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의 [칼의 노래](2001)는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비장하면서도 냉정하다, 정도가 될까? 그런 그의 스타일은 [남한산성](2007)에서도 그대로 이어져 김상헌이 얼어 붙은 한강을 건네 준 사공을 칼로 베는 장면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역사는 그의 소설의 주된 소재여서 조선시대 후기의 천주교 박해를 다룬 [흑산](2011) 또한 인상적이었다(현대를 다룬 [공터에서]는 그렇게 인상적이지 못하다. 현재 [내 젊은 날의 숲]을 읽고 있는데, 이 작품도 내용과 형식이 조화를 잘 이루지 못한다는 느낌이다. 화자인 여자 주인공의 시점이 자꾸만 작가 시점으로 가려 한다. 남자 작가들의 경우 여성을 입체적으로 잘 그려내지 못하는 것으로 비판을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하는데, 김훈도 여성성을 제대로 잘 살려내는 작가라고 하기는 힘들다. 50이 넘은 나이에 파멜라라는 10대 소녀의 감수성을 독보적으로 그려낸 리처드슨의 경우는 대조적이라고 할 것이다. 이 밖에 동물을 화자로 정한 [개](2004)는 애초에 공감대를 형성하기가 쉽지 않은 접근이었다.). [칼의 노래](2001) 다음에 나온 이 작품은 열두 줄 가야금을 만든 가야의 악사 우륵을 소재로 하고 있다(아이러니컬한 점은 이 소설을 읽기 전까지 가야금을 가야의 금이라고 의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가야금은 아주 어릴 때부터 가야금이라고 알아왔기 때문에, 가야의 금이라고 떼어서 읽는 쪽으로는 생각이 가지 않았다. 이 사실은 또 돌이켜보면 학창 시절 국사를 배울 때 가야가 경시되었기 때문인 듯도 하다).
현재 가야에 대한 연구가 내 학창 시절에 비해 얼마나 진척이 되었고 또 얼마나 교과서에 반영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고대사가 흔히 그렇듯 사료는 빈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박창화가 필사한 것으로 알려진 김대문의 [화랑세기]는 위작 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이 [화랑세기]의 번역본을 바탕으로 김별아는 [미실]이라는 흥미로운 작품을 쓰기도 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역사 소설이라는 측면보다는 김훈이 작가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신라에 의해 함락될 무렵의 대가야의 모습과 악사인 우륵과 그의 제자 니문, 단순한 대장장이를 넘어서 대가야에서 중요한 지위에 있었던 야로, 순장을 피해 달아났다 우여곡절 끝에 니문의 아낙이 되었다가 결국에는 순장을 당하고 마는 아라, 신라의 장군 이사부 등이 주요 인물이다.
대가야의 멸망과 함께 부득불 신라로 투항하는 우륵의 운명과, 가야국에서 중책을 맡고 있으면서도 신라에도 비밀리에 병장기를 공급하다 우륵보다 먼저 신라에 투항하는 대장장이 야로(허구적 인물)의 운명은 흥미롭게 대비된다. 소리의 근원에 대해 우륵과 그의 제자 니문이 주고 받는 대화가 인상적이라면, 야로가 우륵에게 자신이 다루는 쇠가 지향하는 바를 늘어놓는 부분 또한 깊이가 있다.
감각적이고 현대적인 주요 인물들의 언술은 신화적인 세계관이 난무하고 전쟁이 일상이고, 순장 등의 풍습이 행해지고 있던 고대의 세계(이런 부분은 인간사의 끔찍함과 허망함을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와는 잘 융합되지 않는 면도 있고 때로는 너무 지나치게 사변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앞서 말했듯이 역사 소설이면서도 그 사료의 영성함으로 인해 거의 작가적 상상력으로만 엮어나가야 하기 때문에 초반부는 다소 지루한 느낌도 주고, 니문의 아낙이 된 시녀 아라가 다시 붙잡혔을 때 니문과 우륵이 무사할 수 있었던 부분에 대해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는 것은 플롯 상의 치명적인 결함이 아닌가 한다(우륵은 니문에게 " 아라가 잡히면 너와 내가 함께 죽는다"(203)라는 부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우리의 고대사의 한 부분을 실감나게 엮어나간 김훈의 필력은 놀라울 따름이고 소리의 근원을 탐사하는 우륵과 니문의 대화는 철학적인 울림까지 준다.
-- 금의 소리는 줄의 것입니까?
-- 북은 가죽의 소리이고 피리는 바람의 소리이다. 징은 쇠의 소리고 목탁은 나무의 소리이다. 소리의 근본은 물(物)을 넘어서지 못한다.
-- 하오면, 물이 어찌 사람을 흔드는 것입니까?
-- 울림이다. 울림에는 주객이 없다. 그래서 소리가 울릴 때, 물과 사람은 서로 넘나들며 함께 울린다. 개 소리, 꿩 소리, 닭 소리가 다 마찬가지이고 대장간 쇠망치 소리와 다음이 소리며, 파도 소리, 빗소리, 바람 소리, 눈길에 소달구지 미끄러지는 소리와 어린아이 울음소리와 군사들의 말발굽 소리가 다 이와 같다. 이 말이 너무 어려우냐?
-- 하오면, 듣는 자가 여럿이면 한 소리가 여러 소리가 되어 소리는 정처 없는 것입니까? (21)
[인용]
앞부분 : 소동파 금시
만약 금에 금 소리가 있다면
상자 속에 있을 때는 왜 울리지 않는가.
만약 손가락에서 소리가 난다면
그대 손가락에서는 왜 들리지 않는가.
12) 순장자 - 순장의 문제/ 끝없는 전쟁
13) 쉰 명 정도
21) 소리의 근본은 물(사물)을 넘어서지 못한다.
- 울림이다. 울림에는 주객이 없다. 그래서 소리가 울릴 때 물과 사람은 서로 넘나들며 함께 울린다.
우륵과 제자 니문의 대화
-- 금의 소리는 줄의 것입니까?
-- 북은 가죽의 소리이고 피리는 바람의 소리이다. 징은 쇠의 소리고 목탁은 나무의 소리이다. 소리의 근본은 물(物)을 넘어서지 못한다.
-- 하오면, 물이 어찌 사람을 흔드는 것입니까?
-- 울림이다. 울림에는 주객이 없다. 그래서 소리가 울릴 때, 물과 사람은 서로 넘나들며 함께 울린다. 개 소리, 꿩 소리, 닭 소리가 다 마찬가지이고 대장간 쇠망치 소리와 다음이 소리며, 파도 소리, 빗소리, 바람 소리, 눈길에 소달구지 미끄러지는 소리와 어린아이 울음소리와 군사들의 말발굽 소리가 다 이와 같다. 이 말이 너무 어려우냐?
-- 하오면, 듣는 자가 여럿이면 한 소리가 여러 소리가 되어 소리는 정처 없는 것입니까?
29) 양쪽이 모두 살아남은 자가 없게 되자 싸움은 저절로 끝났다.
35) 가실왕
44) 소가 사람의 말을 지껄여대서 --- : 신화적인 이야기들
47) 수면의 빛 속에서 물고기들이 튀어올라 공중제비를 돌았다. - 디테일들로 소설 속 공간을 채워서 그 공간이 실감나게 다가오게 한다.
123) 포로는 필요 없다. 살려서 부릴 만한 자가 없을 것이다. 현장에서 모조리 죽여라. - 이사부.
126) 울릉도. 우산국
128) 이차돈
129) 진흥왕 - 내 이제 모든 인생과 축생에 칼을 대지 않으려 한다.
132) 이사부가 빼앗은 성에 머무르는 동안 서라벌에서는 새로 지은 절에 단청을 입혔고 백고자 법회가 자주 열렸다.
174) 아수라를 지나지 않고서 어찌 여래의 나라에 닿을 수 있겠느냐.
197) --쇠는 날에서 완성되는 것이오. 그것은 병장기와 연장이 매한가지요. 날은 한없이 얇아져서, 없음을 지향하는 것이오. 날은 빈 것이오. 그러나 없는 것이 아니라, 있음과 없음의 사이에서 가장 확실이 있는 것이오. 또 그 위태로운 선 위에서 한없이 단단해야 하는 것이오. 날은 쇠의 혼이라 할 수 있소. 야로가 우륵에게/ 야로면과 한자 일치
199) 열두 줄 가야금의 탄생
203) 아라가 잡히면 너와 내가 함께 죽는다. 우륵이 니문에게
209) 월광태자 - (실제 승려가 되었다고 함)
282) 악기란 아수라의 것이다. 금을 신라로 보내라. 거기가 아마도 금의 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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