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십 일 전의 일이구나. 의림지를 찾은 것이. 탁구 동호회 모임이 있어서 대구에서 서울까지 올라갔다. 올라가는 길에 제천에 있는 같은 동호회 회원을 태워서 갔다가 내려올 때도 내려주었다. 제천 인근에 있는 청풍 호반에 케이블카가 생겼다는 소식을 접하고 오랜만에 들러볼 심사였는데, 동호회 회원 집이 의림지 옆이라 우선 그곳부터 들렀다. 김제의 벽골제, 밀양의 수산제와 함께 삼한 시대에 축조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 중(크기는 좀 작지만 상주에 있는 공갈못도 이 저수지들만큼 유서가 깊다)의 하나인 이 저수지는 그 역사적 중요성과 함께, 용두산을 배경으로 한 호수의 모양 또한 아름답고, 크기도 부담 없이 산책할 수 있을 정도로 너무 크지도 너무 작지도 않아 매력적이다. 거기다 물이 빠져나가는 쪽으로는 수직에 가까운 바위가 폭포를 이루고 있는 것도 특이하다. 그리고 몇 년 전에 저수지 아래 쪽 개천을 따라 호젓이 걸은 적도 있는데 그 기억 또한 좋았다. 하지만 이날은 호수의 대부분이 얼어 있는 상태였고 그 위에 눈까지 덮여 있어서 호수의 그 짙푸른 물빛을 완상할 순 없었다. 대신에 일제 시대 준설 작업 중 쌓인 흙이 자그마한 섬(그냥 의림지 섬이라고 하거나 따로 순주섬이라고 부른다)을 이루고 있는 것은 예전에는 보지 못했다가 이번에는 핵심 포인트가 되었다. 저수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이기도 하고 이번에는 부표교까지 놓여져 있어서 놓칠 수가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춥지도 않고 눈도 오지 않는 이상한 겨울. 그래도 이곳 의림지는 [얼음 축제]로 인공눈(호수가 눈으로 덮인 것으로 봐서는 이전에도 눈이 오긴 온 모양. 제천은 상당히 추운 지방 중 하나)으로 썰매장도 만들어 놓고 해서 아이들은 신이 났다. 저수지를 얼마쯤 걸었을까? 눈이, 걷잡을 수 없는 함박눈이 나를 아프지 않게 강타하고 세상은 온통 하얀 도화지로 변하고 있었다. 어쩌면 올 겨울 최초의 눈이자 최후의 눈이 될 지도 몰라 온몸으로 느끼며 카메라에 담고 있는데, 휴일이라 쉬는 줄 알고 차를 세워 둔 곳의 가게 주인이 차를 빼달라고 성화였다. 길이 얼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동시에 따라와서 차를 빼고 서둘러 대구로 향하는데 단양을 지나면서 점차 약해지던 눈발이 죽령 터널을 지나자 거짓말처럼 아무런 흔적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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