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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청도 운문댐, 운문호, 그리고 낙대폭포, 화강지(화양지), 부야지(191124)

by 길철현 2019. 11. 25.


엄마는 관광지를 들를 때마다 거기에 모인 많은 사람들을 보고 "요즘은 마카(모두) 먹고 노는 세상이다"라는 말을 한다. 엄마의 이 말은 '사람들이 일은 안 하고 놀기만 한다'는 부정적인 의미인가 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이 며칠 전에는 '세상이 많이 좋아져서 죽도록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여유를 즐길 수도 있게 되었다'라는 긍정적인 뉘앙스로 말하기도 했다. 어쨌거나 요 몇 달 나는 '먹고 노는 세상'의 특권?을 마음껏 향유하고 있다.


엄마를 교회에 데려다 드릴 때만 해도 대구에서 요즈음 읽고 있는 이문열의 [변경]의 주된 배경이 되고 있는 밀양을 거쳐(밀양에 대한 관심은 사실은 이창동 감독의 [밀양]이라는 영화로 먼저 촉발된 것이다. 이 영화의 원작인 이청준의 [벌레 이야기]에서 작가가 제기하고 있는 핵심적인 문제는, 영화에서도 되풀이되고 있지만 '용서'의 주체가 누구인가, 하는 것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닌가 한다. 그리고, 이창동이 이 영화를 제작한 데에는 자신의 어린 아들을 교통사고인가로 잃은 아픔도 있다는 것이 이 영화가 더욱 절절하게 우리에게 다가오게 한다. 상실은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필연적으로 겪게 마련인 과정이고,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아픔은 아마도 자식을 잃은 부모, 그 무엇보다도 어머니의 그것이리라. 미혼인 나로서는 짐작하기가 쉽지 않으나 그것은 우리의 언어가 도달할 수 없는 지점이리라) 지난번 부산에 갔을 때 걸어보고 싶었지만 가족들 때문에 포기하고만 송도의 [해안볼레길]을 걷는 것이었는데, 내 여정은 운문호를 도는 것에서 끝맺음을 하고 말았다.


[앞산 터널]을 지나면서 청도를 제대로 구경한 적이 없으니 일단 청도로 가보자는 생각에 [신대구부산 고속도로]를 타는 대신에 30번 국지도(국가지원지방도)를 탔다. 청도 방향으로 들어서자, 먼저 나를 반긴 것은 이서면의 [한국 코미디 타운]이었다. 서울 출신인 전유성이 어떤 연유로 먼 청도에 까지 왔는지, 또 그와 청도군과의 갈등의 이유는 무엇인지, 지금은 청도를 떠난 그와 [한국 코미디 타운]과는 어떤 관계인지 등이 궁금해서 잠시 주차를 하고 사진을 한 장 찍을까 하다가(일요일이라 그런지 차들이 꽤 많이 주차해 있었다) 푸른 신호등이 나를 밀어붙이는 바람에 그냥 내처 달렸다.


가을은 겨울로 들어서는 것이 못내 아쉬웠는지 이날은 날씨도 무척이나 포근했다. 그리고 청도읍에 앞서 화양읍이 눈에 들어왔다. 대구 근교에 있는 하양은 익숙한 지명이고, 서울의 성동구에 있는 화양동도 친숙하지만, 화양읍은 처음이다. 화양이라는 단어가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  이후로 뭔가 빛나는 것(이 단어의 뜻은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라고 하는데, 또 다른 누군가는 '젊은 시절'이라고 말한다)이 연상이 된다. 물론 화양이라는 낱말은 또 '화냥년'이라는 욕을 우리의 기억에 불러오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 말의 어원인 '환향녀'는 병자호란 당시 청으로 끌려갔다가 되돌아온 여성들이라는 아픈 역사를 담고 있기도 하다. 나는 청도로 가는 길을 벗어나 화양읍의 소로로 그리고 못을 찾아 차를 몰았다. 전날 안양에서 탁구 시합이 있었고, 또 탁구 시합이 끝난 다음에는 엄마와 동생을 태우고 대구로 내려온 빡빡한 일정의 여파로 내 눈거풀은 차츰 무거워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화강지(혹은 화양지)라는 작은 못을 카메라에 담고 못 아래 한적한 곳에다 차를 세운 뒤 달콤한 오수를 즐겼다.   



체력을 회복한 나는 화양 읍내에 있는 청도 읍성과 관찰사 군수들의 송덕비 등을 보고 청도읍으로 차를 몰았다. 화양읍과 인접해 있는 청도는 소싸움으로 유명한 읍으로는 꽤 규모가 있는 곳이었으나 일요일 오후라 그런지 식당들도 대부분 문을 닫았고, 오가는 사람들도 별로 없어서 대체로 한적했다. 청도 군청 근처의 중식당에서 볶음밥이나 먹을까 했는데 배달 전문이라 뺀치를 맞았다. 한참을 걸어내려가 순대 국밥집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나자 다시 피로가 몰려와 느릿느릿 뒷골목을 기웃거리며 차를 세워둔 곳으로 돌아왔다(지난주에 전남 백암산에 올랐다가 근처에 있는 장성읍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아침에는 비가 뿌리고 해서 날씨가 쌀쌀하여 뜨끈한 짬뽕이나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마침 눈에 띈 중식당 근처에 주차를 하고 식당으로 갔더니 하필 정기휴일이었다. 장성 읍내에는 그 식당 외에는 중식당이 없는 것인지 중심 도로를 따라 아무리 걸어도 중식당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마침 눈에 들어온 중식당은 아주 오래된 허름한 집이어서 좀 망설이다가 들어섰는데, 그냥 짬뽕은 5천 원이고 삼선은 7천 원으로 저렴했다. 삼선짬뽕이 보통 짬뽕 값에도 미치지 않아 삼선으로 시켰다. 노부부가 운영하는 가게라 특별한 맛은 없었지만 가성비를 생각하면 나쁘지 않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밀양으로 갈까, 하다가 체력적 부담 때문에 되도록 걷지 않고 운전을 하는 쪽으로 생각의 추가 기울고 있었고, 안내도에서 본 청도의 진산 남산에 있는 [낙대폭포]가 나를 손짓하고 있었다. 걷다가 이정표에서도 얼핏 보기도 했다. 차로 걸어오는 길에 본 것 중에서 내 눈을 사로잡은 특이한 것은 군청 옆에 있는 [서울특별시 문서보관소]였다. 왜 청도에 이 기관이 있나 처음엔 다소 의아해 하다가, 재난 등 비상사태에 대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했는데 역시나 추측대로였다.


[낙대폭포]는 내가 한창 전국의 폭포를 순례하면서 본 폭포들을 이야기하자 고등학교, 대학교 동기이자 청도 출신인 친구가 자신의 고장에도 아주 멋진 폭포가 있다고 자랑을 했던 기억이 안내도에서 그 폭포를 보는 순간에 맞물리면서(친구는 폭포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했던 것 같다) 꼭 한 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비를 찍지 않고 얼핏 본 이정표와 어림짐작을 따라 산길로 차를 몰았는데 폭포를 알리는 이정표가 없어서 길을 잘못 들었다는 생각에 차를 세우고 내비를 찍었더니 제대로 온 것이 맞았다. 좁은 포장도로를 따라 한 1킬로 정도 가니 차가 세 대 정도 주차되어 있었다. 거기서부터 돌을 깔아 놓은 산길을 2,3백 미터 지친 걸음으로 힘겹게 올라가니 30여미터에 이르는 수직의 웅장한 절벽(사진으로는 그냥 작은 절벽 같아 보인다)이 정면에 떡하고 버티고 있다. 하지만 가문 날씨 탓으로 폭포는 겨우 건폭을 면한 정도여서 뭐라고 왈가왈부하기 힘든 상황이었다(인터넷에서 이미지를 검색해보니 여름철에도 수량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 듯. 떨어지는 물을 맞는 폭포로 오히려 유명한 모양이다).   


  



밀양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다음 행선지는 운문댐으로 정했는데, 운문댐도 근처는 아니고 40분 정도 떨어진 거리였다. 청도는 다른 읍소재지들과는 달리 군청이 있는 곳보다 시외버스터미널 쪽이 훨씬 더 번화한 듯했다(군청소재지가 있는 곳이 처음 나의 생각과는 달리 청도읍이 아니라 화양읍이었다. 이렇게 된 것은 두 읍이 거의 연결되어 있기 때문인 듯하다). 운문댐은 여느 대형 호수들과는 달리 나에게 인상적인 풍경을 선사하지 못해 이번에도 긴가민가하면서 차를 몰았다. 이번에 하나 기대를 건 것은 며칠 전 친구와 통화를 하는 가운데 [망향정]에서 본 운문호의 풍경이 좋았다는 것이었다. 가다가 내비에 [부야호]라는 저수지가 눈에 들어왔다. 저수지가 그다지 크지 않아서 그냥 패스하려고 했으나 못 둑의 규모가 상당하여 차를 세우고 카메라에 또 담았다. 부야지를 지난 다음 나는 옛 도로를 따라 달렸다. 터널이 생기면서 이제는 거의 용도폐기된, 그래서 지나는 차가 한 대도 없는 곰티재를 오르면서 이런 옛 도로에 펜션을 짓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문득 하기도 했다. 


예전에 운문사로 이어지는 69번 국지도를 따라 운문호를 돌았을 때는 조망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 하긴 그 때는 저수지나 호수에 대한 관심이 지금 정도가 아니었고, 사진을 찍는 것에 대해서도 지금과 같은 열정이 없었다. 어쨌거나 내 예상으로는 경주로 이어지는 20번 국도를 따라가면 좋은 그림이 나오지 않을까 했는데 그 예상이 그대로 적중했다. 댐에서 한 2킬로미터 정도 올라간 곳에 있는 [망향정] 부근에 이르자 운문호가 주변 산들과 어울려 멋진 정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면서 보니 나들이 나온 사람들과 또 많은 오토바이족들로 꽤나 붐볐고, 사람들은 매점에서 산 오뎅과 컵라면, 옥수수 등으로 간식을 즐기면서 호수와 주변 산들을 완상하고 있었다. 나는 급한 생리현상부터 해결하고(재래식에다 근래에 보기 드물게 화장실이 지저분했다), 도로를 건너가 호수를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운문산이 어디인지, 영남 알프스는 어디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어도 호수 주변의 산군들이 그 일부일 것이고, 그래서 호수는 이전의 실망감을 두 배로 보답하겠다는 심사였는지 푸른 하늘 아래 잔잔한 가운데 무한한 아름다움을 나에게 베풀어 주었다.












이 때 시각은 네시 반 경. 늦가을의 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호수의 광경을 몇 장 더 카메라에 담고 싶어서 차를 몰았다(인간의 욕망은 중단할 지점을 찾지 못한다. 나도 하루 빨리 내가 지금 갖고 있는 소니 똑딱이 카메라--이것도 3년 전에 백만 원이라는 꽤 큰 돈을 들여서 장만한 것인데--에서 벗어나 DSLR로 본격적인 사진의 길로 접어들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다. 하지만 조선희라는 사진작가는 카메라보다는 찍는 행위에 좀 더 방점을 두라고 한다). 오르막을 오르며 옆을 보니 또 근사하기 짝이 없는 풍경이 펼쳐지는데 차를 세울 곳이 마땅치 않다. 내리막 지점에 차를 세울 곳이 있어서 차를 주차해 두고 달려오는 차들을 잔뜩 경계하면서(운전자들은 국도 변을 따라 걷는 내가 더 성가셨겠지만) 걸어내려와 저무는 호수를 담아보았다.














어느 새 날은 어두워지고 며칠 전에 통화한 고등학교 반창과 연락이 되어 차를 돌린 다음  919번 지방도를 타고 경산 쪽으로 차를 몰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