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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미정

by 길철현 2020. 9. 9.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우나 많은(이 불분명한 용어를 쓸 수밖에 없는 사정을 이해해주기를) 사람들은 일상을 벗어나 여행을 떠났을 때 새로운 곳에서 마주치는 자연 풍광이나 사람들에서 삶의 새로운 자극을 받게 되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여행에 열광한다. 여행이 주는 자극의 강도는 아마도 자신이 현재 살고 있는 곳과 관습이나, 언어, 풍광 등의 편차가 크면 클 수록 더욱 강렬하리라. 물론 모험을 즐기고 싶은 마음의 이면에는 낯선 것에 대한 경계와 두려움, 불안감도 상존하고 있어서 그것은 여행을 떠나는 것을 주저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 2006년, 41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처음으로 가족들과 외국 여행을 떠났을 때의 설레임과, 그 당시 아침에 일찍 일어나 숙소로 묵고 있던 여동생의 아파트 단지 둘레를 혼자 거닐면서 내가 낯선 곳에 와 있다는 신기함과 미지가 가져다 주는 불안감이 뒤섞인 묘한 느낌, 그리고 편의점에 들어가 껌과 과자를 사고 지폐를 내밀자 직원이 중국어로 뭐라고 말을 하는데 알아들을 수 없어서 가만히 있었더니--짐작으로는 잔돈이 없냐? 라는 말 같았는데--잔돈을 거슬러 주던 것은 1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생생하다(체험을 글로 적는 것은 힘이 많이 드는 일이고 또 시간은 대체로 분주히 흘러가기 때문에 제대로 기록을 하지 못한 중요한 체험들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많이 있다. 그렇긴 하지만 내 삶의 중요한 의의가 글을 쓰는 것, 또 그것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데 있다고 한다면 지금처럼 여유로운 시간은 못 쓴 체험들을 글로 되살려내는 작업에 투여해야 할 것이다).

 

현재 지구상의 주인은 코로나이고 이 주인은 인간의 일상을 크게 흔들어 놓았다. 코로나의 파급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겠으나, 그 중 두드러진 것 중의 하나가 여행, 특히 외국으로의 여행이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는 점이다. 나의 경우 작년 년말에 8박 9일이라는 다소 오랜 시간을 타이완을 여행한 것을 끝으로(이 여행기를 적으려고 했으나 여행기는 한국을 출발하지도 못한 채 더 이상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있다. 그러고보니 작년에는 상당히 여행을 많이 했는데, 그 중 처음으로 가본 울릉도와 홍도(흑산도) 여행기도 적지 못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여행 내내 -- 내 여행의 대부분은 홀로 여행이다 -- 나는 머릿속으로 여행기를 쓰고, 부지런히 메모도 했지만 귀찮음과 다른 일들 때문에 그 체험들을 마음에 담고 자꾸 망각 속으로 빠트리고 있다. 어떤 여행기는 써보려고 여러 번 시도를 했음에도 계속 실패를 하는 경우도 있다. 그 대표적인 예는 2001년도의 7박 9일간의 자동차 전국일주일 것이다. 그 때 나는 서해안과 남해안, 그리고 지리산 등반, 그 다음 동해안, 마지막으로 북방한계선을 따라 정신없이 차를 몰았는데, 당시 내 마음의 심각한 갈등이 몇 가지 극적인 체험들과 겹쳐져서 쓸 거리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펜을 들 때마다 붓은 꺾이고 말았다. 또 2016년도에 2주 가량 영국을 여행한 것은 내 삶의 커다란 변곡점이 될 정도--될 수만 있다면 여행작가로 사는 것도 참 행복할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로 인상적이었고, 밤마다 그 날의 여정을 노트북에 부지런히 기록했음에도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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