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 소설

김훈 - 내 젊은 날의 숲. 문학동네. 2010

by 길철현 2021. 12. 15.

이럭저럭 김훈의 장편들은 거의 다 읽은 셈이다(공무도하와 작년에 나온 [달 너머로 달리는 말]을 제외하고는). 그리고, 김훈의 붓이 그 힘을 발휘하는 것은 역시나 역사의 중요한 인물이나 사건을 붙들고 늘어질 때 그 비장함, '기름기를 뺀 비장함'이라는 인식이 적절하다는 걸, 다시 한 번 인식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현 시대, 그리고 젊은 여성 화자를 주인공으로 한 이 작품은 뇌물죄로 수감된 아버지, 수목원에서 일하는 안실장과 세밀화를 그리는 주인공 사이에서 볼 수 있는 과학과 예술의 간극, 625 당시의 유해 발굴을 둘러싸고 주인공과 김중위의 관계 등이 큰 축을 이루며 전개되는데 이 내용들이 제대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겉도는 느낌이 강하다. 무엇보다 김훈은 젊은 여성의 내면을 그려내는데 있어서 상당히 약점을 보이고 있으며(그래서 소설은 상당 부분 객관적 서술이 차지하고 있다?), 좀 더 타이트하게 그려나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이 중언부언(혹은 한 말을 그대로 반복하는 부분들도 여러 군데 나온다) 하는 바람에 늘어지고 말았다. 게다가 이 작품에 대한 작가의 의도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작품은 극적 긴장이나 독자를 사로잡는 흡인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그저 힘없이 막을 내리고 만다. 작가 자신으로서는 어려운 시도를 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그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는 점에서 김훈은 화자와 소재의 선택에서 실패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발췌]

33) 할아버지 불분명한 독립 운동/ [공터에서] 마동수

77) 김중위/ 안요한 

79) 조연주

82) 꽃의 색깔에는 어떤 구조적 또는 종자학적 필연성이 있는가? 

119) 과학자와 예술가

식물이 어떻게 꽃의 색깔을 빚어내는 것인지는 안요한 실장의 연구과제였다. 나는 수채물감을 여러 번 덧칠해서 자연색에 접근했다. 

244) 아이들은 실제를 관찰하고 표현하기보다는 자기류의 완강한 도식과 관념에 갇혀 있었다. 개별적 사물들은 선에 의해서 외계와 구별된다는 도식을 아이들은 떨쳐내지 못했고, 그 선은 자신의 관념 속에서 존재하는 선이었다.

267) 죽음은 존재의 하중을 더이상 버티어낼 수 없는 생명현상

 

- 작가의 말

342) 부처가 생명의 기원을 말하지 않은 것은 과학적 허영심이 없어서라기보다는 말하여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산천과 농경지와 포구의 생선시장을 들여다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었다. 창조나 진화는 한가한 사람들의 가설일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