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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금수산 등반, 그 외(010526-27)

by 길철현 2020. 6. 28.

[금수산 등산기] (526-7)

 

<녹음 부분>

*아홉 시 십오 분에 서울을 출발한다. 2001526. 오늘의 등산 행선지는 속리산이 될 지 금수산이 될 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금수산 쪽일 듯 하다. 그리고 그 정선 쪽을 한 번 둘러보는 것도 괜찮을 듯 하다. 요번에는 함백산 고개를 넘을 수 있으리라.

*날이 잔뜩 찌푸린 것이 어쩌면 비가 한 줄기 할 듯도 하다.

*서울 시내에서 아니면 도심에서 운전을 한다는 것은 상당한 긴장을 요구한다. 특히 남들보다 좀 더 빨리가고 다른 사람에게 다른 사람의 교통의 흐름에 방해를 주지 않으려고 하면 상당히 신경쓰야 할 점이 많다. 너무 차가 많기 때문이다. 너무 도로가 복잡하기 때문이다.

*표현 도구로서 종합적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와, 그 다음에 문학 혹은 언어의 차이점을 잠시 생각해 본다. 지금 내 앞에 펼쳐져 있는 풍경, 도시고속도로 들어가는 차들이 이렇게 늘어서 있고, 으 고가도로가 있고, 그 다음에 아파트 단지가 있는 이 광경을 화면으로 보여준다는 것은 참 쉽지만, 언어로 정확한 영상을 그려낸다는 것은 쉽지가 않다. 도로가 있고 그 다음에 아파트가 있다. 이렇게 쓸 때 사람들은 각각 저마다 다르게 상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언어로 또 그걸 일일이 자세하게 설명한다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러나 이것은 제약인 동시에 또 어떤 면에서는 우리의 상상을 자극하는 면이 있다. 화면은 하나를 보여주기 때문에 구체적이고 생생한 반면 다른 여지가 없다. 상상의 여지가 없고, 오히려 거기서 자유로움이 없어지는 것일 수도 있는 듯 하다. 어쨌거나 언어가 좀 더 추구하고 나아가야 될 바는 저것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그런 측면은 아니다. 그런, 저것이라는 것은 아까진에 말한 광경이지. 저것을 정확하고 섬세하게 묘사하는 데에 치중해서는 승산이 없다. 언어는 좀 더 깊이 있는 쪽으로 들어가야 할 것이다. 화면으로 보여줄 수 없는 것, 그것에 우리가 좀 더 승부를 걸어야 할 것 같다.

 

*내 인생이 어떻게 끝날 지는 정확하게 장담할 수 없지만, 내가 꿈꾸는 바를 향해서 나아간다는 것, 그 걸음이 아무리 지지부진할 지라도, 그 점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Rick Springfiel, Jessie's Girl.

*삶이 하나의 축복이고 기회일 수 있다는 것은 그런 측면일 것이다.

*강희 생각.

*교통량이 다소 많은 편이라 과속을 하기는 힘이 든다. 제한 속도 정도로 달릴 수 있는 그 정도 교통량이다.

*교통 사고의 흔적을 지났다. 묻은 핏자국이 아직 가지 않았다. 핏자국이 상당히 광범위하다. 얼마나 큰 사고였을까?

*추월하려고 하고, 추월당하지 않으려고 하는 이 사소한, 말없는 가운데 벌어지는 치열한 전쟁.

*앞에 그레인저가 갑자기 천천히 가길래 웬일인가 하고 추월하면서 보니까, 핸드폰을 받고 있다.

*원주에서 제천까지 고속도로는 내가 모르는 사이에 확장 되었는지, 아니면 일부만 확장되었는지 애매하다.

*이 새로 생긴 5번 국도는 중앙 고속도로 인 것으로 보인다. 고속도로가 완전히 개통되기 전에 임시적으로 국도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길이 그다지 쉽지가 않다. 597.

*597번 도로는, 새로 생긴 도로 때문에 좀 더 빨리 왔지만, 새로 생긴 도로 때문에, 약간은 혼란스러웠다. 그렇다고 찾는 데 어려움을 겪은 것은 아니지만.

*금수산으로 가는 길에 기암들이 도로 우측편에 있는 것을 보았다. 자연적이라고 믿기에는 신기로운 삐죽삐죽한 기암들이 언덕 위에 솟아 있었는데, 공사중이라는 팻말과, 그 다음에 차를 세울 곳도 없고 해서, 그냥 지나왔다. 대단히 신기한 곳이다. 돌아갈 때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충주호 주변에는 호텔이라든지 민박시설 이런 것이 많이 들어서 있다. 행락지임을 알 수 있다.

*상천리로 들어가는 652번인지 뭔지 이 지방도로도 경치가 참 좋다. 나중에 또 누군가 같이 올 사람, 연인이 있으면 같이 와야지. (655번이었다.)

*그런데, 이정표에는, 도로 안내 표지판에는 금수산 표시가 전혀 없다.

*클럽 ES는 언덕 위에, 진짜 동화 속에 나오는 것 같은 집을, 집들을 여러 채 지어 놓았다. 하룻밤 와서 묵고 싶은 그런 곳이다.

*열 두 시 십분에, 상천리에 도착했다. 여기도 역시나 531일까지는 입산 금지이다.

*개천은, 여기는 완전히 바싹 말라 버렸다.

*열두 시 삼십육 분에 등산을 시작했다. 산행 예정 시간은 네 시간 정도이다.

*이 산도 제대로 등산로 입구를 찾기가 힘들다. 왜 이렇게 안내에 무성의한 것일까?

*소로 태어나는 것이 더 행복한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봤을 때, 소가 평온한 것은 사람의 아래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친다. 이 산은 날이 너무 가물어서 드라이, 하다. 드라이.

기암들은 멋있다.

*어디가 입구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길을 두 번이나 놓쳤다. 이 산은 무슨 산인가?

*이 산은 사람이 그다지 많이 찾이 않는 산이라서 그런지 숲이 대단히 울창하다. 용담폭포는 가물어서 거의 목숨만 달랑달랑 부지하고 있다.

*이 산도 대단히 험산이다. 들어서자 마자 길을 한 번 잃어버리고, 밧줄을 잡고 올라가야 한다.

*메뚜기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어디서 들려오는 노래소리가, 차의 오디오 소리가 산의 적막을 깬다. 그것도 뽕짝이다.

*지난 한 주 동안 자위 행위를 많이 했기 때문인가? 걸어올라가기가 수월치 않다. 좀 더 올라가다가 쉬어야겠다.

*충주호 주변의 이 산들은 우리 나라의 다른 산들과 마찬가지로 험산이다. 중부 혹은 강원도 북부, 경기도 북부의 산들이 그러하듯이. 좀 더 험산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 눈과 귀와 혀를 통해서 느낀 것, 그것을 소중히 해라. 그리고 나의 머리를 사용하고, 그것을 믿어라.

*내 눈과 귀와 입을, 혀를 통해서 판단하고, 정확하게 판단하고, 일차적으로는 그것이 중요하다. 그 다음에는 나의 머리이다. 나를 너무 부정하는 것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지나친 긍정과 지나친 부정은 다 좋지 않다는 것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진짜로 사람의 진을 빼는 산이다. 그런데, 정상은 아직도 멀기만 하다.

*저 새 소리는 무슨 소리인가? 저게 소쩍새 소리인가?

*뻐꾸기 같기도 하다. 뻐꾹뻐국하는 것 같지 않나?

*새들은 울어서 무슨 신호를 주고 받나? 이 새는 무슨 새인가? 아주 크게. 잘하면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뻐꾹뻐꾹.

*지금 시각 두 시 오 분. 이제 험하지는 않은데. 고지는 어디인가?

*빗방울이 한 방울, 내 손등을 툭 쳤다. 아 비가 내리면 안 되는데.

*살개바위에서 정상까지는 20분 걸리는데, 거리는 삼백 미터이다. 삼백 미터가 이십 분이라니.

*은영이와 헤어지고 나서의 나의 행적은 내가 은영이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한 그대로이다. (헐떡임) 부끄러운 걸 알아야 한다. 문학을 좀 더 치열하게 할 줄 알아야 한다.

*정상 도착 시각은 두 시 오십 이 분.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고 나서 대체로 나는 사람들을 피한다. 그것이 나의 보통 때의 모습이고, 혹은 약간 침체된 시기의 모습이고, 그 밖에 좀 더 쾌활할 때에는 사람이 반갑고 즐겁다.

*정상에서 본, 정상에서 아주머니 두 분이 계셔서, 너무 성급하게 내려온 기분이 든다. 충주호가 구비치는 광경이 한 눈에 들어오고, 산악 지대가 이렇게 쫙 펼쳐져 있는 것이, 힘든 산행을 다소나마 잊게 해주는데, 어쨌거나 사람이 불편할 때도 때로는 있는 것이다. 뭐 어쩌란 말이냐.

*철쭉꽃이 많이 떨어져 있다. 올해의 철쭉은 그다지 아름답지는 않을 듯하다.

*바람소리와 새소리, 내가 걸음을 멈추면, 그 두 가지 소리밖에 없다.

*바람이 부는 것을, 바람과 나무가 연애하는 것으로, 그렇게 해서 시를 써보는 것도 괜찮을 듯도 하다.

*바람과 나무가 연애하는 것을 본 적이 있나요?

*바람은 남자이고, 나무는 여자이고

나무는 여자이고, 바람은 남자이고

사랑이 지나쳐 때로는 죽이기고도 하고

*바람은 상처입을 줄 모르고 상처만 입히는 그런 존재

*거미줄에 걸린 흰 나방인지, 나비인지, 나방 같기도 하고 나비 같기도 한데, 나비라고 하기에는 등에 털이 많이 나있다. 거미줄에 걸려 있는 것을 거미줄을 헤쳐주었는 데도 날아가지 못한다. 거미의 독이 벌써 많이 스며든 모양이다.

*뱀에 대한 공포.

*내가 서 있는 이 나무는 꼭 귀신이라도 나올 듯하다. 왜 이렇게 산발한 여인처럼 얼키고 설켜 있는지.

*개 짖는 소리가 들리고, 마을이며 밭이며가 시야에 들어온다.

*꽤나 벅찬 등산이었다. 지금 시각은 몇 시냐 하면 네 시 십오 분. 한 십 분 정도 더 내려가면 마을이 나올 듯 하다. 아 벅차다.

*네시 이십이분 등산은 끝이 났다. 아 힘들었다. 네 시간 가까운 등산. 정상 부분이 좀 험했지. 대체로 다 힘겨운 코스였다.

*자연적인 것이라고 믿기 힘든 그 봉우리는 금월봉이라는 곳인데, 참 특이한 형상이었다. 바닷가에나 있을 법한 그런 삐죽삐죽한 바위들이 나와 있는 것이 신기하다.

*small wonder of nature

*고속도로처럼 잘 닦아놓은 이 도로는 앞서의 짐작처럼 고속도로는 아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고속도로같다. 이 중앙 분리대. 도로의 정비해 놓은 수준이라는 것이. 그만큼 토목 기술이 늘고 있다는 증거겠지. 이 길로 가서 영월로 빠질 수 있을 지 모르겠다. 우회도로가 나올 테니까 빠지면 되겠지.

*이 도로는 거리 자체가 얼마 되지 않는다. 아직 공사가 끝난 부분이 얼마 되지 않는다.

 

*중앙 이발소의 아가씨를 만나서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다. 있을 지 모르겠다.

영월의 그 이발소 아가씨를 또 팬터사이즈하고 있다. . . 오늘은 토요일이라 일찍 문을 닫았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 이발소 자체가 . . . 어쩌겠다는 거냐? 상상만 하는 것이지. 절에 가는 것을 두려워 했다는 말이 떠오른다.

*오늘 벌써 237킬로나 달렸다. 500킬로 가까이 달릴 듯 하다. 오백 킬로에 육박하는 듯하다. 그러고보니까 그 때 아프던 어깨가 아직도 완전치는 않구나.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은영이도.

*영월은 오늘은 나에게 다른 인상으로 다가온다. 길이 다른 길이어서 그런가? 뒷길로 가는 듯하다.

*혹시나 하고 왔지만, 역시나 그녀는 없다. *일 따름이다. 왜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느냐?

*에로스 유흥 주점 앞에 씌여 있던 말이 웃긴다. 경로우대증 소지자 65세 이상 20프로 할인. 만두집에서 라면을 먹고, 거기다 만두를 주문을 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영월에서 자고 가야 할 것 같다.

*영월은 자주 와서 그런지, 몇 번 짼가, 네 번 째 다섯 번 째, .

*비디오 감상실은 없고, 쓸쓸히 영월의 뒷골목을 걷고 있노라니. , .

*리버파크모텔은 옛날의 도원장이 맞는 듯. 이 탁자가 옛날의 그것을 연상시킨다. 맞다고 봐야 할 것이다. 위치상으로 볼 때 여기밖에 없다.

*리버파크모텔에서 잠을 잤다. 이 모텔은 도원장 같다는 이야기는 어제 한 것 같고, 그런데, 어젯밤에 꿈자리가 너무나 좋지 않았다. 너무나 슬펐다. 돈도 하나도 없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완전히 떨어져 나간 사이였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드디어 고씨 동굴을 가본다.

*고씨 동굴은 종유석이나, 석순, 석주 등의 발달은 고수 동굴보다 못하고, 넓이나 규모 등에 있어서는 환선굴이나 화암 동굴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바닥에 있는 작은 못들이 동굴의 신비감을 더하고, 그런대로 와 볼 만한 굴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문산을 지나서 있는 그 절의 이름은 뭔지 모르겠다. 215일부터의 여행에서 나는 어라연 아니, 15일부터의 여행에서 어라연에 갔던 것하고, 뭐 그다지 머리를 쓰지 않아도 웬만큼 다 기억이 날 것이다. 그 절에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은 그 생각.

*어제 고속도로에서는 유조차를 몰고가던 사람이 승합차를 덮쳐서 여덟 명이 죽고, 두 명인가가 크게 다쳤단다. 유조 롤리 밑으로 승합차가 들어간 채 이백 미터 이상을 달렸다고 하는데. 끔찍한 일이다. 유조차 운전수는 앞에 있는 승합차를 못 보았다고 한다. 그런 일이 있다니. , 승합차는 속도를, 무슨 일인지 속도를 늦추고, 비상 깜박이를 넣고 달렸다고 한다.

*이스라엘에서의 그 결혼 피로연 장 붕괴 사고도 끔찍스러운 일 중의 하나였다. 생과 사과, 일이 초 사이, 몇 십분의 일초, 일초 상간이라는 것. 신나게 놀고 춤을 추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사라지던 장면, 그 장면을 화면에 담아 낸 것도 대단한 일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 가든 근처에서 쉬었던 것 같다. 수상 보트라든지 이런 것이 많이 있는 곳.

*오른 편에 있는 직벽은 둥글 바위를 지난 곳에 있다.

*정부를 비난하는 구호는 그 사이에 사라진 것 같다. 천들이 안 보인다.

*생존권 투쟁이라는 말 한 마디만 옛날의 그 치열했던 투쟁을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비틀즈 노래)

*도로가 워낙 좁아서 교행을 해야하는 상황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운중사까지의 거리는 2킬로, 왕복 한 시간 거리이다.

*“925일까지 종합 대책 못 세우면 동강은 피강된다저것은 하나 남아 있다.

*아무도 밟지 않은 숫눈길을 걸어서, 이 고개를 넘어서 운중사로 갔지.

맞는지 안 맞는지. 과연 운중사로 가는 길인지 헛갈려 하면서.

*래프팅 하는 사람들이 꽤 많이 있다.

*그 때 나를 채웠던 것은 허기였다.

*돌아나올 때 쉬었던 비닐 하우스도 보인다. 크랙커를 하나 먹었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여기에 와서 사랑을 맹세하고 싶다. 그러나 사랑은 일회적인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노력해야 할 그런 것이다. 감정의 고양이 모든 것을 설명해주는 것은 아니다.

*절 근처의 집은 예전 그대로 인데, 빈집이라고 하기엔 너무 깨끗하고, 사람이 산다고 하기에는 신발도 없고, 문도 찢어졌고, 비가 많이 올 때 꼭 한 번 와 보고 싶다.

*(풍경 소리) 바람이 불자 풍경 소리가 대단히 요란하다. 지금에 보니까, 그리고 오른편에 있는 함석으로 지은 자그마한 건물은 산신각이다.

*강원도 운중사. 강월도 영월하고도 댐 건설 문제로 시끄러운 문산리를 걸어서

거기서 산으로 이킬로 들어간 곳에 운중사는 있습니다. 아무도 없는 절.

*이 소들은 무엇을 기다리는가? 귀에다 번호표 꽂고, 코에다 코투레 꿰고, 먹고 자고, 꼬리로 파리를 쫓으면서.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가? 왜 났는가? 너는 왜 태어났는가?

*차를 타고 돌아나오는 길에 뱀 한 마리를 보았다. 차를 보고 뱀이 놀라서 몸을 확 돌리는 것이 우섭다. 약간은 무섭기도 하면서. 뜻밖의 곳에서 뱀을 만났다. 중앙 이발소의 그 아가씨와 또 어라연에 동행을 한 점박이는 보이지 않는다.

*고요하기만 하던 동강이 래프팅하는 사람, 낚시하는 사람, 놀러나온 사람 등으로 북적댄다.

*[달동네 식당]에서 순두부를 먹고, 우회도로로 나오는 길에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사람을 보았다. 맑은 하늘을 글라이더를 타고 내려오는 모습은 대단히 아름답게 보인다.

*삼월 달에 왔을 때에도 길을 잘못 들었었는데 요번에도 길을 잘못 들었다.

*수라리재. 해발 535미터.

*아 정말 그 사람이 그 좋았던 감정만 가지고 있을 수도 없고, 싫었던 감정만 가지고 있을 수도 없고, 좋았던 사람을 계속 만날 수도 없고, 사연 듣다보면 우울해 지기도 하고 슬퍼지기도 하고, 그런데 이분은 굉장히 긍정적으로 사시네요.--임백천

*315일에도 이곳[고한]에 왔고, 그 때도 한 번 둘러보았던 것 같은데.

*빗방울이 하나둘 씩 떨어져 내린다. 차창에 빗방울이 가득해 졌다.

*장미--사월과 오월

*새재 터널. 지난 번에도 여기를 지났던가? 금방 만든 것 같지는 않은데.

*정선에서 평창 쪽으로 가다가, 문희 마을로 들어가본다. 여기는 동강의 발원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여기는 처음 가본다. 문희 마을이, , 고은의 시에 나오는 문희마을이 맞는지 모르겠다.

*동네에는 정부는 아는가 60년대 그 시절을이라고 써놓았다. 문희마을 들어가는 기화리?라는 동네이다.

*기왕지사 서울에 일찍 돌아갈 것이 아니라면 마음껏 자연이나 즐기고 가야 될 것 같다.

*문희 마을로 가서. 강을 끼고 문희 마을까지 걸어가도록 하자. 먼지를 많이 마시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고은은 문희 마을로 가서 무엇을 보았던가?

*동생의 죽음이었던가? 참 가기 힘든 마을이다. 어라연에 가는 대신에 어라연과 비슷한 길을 걷는구나. 문희라는 이름은 참, 드문 마을 이름인데. 겨울의 문희 마을.

*과연 문희 마을은 있는 것일까? 한 시간 가량 걸어왔는데도, 마을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이 사람들은 무엇을 먹고 사는가?

*길은 이쯤, 여기서 끝이 났다.

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의 넓은 길은. 그리고 배 한 척이 매여 있다. 저 강 건너 마을이 문희 마을인가? 알 수가 없다.

*이쪽은 수량도 많고, 제법 물의 흐름도 빠르다. 위로 길이 나있긴 하다. 이 길은 어느 정도까지 이어지는 지 모르겠다. 이 길 역시도 조금 되는 듯 하다가, 끊어지고 만다.

*문희 마을은 어디인가?

*전방에서 내려오니까 군인들이 눈에 띄지 않아서 좋다. 군인들과 부딪치지 않아서 그것도 좋다.

*새끼 염소 두 마리와 어미 염소 한 마리. 길 가에 나와 있던 어미 염소는 차가 지나가자 벼랑 위로 뛰어 놀았다. 그리고 내가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까 빤히 나를 쳐다보았다. 혹시라도 새끼에게 해를 가하지는 않을까? 그게 두려웠던 것일까?

*사람들은 부지런히 올갱이를 주워 담고 있다.

*욕망을 떨군다는 것은 무엇인가? 가장 어려운 질문이 그것이리라. 욕망을 떨군다는 것.

*물이 꽤 많이 흐를 때 동강에서 래프팅을 한 번 하는 것도 괜찮을 듯 하다.

*지금 시각 일곱 시 사십 구분 오십 분.

평창읍으로 향하는 중이다. 그러고 보니까, 이번 여행에는 검문소를 하나도 통과하지 않아도 되었다. 내가 너무 북쪽으로 많이 다닌 탓이라고 보아야 하리라.

*이성재는 요원을 떠나고 다시 김미숙을 맞는다. 책방을 할 거라고 하는데. 왜 떠나는가 요원은.

*안흥 찐빵은 네 군데나 있다. 유명해지면 부지기수로 늘어난다. 다섯 군데.

*미리 정해둔 선곡 번호를 눌러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잡음이 줄어들고, 라디오 소리가 선명해 지는 것을 기다리는 것은 또 재미있는 일이다. 여주 휴게소를 지나자 차가 막히기 시작한다. 이 정체와 지체가 얼마나 지속될 지 모르겠다.

*차 한 대가 내 옆에서 과속으로 달려왔다. 나는 그 차가 나를 추월하지 못하게 하려고, 내 우측에서 나를 추월하려고 했다. 나는 그 차가 나를 추월하지 못하게 하려고 액셀을 밟았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런데, 내 앞에 있던 차가 깜박이도 넣지 않고 갑작스럽게 왼쪽으로 차선 변경을 했다. 그러자, 나를 추월하던 차가 급정거를 했고, 나도 급브레이크를 밟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앞의 저 무식한 차. 9010이다. 코란도. 무식하게 저렇게 차선 변경을 하다니. 그렇지만 나를 추월한 차를 놀라게 해서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서울로 들어서자 하천이 썪는 냄새가 코를 찌른다. 조금 전에는 도시와 시골의 다같은 필요성을 생각을 했었는데, 역시 환경이 오염된 도시는 힘겨운 점이 많다.

 

 

(526)

산행지를 어디로 잡을까 망설이다가 [등산 안내도]를 무심코 펼쳤는데, 눈에 들어온 것이 금수산이었다. 속리산도 올라가보고 싶었지만, 이상하게 이 산 쪽으로 마음이 끌렸다. 그리고, 215일부터 217일까지의 여행기를 기록하기 위해서 정선과 영월 쪽을 한 번 둘러보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었는데, 실지로 그렇게 되었다. 서울에서 아홉 시가 조금 넘어서 출발했는데, 날씨는 언제 비가 올지 모를 정도로 찌푸린 상태였다. 하지만 일기 예보가 맞다면 비가 오지 않을 것이었다.

자동차 전용 도로로 올라서기 전에 영화와 문학이라는 예술 장르를 잠시 생각해 보았다. 그걸 옮겨 본다.

 

표현 도구로서 종합적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와, 그 다음에 문학 혹은 언어의 차이점을 잠시 생각해 본다. 지금 내 앞에 펼쳐져 있는 풍경, 도시고속도로 들어가는 차들이 이렇게 늘어서 있고, 으 고가도로가 있고, 그 다음에 아파트 단지가 있는 이 광경을 화면으로 보여준다는 것은 참 쉽지만, 언어로 정확한 영상을 그려낸다는 것은 쉽지가 않다. 도로가 있고 그 다음에 아파트가 있다. 이렇게 쓸 때 사람들은 각각 저마다 다르게 상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언어로 또 그걸 일일이 자세하게 설명한다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러나 이것은 제약인 동시에 또 어떤 면에서는 우리의 상상을 자극하는 면이 있다. 화면은 하나를 보여주기 때문에 구체적이고 생생한 반면 다른 여지가 없다. 상상의 여지가 없고, 오히려 거기서 자유로움이 없어지는 것일 수도 있는 듯 하다. 어쨌거나 언어가 좀 더 추구하고 나아가야 될 바는 저것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그런 측면은 아니다. 그런, 저것이라는 것은 아까진에 말한 광경이지. 저것을 정확하고 섬세하게 묘사하는 데에 치중해서는 승산이 없다. 언어는 좀 더 깊이 있는 쪽으로 들어가야 할 것이다. 화면으로 보여줄 수 없는 것, 그것에 우리가 좀 더 승부를 걸어야 할 것 같다.

 

중부고속도로에서 영동고속도로까지는 지난 주와 같았지만, 남원주에서 중앙고속도로를 타면서부터는 길이 달랐다. 그리고 원주에서 제천까지는 내가 의식을 하지 못하는 가운데, 4차선으로 확장이 되어 있었다. 전날 저녁에 과식을 한 탓에 아침에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도 배가 고프지가 않아서, 휴게소에서 김밥을 하나 샀다. 식사 시간을 절약할 겸해서, 가다가 중간에 배가 고파지면 먹을 생각이었다.

고속도로를 벗어나자 단양으로 이어지는 우회도로가 보였다. 5번 국도라고 적혀 있는데 금방 공사를 끝낸 도로였다. 지난 번 전국 일주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새로 공사하는 국도들은 중앙 분리대까지 설치하여 고속도로와 다를 바가 없었다. 나는 이 도로가 중앙고속도로를 개통전까지 임시로 고속도로로 이용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했다. 거기서 597번 지방도로 빠져, 금수산으로 향했다. 597번 지방도는 처음으로 달리는 도로였다. 고등 학생으로 보이는 남녀 애들이 여럿이서 내가 가는 곳과는 반대인 제천 방면으로 히치하이킹을 하고 있었다. 특별한 것이 없는 평범한 지방도로. 이윽고 충주호가 눈에 들어왔고, 호반을 끼고 달리는 도로는 언제나 기분을 상쾌하게 했다. 그런데, 내 눈을 사로잡는 경치가 하나 눈에 들어왔다. 바닷가에서나 볼 수 있는 삐죽삐죽하게 솟은 암석들이, 기괴한 형상의 암석들이, 우측 편에 봉우리를 이루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이라고는 믿기지가 않았다. 정말 내 눈을 믿기가 힘이 들 정도였다. 보통 때라면 차를 길가에 세우고 구경을 했을 텐데. ‘공사중이라는 팻말과 줄 같은 것으로 막아놓아서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인공적으로 조성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그곳이 금월봉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곳이라는 걸 알았다. 반대편에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그 경치에 반한 아주머니가 나에게 봉우리를 배경으로 가족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다. 지나가는 차들 때문에 다소 위험한 곳이기는 했으나 놓치기에는 아까운 곳이었다. 다음에 꼭 다시 한 번 찬찬히 구경을 해보고 싶은 곳.

충주호를 끼고 콘도와 민박집들이 꽤 많이 들어와 있어서 이곳이 행락지임을 실감나게 했다. 청풍 대교에서 왼쪽으로 나 있는 길(655번 지방도)이 금수산으로 가는 길임에는 틀림이 없었으나, 도로 표지판에는 금수산을 알리는 표시가 없어서, 금수산이 그다지 유명한 산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한국의 100대 명산]에는 들지만. 이 지방 도로도 경치가 빼어난 곳 중의 하나였다. [클럽 ES]의 콘도는 언덕 위에 여러 채의 집을 지어 놓았는데, 정말, 누군가와 나중에 와서 하룻밤을 묶고 싶은 그런 곳이었다. 돈이 있다면 욕망을 충족시키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으리라. 돈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림의 떡이 되고 만다. 어떤 사람은 저런 콘도를 아무런 부담없이 빌릴 수 있고, 어떤 사람은 빌리고 싶은 욕구를 억눌러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누가 더 행복할 것인가? 삶이 단순한 욕망의 충족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현실이 자신의 욕망 혹은 욕구를 철저히 차단한다고 할 때 행복하기는 힘드리라. 대충 이 정도로 해두자. 삶은 많은 부분 포기를 요구하고, 또 우리가 애쓴 보람으로 뭔가를 얻게 되었을 때 큰 기쁨을 주기도 한다.

가뭄이 얼마나 심각한 지 [클럽 ES] 옆의 꽤 넓은 계곡은 완전히 바싹 말라버렸다. 비가 시원하게 내려주어야 할 텐데. 지도에는 비포장 도로로 나와 있지만, 일부는 콘크리트 포장이긴 했어도 등산 초입인 상천리까지 다 포장이 된 상태였다. 도착 시간은 열두 시 십 분. 세 시간 가까이 걸린 셈이었다. 그런데, 여기도 산불 방지를 목적으로 입산 금지 푯말이 서 있었다. 자세히 보니 입산 금지 기간은 515일까지였다.

주차장에서 휴게소에서 산 김밥과 음료수, 어제 먹다 남은 닭고기 등으로 점심을 먹고, 산으로 올라가다가 다시 지도를 확인해 보았다. 주차장 입구에 있는 표지판은 금수산이 아니라, 가은산의 등반 안내도라 쓸모가 없었다.

 

금수산의 첫인상 중 특별한 것은 없었다. 고만고만하게 높은 봉우리들이 짙푸르게 솟아 있어서, 꽤 가파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따름. 그리고, 먹빛에 가까운 회색의 바위들이 멋지다는 정도였다. 하지만 등산은 초입부터 수월하지가 않았다. 안내도도, 등산로의 입구를 알려주는 표식도 없어서, 나는 차도를 따라 걸어가다가 다시 돌아와야 했다. 사람이 그다지 찾지 않는 산임에는 틀림이 없는데, 나보다 조금 늦게 도착한 세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내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는 등산로가 아니냐고 물었다. 나는 밖으로 나가는 게 등산로가 아닌 것 같은데. 잘 모르겠어요라고 대답했다. 세 사람 중 한 명이 민가에 들어가 등산로를 물었다. 그 집의 우측을 타고 올라가야 했다. 나는 세 사람과 어울리는 것이 싫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표시가 전혀 없어 또 좀 헤매다가, 겨우 등산로로 들어섰다. 두 갈래 길이 있었는데, 폭포가 있는 곳을 따라 가기로 했다.

용담폭포는 물이 암반을 타고 흘러내리는 상당히 긴 폭포였지만, 가뭄으로 목숨만 간신히 부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아래에서는 보이지 않던 소며, 폭포의 전체 규모가 위에 올라오자 눈에 들어왔다. 폭포에는 일가족 네 명이 와있었다. 아버지, 어머니, 남자 아이, 그 보다 조금 어린 여자 아이. 정말 외형적으로는 이상적인 가족 구성이었다. 이상하게도 사람들을 피하고 싶었다. 은영이로인해 나는 또 사람을 멀리하게 된 것이다.

폭포를 지나자 길은 갑자기 험해지다가 끊어지고 말았다. 이럴 리는 없는데, 하면서 돌아나오다 보니까, 가파른 벼랑 사이로 밧줄이 내려와 있었다. 밧줄을 타고 올라가야 했다. 등산 초입부터 밧줄을 타야 하다니, 산이 얼마나 험하려고 그러는가? 폭포에 있던 가족들도 곧 나의 뒤를 따랐다. 남자 아이가 밧줄을 타고 올라가야 해. 무서운데라고 했다. 나는 내 솜씨를 보이려는 듯 서둘러 오르다가 손가락 윗부분에 생채기를 내고 말았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급해지면서, 서둘러 이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나의 불만 때문이었을까? 사람들과의 거리감.

망덕봉까지 오르는 길은 치악산의 사다리병창에 버금가는 가파른 코스였다. 사다리병창이 더 험하고 가파른 것이 사실이겠지만, 그래도 사다리병창에는 어려운 코스에는 어김없이 계단을 설치해 놓아서 오르기가 그나마 수월했는데, 이 코스는 무지막지하게 가파르고, 험한 곳은 밧줄에 의지해서 올라야 했다. 지난 주에 자위 행위를 많이 해서인지, 아니면 코스 자체가 힘이 들어서 인지, 걷잡을 수 없이 피로감이 몰려왔다. 얼마를 올라갔을까? 뒤에서 조금씩 들려오던 가족의 목소리도 멀어지고, 나는 오롯이 혼자가 되었다. 새소리만이 나를 벗해주었다. 내 생각에는 뻐꾸기 소리였던 것 같은데, 아주 크고 또렷하게 들려왔다. 하지만, 이 산중의 고요함과 청아함은 마을의 어느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뽕짝 소리에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5/29)망덕봉을 지나고 나서부터는(망덕봉에 올라가지는 않았지만) 산행이 수월해졌다. 거기서부터 정상까지는 약 40분 거리. 정상 부근이 좀 험했을 뿐 평이한 코스였다. 아무도 없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정상에는 아주머니 두 분이 음식을 먹고 있었다. 나에게 이리 와서 좀 드세요라고 권했는데, 나는 뚜렷하게 대답을 하지 않았다. 망원경으로 충주호와 그 주변을 둘러보았다. 제천 쪽으로는 아파트 단지가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매포 읍인 듯 했다. 아무도 없었더라면 기운차게 야호라도 한 번 해볼 터였는데 그러기가 쑥쓰러웠다. 사진을 찍고, 아주머니에게 정상 표석 곁에 선 내 모습을 찍어 달라고 했다.

날씨도 흐리고 정상에 오래 있고 싶지도 않아서 하산을 서둘렀다. 하산은 서피고개 쪽으로 택했는데, 올라오는 길과 마찬가지로 대단히 가팔랐다. 내려가는 길이라 힘이 들지는 않았지만 넘어지거나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약초를 캐는 사람들을 몇 명 보기도 했지만, 올라갈 때와 마찬가지로 조용하기 짝이 없는 하산길이었다. 나비인지 나방인지, 회색빛 곤충 한 마리가 거미줄에 걸려 퍼득이는 것이 안쓰러워 거미줄을 헤쳐주었는데도 비칠거리기만 할 뿐 날지를 못했다. 거미줄에 날개가 벌써 마비라도 된 것인가? 뱀에 대한 공포심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가운데, 수풀에서 무슨 소리만 나도 깜짝 깜짝 놀라곤 했다.

등산이 끝나는 곳이 어디인가 궁금한 마음을 안고 내려왔는데, 그곳은 처음 출발할 때 갈래길 중의 하나였다. 이 때가 네 시 이십이었다. 주차장에서 나오려고 하니까 휴게소의 아주머니가 주차비를 요구했다. 주차할 때 주차비를 요구하지 않고, 나갈 때 요구함으로써 다른 곳에 차를 빼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수단인 듯 했다.

그러고보니까 하산 길에 영월의 이발소 아가씨를 많이 생각했다. 요근래의 경제 사정을 생각해 볼 때, 사만 원이라는 돈도 함부로 쓸 수는 없게 되었지만, 그녀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면 내 답답한 마음이 조금이나마 풀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아니 지난 216일에 그녀를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은 것이 참 좋았고, 그래서 그 아가씨(결혼을 안 했으니까 아가씨는 맞겠지만 나이는 삼십 대 중반을 넘어섰던 것 같은데, 그나마도 확실하지 않다)가 그리웠던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영월에는 이 아가씨 말고도 또 그리운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어라연에 갈 때 나를 따라와 주었던 점박이이다. 그런데, 한 번 지나가 버린 것은 다시 만나기가 힘이 든다.

제천에서 영월로 가는 38번 국도는 꽤 많이 4차선으로 확장되어 있었다. 그리고 영월까지는 30킬로미터 정도밖에 안 될 정도로 가까웠다. 하룻밤을 묶고 갈지 아니면 막바로 올라갈 지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었지만, 묶고 갈 확률이 높았다. 영월은 몇 번이나 왔는지 이제는 제5의 고향 정도는 될 듯했다. 먼저 [중앙 이발소]로 가보았지만, 역시나 이발소의 표시봉은 정지된 채였다. 먼지가 낀 것이 영업을 안 한지가 오래 된 듯했다. 왜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을까? 지난 3월에 왔을 때에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표시봉은 정지된 채로 있지 않았던가? [동방 플라자] 건물의 목욕탕으로 향했다. 2월에도, 3월에도, 올 때마다 통과 의례처럼 들르는 곳이 되었다. 목욕을 마치고 지난 번과 마찬가지로 [왕 만두] 집에서 라면을 한 그릇 사 먹었다. 만두집인데도 이상하게 이 집은 만두 라면을 팔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고기 만두를 하나 싸달라고 했다. 이 고기 만두를 나는 영월의 뒷골목을 걸으면서 다 먹어 치웠다. 아무리 자주 왔다고는 하나 그래도 낯설 수밖에 없는 읍의 뒷골목을 거닐고 있으니까 쓸쓸함이 또 물밀져 왔다. 내 삶은? [비디오 감상실]이 있으면 비디오라도 한 편, [천국의 아이들]을 보려고 했으나, 예전에 본 듯한 감상실을 이번에는 찾을 수가 없었다.

애써 가라앉으려는 기분을 떨치고, 이왕 영월에 왔으니까 그 동안에 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고씨 동굴]이나 보고 가야겠다는 쪽으로 결정되었다. (목욕을 하면서였나, 피곤한 나머지 하룻밤 묶으면서, 215일의 여행지를 둘러보도록 해야겠다는 쪽으로 생각은 바뀌었다.)

예전에 영월에 왔을 때 [고씨 동굴] 관광지에 있는 여관에서 잔 적이 있었다. 차도에서 안쪽으로 들어간 곳이라 상당히 조용했었는데, 오늘도 그곳을 찾을 심사였다. 그 당시에는 [고씨 동굴]로 이어지는 다리가 완성이 안 된 상태라, 동굴 구경을 하기 위해서는 배를 타고 들어가야 했는데, 첫 배가 상당히 늦은 시각에 있어서 그냥 서울로 올라 왔었다. 96년 겨울쯤이 아니었던가 하는데.

그런데, 예전의 그 여관은 없어지고, 그 여관 자리에는 [리버파크 모텔]이 서 있었다. 나는 옛날의 그 여관을 찾아서 차를 몰고 두어 바퀴 돌다가, [리버파크 모텔]이 옛날의 그 여관이라고 결론을 지었다. 길가에 [도원장]이라는 낡은 간판이 눈에 들어 왔는데, [리버파크 모텔]은 그 때의 여관을 내부 수리를 하고 상호를 바꾼 것으로 보였다. 이러한 나의 짐작은 방으로 들어가는 순간에 더욱 확실해졌다. 침대며 탁자가 꼭 내가 예전에 이 방에서 잔 것처럼 눈에 익었다.

비디오 테입도 가져와서 볼 수 있게 되어 있어서 세 개를 가지고 왔다. 두 편은 성인용이었는데, 그 중 한 편은 껍데기와 안의 내용물이 달랐다. 홍콩 에로 영화인 줄 알고 가져온 [신 소녀경]은 진도희가 주연인 성인물이었다. 에로물이 반 포르노가 되기 전의 영화. 섹스 신에서 형이하학 부분은 대체로 감추고, 형이상학 부분만 보여주는 영화. 그것으로라도 나의 부푼 자지를 달래야 했다. 그 다음은 [The Buddy Factor]라는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한 제작자들을 다룬 시시한 영화를 좀 보다가 그대로 잠이 들었다. 하지만 피곤함과 과식과 높은 베개로 잠을 계속 설쳤다. 꿈도 슬프기 짝이 없는 그런 것이었다. 돈도 한 푼도 없고(잔고가 부족해서 현금 서비스를 받아야 했던 것의 여파인 듯) 사람들도 나에게서 모두 멀어지는 소외의 전형적인 형태를 나타내는 꿈이었다. 은영이가 직접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은영이와 헤어진 아픔이 정선에 가까운 곳, 그것도 여행지에 오자 더욱 생생해 진 듯 하기도 했다. 아침에는 사람들이 들락날락하고, 청소를 하는지 하는 소음 때문에 깨긴 했으나, 몸이 너무나도 찌뿌둥해 다시 수건을 베개 삼아 한 시간 가량 더 잤다.

[고씨 동굴] 매표소에서는 주차비까지 같이 받았다. 내 앞에 있던 아저씨가 주차비 문제로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은 것을 보고, 나는 아예 차를 가져오지 않았다고 했다. [고씨 동굴]은 동굴의 초입부는 별로 볼 것이 없었으나 안으로 들어갈수록 괜찮은 그런 굴이었다. 녹음해 둔 부분을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고씨 동굴은 종유석이나, 석순, 석주 등의 발달은 고수 동굴보다 못하고, 넓이나 규모 등에 있어서는 환선굴이나 화암 동굴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바닥에 있는 작은 못들이 동굴의 신비감을 더하고, 그런대로 와 볼 만한 굴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개장 직후에 들어갔기 때문에 들어갈 때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으나(젊은 연인 두 명이 정답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내 앞에서 걸어가는 모습이 나를 더욱 쓸쓸하게 했지만, 이제는 그런 것에는 눈을 감기로 하지 않았던가?), 나오는 길에는 단체 관광객들 때문에 한참을 기다려야 하기도 했다. [고씨 동굴]은 입구와 출구가 따로 없었다. 들어간 길로 다시 나와야 했던 것이다. 한 가지 기억에 남는 것은 임진 왜란 당시 고씨 일가가 동굴로 피난와서 살 던 곳이었다. 꽤 너른 곳이어서 이삼십 명은 지낼 수 있을 정도로 평평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고씨 동굴]이라는 이름도 그들 일가가 와서 살았다는 데에서 유래된 것이긴 하지만). 고수 동굴로 피난 간 사람들은 일본군들이 굴입구를 바위로 막는 바람에 다 죽었다고 그랬던가?

식사를 하고 [동강]으로 갈까, 그냥 갈까 하다가 그냥 가기로 했다. 다소 배가 고프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참을 수 없을 정도는 아닐 테니까. 동강으로 가는 길에 어제 저녁 뉴스에서 본 끔찍한 사고가 떠올랐다. 하나는 경부 고속도로에서 있었던 유조차와 승합차의 충돌 사고였다. 이 사고로 승합차에 타고 있던 사람 들 중 여덟 명이 죽고, 두 명이 크게 다쳤다고 했다. 유조차의 운전수는 담배 한 대를 피고 잠시 딴 생각을 하느라고 앞에 있는 승합차를 못 보았다고 했고, 승합차는 무슨 일인지 비상등을 켜고 천천히 달리고 있었다고 했다. 유조차에 부딪힌 승합차는 유조차의 밑으로 들어가 이백 미터나 끌려갔다고 했다. 주말을 맞아 나들이를 나섰던 같은 회사의 직원들이라던데. 그 다음에는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결혼피로연 장의 붕괴 사고이다. 결혼식 장면이니까 당연히 누군가가 그것을 비디오로 찍었을 것이고, 그래서 그 붕괴 장면이 생생하게 비디오에 잡혔다. 신나게 춤을 추던 백 명도 넘을 듯한 사람들이 일순간에 아래로 꺼져 버렸다. 그 다음 다행히 가장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경악과 공포, 혼돈. 이 사고는 예식장의 주인이 공간을 넓히기 위해 피로연 장 아래층의 기둥을 하나 잘라내었기 때문에 생긴 사고였다. 춤을 추다가 아래로 꺼진 사람들은 그 순간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무슨 생각을 할 여유나 있었을까? 우리가 생명을 부여받은 것은 우연적인 일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생명 있는 것은 모두다 영생을 지향하기 마련인 것이다. 그러므로 죽음의 공포를 안고 살아간다는 것은 지옥을 자신의 가슴에 담고 살아간다는 것이리라. 신이 있다면 신을 탓하면 되겠지. 아니면 신에게 구원을 의탁하면 되겠지. 신이 없다면?

216, 311일에 이어서 동강은 세 번째로 찾는 셈이다. 두 번 다 눈이 남아 있었는데, 이제는 눈은 눈을 씻고 보아도 없다. 조용하던 동강에도 래프팅 하러 온 사람, 낚시하는 사람, 놀러 나온 사람들로 차들이 꽤 많았다. 일요일이라서 더 그럴 것이었다. 어라연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예전의 점박이를 찾아 보았으나, 역시 눈에 띄지 않았다. 오늘의 목적지는 문산리 너머에 있는 절. 동강을 건너 문산리로 가는 길은 도로 폭이 좁아서 빈번히 교행을 해야 했다. 나오는 차들도 예상 밖으로 꽤 있었다. 문산리로 들어가는 고개에는 예전에 왔을 때는 정부를 비난하는 구호가 적힌 현수막이 많이 걸려 있었는데, 지금은 다 없어졌다. 단지 마을을 지나 포장 도로가 끝나는 곳, 버스 종점에 “925일까지 종합 대책 못 세우면 동강은 피강된다는 현수막만은 하나 남아 있어서, 동강댐 건설 취소에 대한 이곳 주민들의 불만과 투쟁의 흔적을 엿볼 수 있게 했다. 거기서부터 목적지인 운중사까지는 2킬로미터의 거리였다(표지판에 적혀 있는 것을 보고서야 절 이름을 다시 상기할 수 있었다).

지난 번, 2월 달에 왔을 때,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을 걷던 기억이 새로웠다. 그 때는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기가 버거웠는데. 고개 정상에 오르자 무리를 지어 래프팅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대여섯 척의 고무 보트가 강을 타고 내려오는 광경은 시원하기 짝이 없었다. 꽤 가파른 고개를 내려서서 절로 이어지는 외길로 들어서자, 또 완전히 혼자가 되었다. 길옆의 개천이 마르지 않고 물이 흐르는 게 신기하게 생각되었는데, 오른 편에 있는 동굴에서 흘러나오는 지하수였다. 위쪽에 있는 개천은 정말이지 바싹 마른 상태였다. 웅덩이에 물이 남아 있는 곳에는 무당개구리인지가 떼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 지난 번 명성산에서 본 광경과 흡사했다.

절 아래, 개천 오른편, 좁고 높은 지대에 있는 집은 지난 번에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서 있었다. 빈집 같은데, 깨끗했다. 드디어 절로 들어서는 길. 오른쪽에는 스님이 기거하는 집(마루 아래에는 검정 고무신이 두어 켤레 놓여 있었고, 벽 중앙에는 커다란 구식 벽시계가 걸려있었다)이 있고, 그 안쪽에는 폭포가 있었는데, 거기도 가물어서 물이 떨어지는 듯 마는 듯 했다. 대웅전은(대웅전이라고 부르는 것이 어색할 정도로 조그마한 건물이지만) 집의 왼쪽 편, 집보다 꽤 높은 곳에 있었고, 그 옆에 함석 같은 것으로 지은 산신각도 있었다. 위쪽으로 더 올라간 곳에는 천막을 쳐서 기도를 할 수 있게 해 놓은 곳도 있었다. 잠시 명상을 할까 하다가 부질없는 짓인 듯 해서 그냥 대웅전 앞에 장판을 깔아둔 곳에 앉아서 좀 쉬었다. 전에 왔을 때에는 눈이 쌓여 있어서 몰랐는데, 대웅전의 지붕이 기와가 아니라 양철로 만든 것이었다. 하지만 바람이 불자, 그 끝에 매달아둔 풍경이 청아한 소리를 내었다. 수첩을 꺼내 몇 자 끄적이는데, 벌이 내 팔뚝에 자꾸만 와서 앉곤 했다. 나를 쏘지 않을까 두렵기도 했지만, 또 나를 꽃인양 그렇게 앉는 것이 기쁘기도 했다. 이곳은 속세를 떠난 곳 같았다. 속세와는 아주 인연이 없는 그런 곳 같았다.

누군가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 점심 공양을 할 모양이었다. 젊은 사람이었는데, 머리가 긴 게 여자 같았다. 하지만, 덩치를 보아서는 남자 같기도 했다. 자세히 보지도 않았지만, 그와 나 사이의 거리도 어지간했고, 뒷모습만 보았기 때문에, 단정하기가 힘들다. 남자였던 것 같다는 쪽으로 생각은 바뀐다. 비가 좀 오고 난 뒤에, 햇살에 즙이 좀 넘치는 때에 오면 더욱 좋을 듯 했다. 사랑하는 여인이 있다면 이곳에서 사랑을 맹세하고 싶기도 했다. 외로움이 나를 이끄는 힘인지도 모를 일이다.

운중사에서 돌아나오는 길에 2월에 왔을 때 휴식을 취했던 비닐 하우스에 다시 가보았는데, 지금은 소가 가득했다. 이 소들을 보고 다음과 같이 녹음했다.

 

이 소들은 무엇을 기다리는가? 귀에다 번호표 꽂고, 코에다 코투레 꿰고, 먹고 자고, 꼬리로 파리를 쫓으면서.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가? 왜 났는가? 너는 왜 태어났는가?

 

문산리에서 차를 타고 나오는 길에는 뱀 한 마리를 보았다. 뱀에 대한 공포감이 이 때문에 더욱 고조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길을 건너려던 뱀이 내 차를 보고 몸을 휙 돌리는 동작, 그 날쌘 동작이 나를 무섭게 하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우스운 생각도 들게 했다.

다시 영월로 들어가서 점심 식사를 하고, 정암사로 향했다. 3월 달에 왔을 때에도 38번 국도를 타고 올라가다가 길을 잘못 왔음을 깨닫고 다시 31번 국도로 빠졌는데, 이번에도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했다. 31번 국도로 빠지는 길이 우측으로 가야하기 때문에 저지르기 쉬운 실수였다. 정암사로 가는 그 고개 이름을 몰랐으나, 이번 여행에서 [만항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거기에 덧붙여 그 고개가 우리 나라에서 제일 높은 포장도로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지도에는 만항재로 이어지는 다른 도로가 있다고 되어 있었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은영이와 같이 식사를 했던 [장산 콘도]를 지나, 고개 정상을 지나, 함백산으로 이어지는 등산로에서 나는 잠시 휴식을 취했다. 지난 3월달에 왔을 때에는 이 고개를 넘는데 실패했다. 상동 쪽에서 넘는데에도 실패했고, 고한 쪽에서 넘는 데에도 실패하고 말았다. 이 고개를 넘는데 실패한 것은 은영이와 나와의 관계의 실패를 증명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 부분은 3월 여행기를 쓰면서 자세하게 기술하도록 하겠다.)

정암사를 지나서 고한에서 잠시 차를 세워 나는 215일 내 난봉의 자취를 더듬어 보았다. [립스틱], [왕실], [현대 여인숙]. 이후의 여행길은 서울로 가는 길이 막힐 것을 염려해 시간 끌기 식이었다. 38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33번 지방도로를 타고 정선으로 가서, 다시 42번 국도를 타고 평창으로 향했다. 거기서 동강 상류에 있는 문희 마을을 걸은 것은 녹음으로 대신하도록 하겠다.

 

*정선에서 평창 쪽으로 가다가, 문희 마을로 들어가본다. 여기는 동강의 발원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여기는 처음 가본다. 문희 마을이, , 고은의 시에 나오는 문희마을이 맞는지 모르겠다.

*동네에는 정부는 아는가 60년대 그 시절을이라고 써놓았다. 문희마을 들어가는 기화리?라는 동네이다.

*기왕지사 서울에 일찍 돌아갈 것이 아니라면 마음껏 자연이나 즐기고 가야 될 것 같다.

*문희 마을로 가서. 강을 끼고 문희 마을까지 걸어가도록 하자. 먼지를 많이 마시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고은은 문희 마을로 가서 무엇을 보았던가?

*동생의 죽음이었던가? 참 가기 힘든 마을이다. 어라연에 가는 대신에 어라연과 비슷한 길을 걷는구나. 문희라는 이름은 참, 드문 마을 이름인데. 겨울의 문희 마을.

*과연 문희 마을은 있는 것일까? 한 시간 가량 걸어왔는데도, 마을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이 사람들은 무엇을 먹고 사는가?

*길은 이쯤, 여기서 끝이 났다.

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의 넓은 길은. 그리고 배 한 척이 매여 있다. 저 강 건너 마을이 문희 마을인가? 알 수가 없다.

*이쪽은 수량도 많고, 제법 물의 흐름도 빠르다. 위로 길이 나있긴 하다. 이 길은 어느 정도까지 이어지는 지 모르겠다. 이 길 역시도 조금 되는 듯 하다가, 끊어지고 만다.

*문희 마을은 어디인가?

*전방에서 내려오니까 군인들이 눈에 띄지 않아서 좋다. 군인들과 부딪치지 않아서 그것도 좋다.

*새끼 염소 두 마리와 어미 염소 한 마리. 길 가에 나와 있던 어미 염소는 차가 지나가자 벼랑 위로 뛰어 놀았다. 그리고 내가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까 빤히 나를 쳐다보았다. 혹시라도 새끼에게 해를 가하지는 않을까? 그게 두려웠던 것일까?

*사람들은 부지런히 올갱이를 주워 담고 있다.

*욕망을 떨군다는 것은 무엇인가? 가장 어려운 질문이 그것이리라. 욕망을 떨군다는 것.

*물이 꽤 많이 흐를 때 동강에서 래프팅을 한 번 하는 것도 괜찮을 듯 하다.

 

평창의 김밥 집에서 저녁을 먹고, 새말 인터체인지에서 영동 고속도로를 탔다. 여주 휴게소를 지나면서부터 차가 조금씩 밀리기는 했으나 생각만큼 지체가 심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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