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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울릉도 여행

by 길철현 2019. 11. 26.


[글을 쓰려고 여행 사진들을 보니 꼭 한 달이 지났다. 휴대폰에 몇 자 적어 둔 것 외에는 사진 밖에 없으므로 사진들을 좇아가면서 떠오르는 기억에 맞춰 써나가야 할 것이다. 특이할 만한 것은 울릉도에 들어갈 때의 심한 배멀미로 울릉도가 이국적이고도 매혹적인 풍광에도 불구하고 접근이 쉽지 않은 관광지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얼마나 많은 부분들을 기억의 창고에서 불러올 수 있을 지는 미지수이지만 무엇보다 써나갈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이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1. 출항 전날


(전에 쓴 글)


울릉도는 남해와 서해의 숱한 섬들과는 달리 동해의 유일한 유인도(일정 규모가 넘는)이자 그 비경으로 명성이 자자한 곳이다. 하지만 여행을 좋아하는 나로서도 네 번의 시도 끝에 드디어 다녀올 수 있었을 만큼 육지에서 거리도 멀고 바다의 파도가 거친 날이 많다. 한 달 전 54번 째 생일을 자축하기 위해 예약을 했지만, 그 때도 높은 파도 때문에 배가 출항할 수 없었는데, 이번 이박삼일(10월 26일에서 28일)의 여행은 오랜 시간 마음 속에 품어왔던 곳들, 봉래폭포와, 성인봉, 그리고 독도 등을 모두 누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 밖에도 울릉도는 해안 전체가 수직으로 솟아오른 비경으로 우리나라의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경치들을 선사했는데, 도동에서 저동으로 이어지는 행남 해안길(저동의 해안길은 안전 문제로 대부분이 폐쇄되었지만 멀리서 보아도 좋았다), 연육교로 연결된 관음도, 송곳봉(추산), 노인봉, 그리고 이 두 봉우리와 향목 해안의 절벽을 한꺼번에 조망할 수 있는 태하의 대풍감 등은 두고두고 내 기억과 사진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여행 일정이 모두 순조롭지만은 않았는데, 첫 고비는 들어가는 배 안이었다. 배멀미를 겪은 적이 없어서 '파도가 높으니 멀미약을 복용하라'는 직원의 말에 코웃음을 쳤는데, 정말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격이었다.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 채 든든하게 챙겨 먹은 아침을 연신 위생봉투에 게워내면서 나는 왜 세네카가 배로 몇 마일 여행하느니 20년 동안 땅 위에서 여행하겠다고 했는지를 제대로 실감할 수 있었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다시 출발지인 포항으로 돌아가고만 싶었다(전날 싼 모텔 방이 너무 더워서인지 잠을 설친 탓에 몸 상태가 좋지 않은 데다가 멀미까지 했으니 설상가상).


이튿 날 첫 일정이 독도로 들어가는 것이었는데, 자다가 무슨 소리에 새벽녘에 잠이 깼는데 비가 거의 폭우 수준으로 내리고 있었다. 독도로 가는 배가 뜰 수 있는지도 알 수 없었고 전날에 곤혹을 치른 다음이라, 지레 겁을 먹은 나는 예약을 취소하는 문자를 해운회사로 보냈는데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회사의 홈페이지로 들어가서 예매 취소를 하려 하니 당일은 취소가 안 된다고 했다. 직접 터미널로 가서 취소하든지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비가 차츰 개여 그냥 예정대로 발권을 했다. 날은 좀 흐렸지만 파도가 높지 않아서 '삼대가 공덕을 쌓아야 한다'는 입도에 운 좋게도 성공했다. 동도와 서도라는 큰 섬과, 그 밖에 수십 여개의 바위로 이루어진 독도의 역사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하고 일본이 자신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그 근거도 잘 모르지만 일단 우리가 실효 지배를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백여 미터 정도 수직으로 솟아오른 그 두 개의 섬이 울릉도의 다른 곳 못지 않게 혹은 그것을 능가할 정도로 수려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 등이 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한 어머니는 열 살 정도된 아들에게 "여기는 대한민국이야"라고 말하는 것 또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하루 정도 더 머물면서 차를 렌트해 섬을 한 바퀴 구석구석 돌아보고도 싶었지만 어머니가 몸이 좋지 않다는 전화가 왔고, 또 바다에서 불어오는 강풍이 자칫 섬에 묶일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성인봉 정상을 밟고 나리 분지 구경을 한 다음 서둘러 돌아오는 배에 몸을 실었다. 멀미가 걱정이 되어서 알약과 물약을 먹고, 좌석도 우등석을 끊었으나 돌아오는 배 안은 그야말로 흔들림 없는 아늑함이었다. 카메라와 휴대폰의 배터리가 모두 다 나가서 시간을 때울 겸 책을 읽었을 정도로.


바다를 낀 울릉도의 경치는 하나하나가 그림 같았고, 그곳에서 보낸 2박 3일은 내 삶의 또 소중하고 아름다운 한 페이지로 남을 것이다.


(보다 자세한 이야기와 사진을 따로 정리할 기회가 있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