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첫 작품인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부터 다시 보고 감상문을 쓸 계획을 가지고, 지금 그 작품의 원작인 구효서의 [낯선 여름]을 짬짬이 읽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그의 열한 번 째 영화인 [하하하]를 먼저 보게 된 것은 지난주 통영과 거제도를 다녀온 여행기(사실 통영에서는 잠만 자고 거제도로 들어간 것과 다름이 없었지만)를 써나가다 문득 통영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가 떠올라 다시 한 번 보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홍상수의 영화는 많이 구입을 해두었는데 이 영화는 없어서 새로 구입을 해야 하는가 했지만 넷플릭스에 올라와 있었다. 중간중간에 끊기는 현상이 몇 번 발생하긴 했으나 그래도 큰 무리없이 보았다).
이 영화를 보고 먼저 든 두 가지 생각은 "왜 이 영화의 관객수가 5만 7천 명에 지나지 않는가?"하는 것과, 영화에 나온 장소들에 대한 관심으로 다시 한 번 통영을 찾고 싶다는 것이었다(다른 어떤 곳보다도 특히 왕성욱(문소리)의 집으로 나온 곳은 꼭 찾아가서, 그곳에서 바다를 한 번 내다보고 싶다. 이 영화가 통영시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다고 하는데 어떤 면에서 이 영화는 통영을 알리는 그런 영화이기도 하다. [향토역사관] 장면에 보면, 관장(기주봉)이 조문경(김상경)에게 윤이상, 김춘수, 김상옥, 박경리 등을 언급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그 장면을 보면 '김용익'이라는 소설가도 올라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나는 이 번에 통영의 변두리를 차를 몰고 가다가 안내판에 '소설가 김용익 묘소'라고 적힌 것을 보고 그 이름이 낯설어 조사를 해보았더니 미국에서 주로 영어로 소설을 썼다고 하며, 현재는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작품이 실린 작가라고 한다. 독일어로 [압록강]이라는 자전적 작품을 쓴 이미륵과 비슷한 위치에 있는 인물인 듯하다).
이 영화는 조문경이 캐나다로 떠나기 전에 선배인 방중식(유민상)과 청계산에서 막걸리를 마시면서 두 사람이 얼마전에 다녀온 통영에서 있었던 일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흥미롭게도 현재 술을 마시는 장면은 흑백 사진으로만 제시된다(장예모 감독의 영화 [집으로]에서는 과거는 컬러로 현재는 흑백 영상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두 사람은 통영이라는 동일한 공간에 동시간에 있었을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이 서로 엇갈려가면서 만나는 사람들이 같은 인물임에도 두 사람은 끝끝내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구성이 아주 재미있게 다가올 수 있지만 두 인물이 끝내 그 사실을 모른다는 것은 장소나 시간, 타인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관심사를 생각해 볼 때는 아이러니컬하기도 하다. 영화 도입부 내래이션에서 조문경이 방중식을 "제일 친했던" 선배라고 말하는 점을 두고 볼 때는 더욱 그렇다.
홍상수의 영화 대부분이 그러하듯 통영이라는 지역을 소재로 한 이 영화에서도 그 핵심에는 남녀관계가 있다. 먼저 조문경은 대학 교수에서 짤렸고 제대로 영화도 만들지 못한 상태에서 8년 만에 집에 들른 것으로 나온다(이 부분도 보기 드문 경우이다. 집을 8년만에 찾다니! 그 이면에는 부모가 이혼을 하는 등의 복잡한 가정사가 있는 듯하다). 그는 [세병관]에서 문화관광해설사로 일하는 왕성욱에게 반해(이 영화에서 이순신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해설 도중 이순신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관람객에게 성욱은 그가 구국의 성웅임을 열정적으로 토로하고 이 장면을 문경이 목도한다. 문경이 성욱에게 이끌린 것이 이순신에 대한 순수한 흠모 때문인지, 아니면 그녀의 외모나 말투, 그것도 아니라면 '종아리가 예뻐서인지' 잘라서 말하기는 어려우나 그의 다른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끝까지 밀고나가 잠자리를 같이 하고 결혼 이야기까지 나오게 된다. 더 나아가 이순신은 [향토역사관]과 한산도 제승당의 영정으로, 급기야 문경의 꿈에까지 등장한다) 그녀에게 계속 접근을 하는데, 사실 그녀는 중식의 후배이자 시인인 정호(김강우)와 사귀는 사이이다. 유부남인 중식은 자신의 애인과 통영에서 만나 후배 정호가 초대한 시 낭송회에 함께 가기도 하다가, 결국에는 큰아버지 댁에까지 그녀를 데리고 가기도 한다. '서울에서 잘 나가는 시인'인 정호는 통영으로 내려와 성욱과 사귀고 있으면서도, 복어집 사장님이자 문경의 어머니의 양녀인 정화와도 관계를 맺고 있다. 사실 정화는 문경과 선을 넘을 뻔 하기도 한다.
남녀 관계가 다소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긴 하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톤은 제목대로 코믹하기 짝이 없다. "좋고 즐거웠던 이야기만" 하자던 처음 두 사람의 말과는 달리 인간 관계의 온갖 굴곡과 다툼(문경과 정호가 싸우는 장면도 특이하다. 정호가 문경을 때리는 데도 문경이 맞받아 치지 않고, 그렇다고 완전히 쓰러지지도 않는 장면 또한 일반적으로 보기 힘든 그런 장면이다)까지 등장한다. 아니 영화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두 사람의 말뿐만 아니라 두 사람이 몰랐던 장면까지도 보여준다. 그럼에도 영화는 심각하지 않고 위기를 웃음으로 승화시킨다. 대표적인 장면이 문경의 고자질로 정호가 정화와 모텔에 들어갔다 나오는 장면을 목도하고도 불같이 화를 내거나 하지 않고 성욱은 오히려 정호를 업어주는 예상 밖의 행동을 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한다(문경의 꿈에 등장한 이순신이 "사람의 좋은 면만 보려고 한다"는 말과 맥락이 닿기도 하고, 성욱 역시도 문경과 잠자리를 같이 할 뻔 했다는 사실도 있다).
인간의 생각과 행동 대부분이 주입된 것에 불과하고 그렇기 때문에 주어진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 대상과 사물을 자신의 눈으로 새롭게 보려는 시도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문경의 이순신 꿈과, 정호가 성욱의 꽃 선물을 받았을 때 등 두세 번 정도 등장한다. 이 부분은 홍상수의 예술론이 들어 있는 듯하지만, 정호의 경우에는 중식에게 자신의 시를 비판받고 난 직후 화가나서 하는 말이기도 해서 어느 정도 거리감도 느껴진다.
글을 적어나가다 보니 이 영화를 조리 있게 정리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강구안을 중심으로 통영의 여름을 맛깔나게 담아 내면서도 관객에게 많은 웃음을 주는 영화임에는 틀림이 없고, 배우들의 연기 또한 이 영화를 더 돋보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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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안한 부분(윤여정이 식당에서 나오는 부분 등등)도 우리는 보게 된다.
리얼리티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뭔가 앞뒤가 맞지 않다. 도입부에서 조문경은 내레이션을 통해 방중식이 "제일 친했던" 선배라고 말하고 있는데, (조금 쉬자)
그리고, 이 영화를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이자 뭔가 앞뒤가 안 맞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제일 친했던 방선배)
여름 하
좋고 즐거웠던 이야기만 하기로 했다.
우연히 얼마전에
이야기하지 않은 부분도 우리는 보게 됨.
[
좋고 즐거운 이야기만 하기로 (나도 복국 먹었는데) 서울에서도 잘 나가는 시인
정호와 성욱 간의 대화. (꽃 선물)
대화의 연결 중식 - 정호(시 깜)/ 정호 - 정화(꽃 선물 비판)
사랑도 안 하는데 동물되는 게 싫어요?
[참고]
이순신 장군이 가르쳐주시기를 “머릿속의 남의 생각으로 보지 말고 네 눈을 믿고 네 눈으로 보아라”, “어둡고 슬픈 것 안에 제일 나쁜 것이 있으니 조심하라”, “좋은 것 아름다운 것을 보도록 노력하라”고 합니다.
이동진 - 과거의 말라붙은 우물에서 목을 축이려는 현재의 유령들
박평식 - 헤에헤, 능청의 어떤 경지
경상남도 통영시의 지원
[영화는 수다다]
조문경 - 방중식 - 왕성욱 - 정호 - 정화
(문경과 중식이 유독 안 만남/ 호동 식당에서는 같이 있음.
우연이 존재하는 힘
이동진 - 눈거풀에서 비늘이 벗겨지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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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한 차이[반복과 차이]
클로버 - 회상의 기적
[하하하] (통영 호동식당) / 통영 향토역사관/ 세병관/ 동피랑2길 10 / 제승당
(우울증 약 -- 춘몽) 나폴리 모텔 옆 광명식당 복국/ 강구안/ 카사블랑카 / 벅수골소극장 / 통영 시외버스터미널(진소갈비살, 삼육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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