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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밖의영상들

마이클 크라이튼 - 이색지대(Michael Crichten - Westworld). 1973

by 길철현 2020. 2. 28.



미드 [웨스트월드]는 나에게 신비롭게 다가왔다. 처음부터 본 것이 아니라, 몇 번째 에피소드인 줄도 모르는 채로 자막도 없이 중간 몇 부분만을 보았기 때문에 도무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잘 알 수 없는 가운데 뭔가 아련함, 간절함 같은 것이 남았다. 이 때 본 것은 원주민(인디언) 인조인간이 자신의 연인을 찾아 헤매는 에피소드와, 또 중심인물 중 한 명인 버나드와 관련된 에피소드 등이었다. 신비는 무지의 다른 말이라는 말도 있지만, 이 신비감에 이끌려 나는 시즌 1을 다 다운받아서 제대로 보았고, 시즌 2의 마지막 에피소드 다섯 갠가 여섯 개는 밤을 새워 보느라 그 다음 날엔 비몽사몽으로 보내야 했다. 이제 시즌 2이 3월에 나오는 모양인데, 어떻게 전개가 될지 자못 궁금하다. (이 드라마는 반복과 미묘한 차이, 별다른 설명 없이 과거와 현재가 연속적으로 교차함에 따르는 혼돈 등으로 상당한 지적 작업이 필요하고, 인조인간이 자의식을 갖게 되는 과정 또한 복잡미묘하다. [매트릭스로 철학하기]처럼 이 드라마에서도 철학적 메시지를 찾아내고 그걸 책으로 펴내기도 했다. 나 역시도 이 드라마를 분석해 볼 셈이다. 어디까지 갈 지는 알 수 없지만, 드라마 자체가 흥미롭기도 하지만, 해결되지 않은 궁금증이 많이 있다.)


1973년에 나온 영화 [웨스트월드]는 마이클 크라이튼의 인기 원작을 영화화하여 전세계적으로 대히트를 기록한 스필버그 감독의 [쥬라기 공원]의 오리지날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상상만 해왔던 것을 현실의 놀이 공원을 통해 구현하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파국으로 치닫고 만다는 얼개가 [쥬라기 공원]과 이 [웨스트월드]에서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원작자인 마이클 크라이튼이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에서는 먼 과거에 멸종된 공룡을 부활시킨 것이 아니라, 인간을 재현해낸 인조인간이라는 점이 차이를 보이지만 사소해 보이는 오작동들이 이어지다가 결국에는 전체적인 혼란으로 전개되는 것이 두 작품 모두에서 필연처럼 작동하고 있다. 크라이튼이 과학 기술의 발달이 가지고 올 지 모르는 재앙에 대해서 경고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으나, 정작 우리에게 실감나게 와닿는 것은 상상이 구체적 이미지로 구현될 때 주는 경이감이다. 영화로 구현된 티라노 사우루스의 콧김은 우리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1973년 당시 영화 기술은 현재의 그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여서 온갖 첨단 기술과 이미지의 세례를 받은 현재의 우리에게 이 영화는  그다지 실감나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다만 [웨스트월드]가 고대 로마와 중세 유럽과 1880년대 미국 서부라는 세 개의 테마로 이루어진 놀이 공원이며, 이 세 곳의 인조인간들이 영화 후반에는 인간을 살해하거나 살해하려 한다는 점이 현재의 미드와는 큰 차이점이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 영화의 후반부에서는 서부 총잡이 인조인간 역을 맡은 율 브리너가 남자 주인공을 살해하려 끊임없이 추적하다가, 결국에는 자신이 파멸에 이르게 되고 마는 데, 이 장면은 이후 [터미네이터] 1편의 아놀드 스왈츠제네거를  연상시킨다. 또 이 작품은 미드와 달리, 왜 인조인간이 오작동을 하게 되었는지, 인조인간의 오작동이 미드에서처럼 인조인간들이 자의식을 갖게 되면서 인간에 대한 분노도 동시에 품게 되는 등의 심리적인 면은 시간 등등의 문제로 완전히 배제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현재의 드라마와는 다르게 단순한 SF물로 보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