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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대만(타이완) 여행(191223-31) - 대만 인구의 절반은 한국인이다 -8박 9일의 자유 여행(2)

by 길철현 2020. 1. 17.


2. 왜 대만?


작년에 어머니의 노환으로 인한 여러 사정들과 아이디어의 부재 등으로 박사 논문을 건너 보낸 다음 나는 어머니를 돌보는--돌본다기 보다는 어머니 곁에 있는 역할이 더욱 중요한 것이지만--틈틈이 이곳저곳으로 떠돌아 다녔다(아니 논문이 쓰기 싫고 공부가 하기 싫어서 어머니가 척추를 다쳐 병원에 입원하기 전에도 주로 강원도 지방을, 그것도  저수지를 중심으로 떠돌았다). 그 중에서도 몇 번의 실패 끝에 드디어 방문할 수 있었던 울릉도는 "신비의 섬"이라는 홍보 문구에 어울리는 비경을 선사해 주었다. 들어갈 때는 열 번 이상이나 토할 정도로 엄청 멀미를 해서 때늦은 후회(왜 사서 고생을?)를 하기도 했으나, 배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울릉도는 신비로 나를 감쌌고, 2박 3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독도 입도, 성인봉 등정, 울릉도 일주까지 모두 해내었다. 무엇보다 대풍감에서 바라본 송곳봉, 노인봉을 비롯한 해안선이 주는 비경은 정말 잊기 힘든 그런 것이었다.


영국 여행이 나에게 남겼던 강렬한 인상으로 2016년도에는 해외 여행을 두 번이나 더 나갔다. 백두산과 홍콩이라는 가까운 곳으로 각각 2박 3일, 3박 4일이라는 짧은 여행이었다. 백두산(중국은 장백산이라고 부르고 있었다)은 그 상징성과 천지가 주는 신비감을 맛보고 싶어서였다. 처음에는 자유 여행을 생각했으나 한 곳만 가는데 굳이 자유 여행을 할 필요가 있을까 해서 패키지로 변경했는데 편리함이라는 장점과 함께 제약이 많다는 단점을 동시에 경험했다. 홍콩으로의 여행은 당시 홍콩에 있던 막내 여동생이 한국으로 들어오기 전에 한 번 놀러오라고 그래서 년말에 부랴부랴 다녀왔다(이 여행기는 마무리를 하지는 못했지만 블로그에 올려 놓았다). 비싼 물가를 감안할 때 숙식을 해결하고 또 여동생이 가이드 역할까지 해주어서 편안함과 자유, 둘 다를 어느 정도 누릴 수 있었던 여행이었다. 거기다 체육관을 찾아 좀 나이 든 홍콩분, 그리고 클럽 선수인 초등학생들과 탁구 시합을 한 것도 잊을 수 없는 추억. 하지만 그 다음 해인 2017년 5월 초 연휴에 일본 동경(도쿄)으로의 3박 4일의 여행은 첫 날 숙소를 구하느라 엄청 고생을 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일본도 이 때가 연휴라는 이야기는 들었으나 설마 내 한 몸 누일 곳을 못 구하겠는가? 안 되면 찜질방에서라도 자지, 라고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빈 방이 하나도 없었다. 도쿄 근처의 유명한 온천 휴양지이자 관광지인 하코네에는 빈 방이 하나도 없었고, 내 나름대로 머리를 써 찾아갔던 그 인근의 소도시인 오다와라 시에는 호텔이 눈에 띄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건물 6층엔가 있는 한 군데 호텔마저 "노 베이컨시"라고 매정하게 말했다. 그 다음 요코하마 시에서도 몇 번의 실패를 맛보았고, 기차를 타고 다시 도쿄로 들어오니 거의 밤 12시가 다 되었다. 일본에 찜질방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는데, 어디인지 찾을 수도 없고, 이 때 쯤에는 휴대폰 배터리도 다 떨어져 나에게 남은 것은 그야말로 노숙뿐인 듯했다. 그 때 상당히 큰 호텔이 하나 눈에 들어왔는데 이름이 [아파]였다. 호텔 프런트로 들어갔더니 천만 다행으로 더블 룸이 하나 있었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십오만 원 가량의 꽤 비싼 가격이었으나 나에겐 그것도 감지덕지였다(이 기억들을 글로 제대로 적어볼 수도 있으리라).   


일본 여행 이후로는 논문에 대한 압박감과 경제적 사정 등으로 해외 여행을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논문은 이제 건너 갔고, 어머니 때문에 오래 대구를 떠나 있을 수는 없지만 2박 3일이나 3박 4일 정도의 가까운 해외 여행을 가고 싶은 욕구가 내 안에서 몽글몽글 솟아오르고 있었다. 대만에 한 번 가고 싶다는 생각이 떠오른 것이 정확히 언제인지 모르겠다. 여동생이 11월에 지인들과 대만을 갔다 와서는 "음식이 너무 맛있고 볼거리도 많아서 다시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인가? 어쨌거나 시간이 닿으면 한 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으로 11월 말에는 헌 책방에 들른 김에 타이완 여행 책자를 한 권 구했다(뒤에 자세히 적겠지만 2014년에 나온 이 다소 오래된 안내 책자로 인해 타이베이 중앙역에서 난 한바탕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이번 겨울은 별다른 추위가 없는 그런 날씨이지만 그래도 따뜻한 지방으로 가고 싶었고(2016년 12월에 홍콩에 갔을 때 홍콩의 날씨는 예전의 우리 가을 날씨를 연상시킬 정도로 청명하기 그지 없었다. 대만은 홍콩과 위도가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 날씨도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다), 일본은 이미 한 번 가본 데다가 "위안부 및 강제 징용 배상 문제"를 둘러싼 양국간의 갈등으로 "No Japan"의 목소리가 높은 이 시점에 간다는 것이 눈치가 보였다. 거기다 동남아 지역은 혼자 가는 것이 다소 두려웠기 때문에 대만이 매력적인 여행지로 부각되었다. 이러한 사정은 다른 사람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여서 대만은 한국 여행객들로 넘쳐났다.


글을 쓴다는 것은 기억력과의 싸움이고, 다른 말로 하자면 과거의 재구성이다. 프로이트의 "사후성" 개념을 따른다면 현재의 상황과 결합하여 재체험하는 것이기도 하다. 대만에 가고 싶다, 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대만에 가야겠다, 로 구체화되었고, 12월 7일에는 또 다른 여행 안내책자를 구입했다. 이 책 또한 2014년도에 나온 것이라 한물간 것이긴 마찬가지였다. 비닐 포장이 되어 있어서 검토해 볼 수는 없었으나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서 구입을 했는데 이 책은 거의 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