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 소설

한강 - 소년이 온다. 창비. 2019(2014)

by 길철현 2021. 12. 26.

[서평]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전후 우리 국민이 겪어야 했던 비극 중 가장 큰 비극이며, 박정희로부터 이어져온 독재정권(그때까지도 전면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조종하는 위치에 있었던 전두환 일당)이 권력 찬탈을 위해 저지른 가장 큰 죄악이기도 하다. 이 광민운을 총체적인 입장에서 폭넓고 심도있게 다룬 문학 작품은 임철우의 [봄날]이며, 나는 이 책에 대한 독후감을 상세하게 쓴 적이 있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이창동의 [박하사탕]이 광민운이 피해자뿐만 아니라 가해자에게도 어떤 상처를 남겼는지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독특한 기법으로 우리의 가슴을 찡하게 했다. 그리고 몇 년 전에 나온 [택시 운전사]는 평범한 택시 운전사의 인식의 전환을 대중적으로 그려내어 인기를 끌기도 했다.

 

2014년에 나온 이 작품을 나는 지금에서야 읽게 되었는데, 한강은 자신의 개인적 연결고리를 좇아 광민운을 재조명하고 또 그 사건이 거기에 연관된 삶을 어떻게 파괴했는지를 놀라운 필력으로 되살려 내었다. 너무 피해자의 입장만을 부각시킨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말이 갖는 힘과 진실성에 어쨌든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는 극소수이지만 지만원처럼 광민운과 관련해서 북한군이 개입을 했다는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 분들의 심리의 근원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는대로,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그런 폭력을 저질렀을 리가 없다는 일종의 방어기제가 작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 시점에서 [전두환 회고록]을 한 번 읽어보고 싶은데, 판매금지가 되어 중고 책값이 엄청 뛰었다.  

 

 

[발췌]

85) 그러나 그녀 자신은 빨리 늙기를 원했다. 빌어먹을 생명이 너무 길게 이어지지 않기를 원했다. (은숙?)

89)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죽음을 피하고 싶었다.

--) 그녀에게 영혼이 있었다면 그때 부서졌다. 

95) 군중의 도덕성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무엇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군중을 위루는 개개인의 도덕적 수준과 별개로 특정한 윤리적 파동이 현장에서 발생된다는 것이다. 어떤 군중은 상점의 약탈과 살인, 강간을 서슴지 않으며, 어떤 군중은 개인이었다면 다다르기 어려웠을 이타성과 용기를 획득한다. 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숭고했다기보다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지닌 숭고함이 군중의 힘을 빌려 발현된 것이며, 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야만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인 야만이 군중의 힘을 빌려 극대화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 그녀는 인간을 믿지 않았다. 어떤 표정, 어떤 진실, 어떤 유려한 문장도 완전하게 신뢰하지 않았다. 오로지 끈질긴 ㅣ의심과 차가운 질문들 속에서 살아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123) 이듬해 성탄절까지 군부는 우리 모두들, 사형과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사람들까지 특사로 석방했으니까요. 

126) 하루하루의 불면과 악몽, 하루하루의 진통제와 수면유도제 속에서 우리는 더이상 젊지 않았습니다. 

203) 구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읽는다는 것이 처음의 원칙이었다.

212) 특별히 잔인한 군인들이 있었던 것처럼, 특별히 소극적인 군인들이 있었다. 

 

파울 첼란(루마니아. 독일어 시인. 유태인 강제수용소)/ 쁘리모 레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