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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이야기/고흐 시편

감자 먹는 사람들 -- 삽질 소리 -- 정진규

by 길철현 2022. 2. 21.

우리들도 그렇게 둘러앉아
삶은 감자를 먹던 때가 있었다
불빛 흐린
언제나 불빛 흐린
저녁 식탁이
누구의 손 하나가 잘못 놓여도
삐걱거렸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셋째 형만이
언제나 떠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잘 삶아진 굵은 감자알들처럼
마디 굵은 우리 식구들의 손처럼
서걱서걱 흙을 파고 나가는
삽질소리들을 꿈 속에서도 들었다
누구나 삽질을 잘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타고난 사람들이었다
새벽에는 
빗줄기가 조금 창문을 두드렸다
제일 부드러웠다

새싹들이 돋고 있으리라 믿었다

오늘은 하루쯤 쉬어도 되리다

식구들은 

목욕탕엘 가고 싶었다

 

 

추억 -「감자 먹는 사람들」· 빈센트 반 고호

식구들은 둘러앉아
삶은 감자를 말없이 먹었다
신발의 진흙도 털지 않은 채
흐린 불빛 속에서
늘 저녁을 그렇게 때웠다
저녁 식탁이
누구의 손 하나가 잘못 놓여도
삐걱거렸다
다만 세째형만이
언제고 떠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된 나날이었다

잠만은 편하게 잤다
잘 삶아진 굵은 감자알들처럼
마디 굵은 우리 식구들의 손처럼
서걱서걱 흙을 파고 나가는
삽질소리들을 꿈 속에서도 들었다
누구나 삽질을 잘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타고난 사람들이었다
맛있는 잠! 잠에는
막힘이 없었다

새벽에는
빗줄기가 조금 창문을 두드렸다
제일 부드러웠다
새싹들이 돋고 있으리라 믿었다
오늘은 하루쯤 쉬어도 되리라
식구들은
목욕탕엘 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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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두 가지 버전이 있다. 아랫것이 수정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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