 해도 탁구 용품하면 일본의 [버터플라이](90년대 정도까지 그랬던 듯하다)를 최고로 쳐주었고,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독점적으로 사용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버터플라이] 회사의 여러 용품 중에서도 1967년에 나온 '스라이버' 러버가 최고의 히트작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까지도 판매되고 있는 것을 보면 탁구 용품계의 새우깡, 맛동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나 역시도 이 스라이버 러버를 오래 사용했다. 스라이버 러버는 경질인 가와사끼(줄여서 사끼)와 연질인 가와나시(줄여서 나시), 이렇게 크게 두 종류로 나뉘는데 스매싱이 주무기였던 나는 사끼를 사용했다. 아마추어 탁구 전문가인 고슴도치는 가와사끼가 가와쯔끼가 와전된 뜻없는 말이기 때문에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여기에 덧붙여 이 스리버 러버의 이름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한두 마디만 더 하도록 하자. 이 러버의 영어 표기는 'sriver'이고, 사람들은 주로 스리버 혹 영어에 대한 감각이 없는 사람들은 슬리버라고 발음했다(영어의 r이 우리 말의 ㄹ 받침으로 사용될 수는 없을 터인데, 194,50년대에 나온 책들은 보면 이 표기를 거꾸로 한 것이 많이 있었다. 아마도 ㄹ 받침이 없는 일어의 영향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닌지?). 언제부터인가 나는 이 상표가 smash와 driver의 합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고, 그렇다면 스라이버로 읽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다. 영어를 전공했기 때문에 당연한 의구심이었으나 사람들이 모두 스리버라고 부르는데 반박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번에 이 글을 쓰면서 좀 조사를 해보니 관행으로 굳어져서 인지 두 표기를 다 쓰고 있긴 하지만 스라이버가 정확한 발음으로 바뀌어 나가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s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관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speed의 약자라고 누가 말한다. 스피드와 회전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러버라는 말.
짧은 생각이 왜 이렇게 긴 글로 이어지고 말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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