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대학 동기들과의 모임이 있었다.
3차까지 정말 거나하게 마시고 대리를 불러 집으로 오는 길.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나이 이야기가 나왔는지는 알 수 없는데 - 술 취한 김에 나도 나이 좀 먹었다는 걸 과시하고
싶었던가? 대리기사론 보기 드물게 정장을 차려 입은 상대방이 좀 어려 보여 가오를 잡으려 했던 것일까? 아무튼.
"제가 올해 쉰 하나 인데요, 기사님은 어떻게 되시죠?"
그러자, 대리기사분이
"나도 쉰 하나입니다."
"66년 백말띠 동기네요."
나이가 같으니 당연히 띠도 같으련만 술김에 괜히 한 마디를 덧붙였는데, 이 때부터 이야기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전, 67년 양띤데요."
"양띠면 나보다 한 살 밑인데, 쉰 살 아닌가요?"
"아니, 제가 제 나이도 모르겠어요. 사장님이 뭔가 잘못 알고 계신 거겠죠."
'억병으로 취한 쪽은 나이고, 대리기사분은 맨 정신이니까, 아무래도 술이 취한 쪽이 뭔가 착각을 했겠지,' 라고
생각을 했다.
"아, 미안합니다. 나이 드니까, 내 나이도 모르네. 내가 올해 쉰 둘이구나."
그렇지만, 말을 내뱉고 보니까, 아무리 술이 취했다 하더라도 내가 내 나이를 틀릴 수가 있나? 작년에 쉰이었으니까, 올해 쉰 하나, 나보다 한 살 많은 뱀띠 석재 형은 쉰 둘.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쉰 둘이 아니라, 쉰 하난데. 보세요, 기사님. 그러니까, 한국 나이는 태어나면 한 살 아닙니까? 그게, 그러니까, 내가 태어났을 때, 그러니까, 1966년에 한 살, 67년에 두 살, 그리고, 올해가 2016년이니까 쉰 한 살, 쉰 한 살이 맞는 것 아닌가요?"
"내 친구들도 모두 쉰 하나인데?"
내가 내 나이를 모를 수 없듯이, 대리기사분도 본인의 나이를 모를 수 없다는 생각에 내 술취한 머리는 이 풀리지 않는 모순을 억지로라도 합리화하기 위해 불법유턴하는 차량처럼 이상한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혹 생일이 빨라서 그런 것인가?
"저, 생일이 언제인데요?"
"4월입니다."
"아, 생일이 빨라서 그렇게 되는 구나. 내가 음력으로 9월이고 기사님이 4월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네요."
뭔가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억지로 아귀를 맞추고는 대리기사분들의 고충 쪽으로 이야기를 딴 방향으로 돌렸다가 강남에서 멀리 월계동까지 오는데 만 오천 원이면 싸다는 생각에, 회사에 지불해야 하는 비용 삼천 원을 내가 내어주기로 했다.
나야 술이 취해 좀 오락가락했다지만, 이 분은 왜 본인의 나이를 틀리게 알고 있는 것일까? 친구들도 다 쉰 하나라는 것은 또 어떻게 해명해야 할까?
한여름 밤의 꿈처럼 취한 정신에 날아든 미스터리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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