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거짓말이 님 날 사랑 거짓말이
꿈의 와 뵈단 말이 긔 더욱 거짓말이
날같이 잠 아니 오면 어늬 꿈에 뵈이리
김상용 (1561 -1637)
사랑이 거짓말이 임 날 사랑 거짓말이
꿈에 와 본단 말이 그 더욱 거짓말이
날 같이 잠 아니 오면 어느 꿈에 뵈오리
(고등학교 문학 교재에 실린 것)
사랑이 거짓말 임 날 사랑 거짓말
꿈에 와 보인단 말 그 더욱 거짓말
나같이 잠 아니오면 어느 꿈에 뵈오리
(최영철 시인이 현대 어투로 고친 것)
김상용이라는 이름도 이 시(조)도 이번에 [해어화]라는 영화를 보면서 처음 접하게 되었다. 최영철의 말처럼 '병자호란 때 왕족을 호위해 강화성으로 피신했다가 성이 함락되자 화약에 불을 붙여 순절한' 문신의 시라고 '쉽게 잘 믿기지 않'는 연시이다. 이 시는 조선 초기의 뛰어난 여성 시인이었던 이옥봉의 7언 절구인 [몽혼]과 짝을 이뤄 고등학교 시험 문제에도 출제되곤 하는 모양이다.
近來安否問如何(근래안부문여하)
月到紗窓妾恨多(월도사창첩한다)
若使夢魂行有跡(약사몽혼행유적)
門前石路半成沙(문전석로반성사)
요사이 안부는 어떠신가요
창가에 달빛 환할 때 제 한은 깊어만 가요
만약 꿈 속의 넋이 자취를 남길 수 있다면
문 앞의 돌길은 벌써 모래가 되었을 것을
이옥봉의 시가 과장을 통해 임을 볼 수 없는 마음을 꿈으로나마 달래려고 했다면, 김상용의 시는 볼 수 없는 임을 향한 애달픈 마음 때문에 잠조차 이룰 수 없음을 노래하고 있어서 일맥상통하면서도 묘한 대비를 이룬다.
영화 [해어화]는 박흥식 특유의 혼종성 내지는 카니발적인 성격(이 부분에 대한 나의 판단의 정확성을 현재로서는 담보할 수 없지만 그의 영화를 네 편,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인어공주," "협녀 - 칼의 기억," 그리고 이 영화를 보고 난 느낌은 그러하다) 때문에 하나로 규정하기가 어렵긴 한데, 그러면서도 이 영화는 정신분석적으로 접근한다면 "오이디푸스적인 측면"이 강하게 부각된다. 2자 관계가 3자 관계로 넘어가면서 겪게 되는 유아의 정신적 혼돈과 상실감과, 배신감과 분노, 그리고 수용, 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과정이 우리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성인(어른)이 되는 것인가?
영화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원래 정가인 이 시조를 등장인물인 김윤우가 작곡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사실 이 노래는 이 영화를 위해 새로 작곡된 것은 아니고, 성예림이라는 분이 이미 작곡한 것을 영화에 사용한 것이다. 가수도 아닌 한효주가 얇은 고음으로 정가와 가요의 조화를 꾀하면서 애절하게 잘 불렀다는 생각이 든다. (소울지기라는 정가 그룹이 부른 것이 좀 더 전문적이긴 하지만.) 마지막으로 그 가사도 옮겨 본다.
거즛(짓)말이 거즛말이
님(임) 날 사랑 거즛말이 (님 날 사랑) 거즛말이
사랑 사랑 거즛말이
꿈에 뵌단 말이 그 더욱 거즛말
날 같이 잠 아니 오면 어느 꿈에 뵈리
하아 아아 하아 아아 아하 아아
사랑 거즛말 사랑 거즛말 사랑 거즛말이로다
꿈에 보인다는 말이 더더욱 더더욱 거즛말이니
사랑 아 하 거즛말이 사랑 거짓말 사랑 거즛말 사랑 거짓말이로다
아하 아하 사랑 하아 사랑 거즛 거즛말
(덧붙임)
1. 옛시조 한 편을 현대 어투에 맞게 다듬어 보았다. 김상용은 병자호란 때 왕족을 호위해 강화성으로 피신했다가 성이 함락되자 화약에 불을 붙여 순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강직한 선비가 썼다고는 쉽게 믿기지 않는 시다. 얼마나 통쾌한 촌철살인인가. 사랑이 깊으면 나같이 긴 밤을 꼬박 지새워야 하거늘 어찌 꿈에서 나를 보았다 하는가 말이다. 습관적인 사랑 고백을 일삼는 우리를 향한 따끔한 일침이다. 지금 시점에서도 이 시의 의미는 유효하다. 총선에 출사표를 던진 선량 후보들의 온갖 난무하는 공약을 들으며 새삼 어디까지가 참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일지 촉각이 곤두선다. 최영철·시인 ([국제 신문]에 실린 글)
2. 정가는 “아정(고결하고 정직함)한 노래”라는 뜻으로, 정악 중 성악곡을 가리킨다. 정가에는 가곡 · 가사 · 시조가 있다. 가곡과 시조는 모두 3장 4음보 형식의 시조시 사설을 쓰고 있지만, 음악적인 형식은 가곡과 시조가 전혀 다르다. 가곡은 전체 5장과 두 개의 여음(대여음 · 중여음)으로 구성된 것에 반해, 시조는 3장 형식의 비교적 간단한 음악적 형식으로 되어있다. 가사는 현재 12곡이 12가사라는 명칭으로 전해진다.
(국악용어사전, 2010.7, 국립국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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