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과 서양의 만남이라는 주제를 지닌 이 작품은 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4년 미국 소설가인 Margaret Landon의 소설 Anna and the King of Siam이 인기를 끌면서 이후 영화와 뮤지컬, 라디오와 텔레비전 드라마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그런데, 소설 또한 Anna Leonowens가 태국 왕실에서의 자신의 실제 체험을 기록한 비망록에 기초하고 있으니 완전 허구라기보다는 반(反) 전기적 작품이다. 1946년에 나온 소설과 동명의 영화도 인기를 끌었지만, 1951년 The King and I로 이름을 바꾼 뮤지컬이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되기 시작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현재까지도 리메이크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흡인력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이 뮤지컬의 인기에 힘 입어 1956년에는 뮤지컬 영화로도 제작되었는데, 이 영화는 상업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을 뿐만 아니라 비평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아 이 해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5개 부분을 수상하였다(좀 나이가 있는 분들에게는 [왕과 나]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이 영화가 가장 친숙하다). 아카데미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율 브리너는 원래 뮤지컬에서도 남자 주인공인 몽쿳 왕 역할를 맡아 1985년도에 사망하기 얼마 전까지도 공연에 참가했다.
이런 배경을 지닌 작품이므로 새로운 방식과 참신한 아이디어로 접근하지 못한다면 리메이크 작품이 성공을 거두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공교롭게도 이 실사 영화가 나오기 8개월 전에 The King and I라는 만화 뮤지컬 영화가 출시 되었는데 흥행에서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비평적으로도 아주 낮은 평가를 받았다. 이 만화영화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가를 직접적으로 알 수는 없으나, 뮤지컬에 나오는 곡들을 그대로 쓴 것이 실패의 한 요인이 아닌가 한다. 실패한 TV 드라마의 제목을 차용한 이 영화에서 이전 작품들과 가장 변별되는 부분은 왕을 비롯하여 왕실 일가의 사람들을 모두 동양인으로 했다는 점이다(홍콩 출신인 주윤발이 왕 역할을 맡았는데, 그의 태국 어가 어떠했는지는 나로서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불안감이 없지 않다. [미나리]의 남자 아역 배우의 한국어가 너무 서툰 것이 한국 관객인 내가 보기에는 거슬렸지만 미국인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왕과 왕실의 배우들을 동양인으로 캐스팅하고 태국 어를 빈번하게 사용한 것은 적어도 형식적인 면에서는 사실성을 견지 하려 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오래 전에 율 브리너가 주연을 맡은 [왕과 나]를 재미있게 보았고, 또 우연찮은 기회에 1946년에 나온 흑백 영화가 있다는 걸 알고 그것도 찾아보았다. [왕과 나]와는 달리 1946년의 영화에서는 왕의 후궁이 자신의 연인과 도주했다가 화형에 처해지는 장면이 있어서 다소 충격적이었다. 두 작품 다 오래 되어서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지금 다시 본다면 여러 가지 이야기할 거리가 많을 것 같기도 하다) 이 작품들이 제작될 당시만 해도 서구 중심주의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이분법적으로 단순화하여 말하자면 문명화된 서구가 미개한 동양을 계몽시킨다는 것이 극히 자연스러운 설정이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에드워드 사이드를 필두로 서구적인 편견에서 동양을 미개한 나라로 혹은 신비로 가득찬 곳으로 보는 시각이 지닌 허구성을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기 때문에, 20세기가 끝나는 시점인 1999년에 나온 이 영화는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일단 형식적인 측면에서 사실성을 견지하려 했고, 동양인의 시각도 반영하려 애썼다. 그 대표적인 예가 몽쿳이 영국 여자를 교사로 초빙했다고 하자, 황태자가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나요? 제국주의자를 교사로 들이다니"(정확한 대사는 기억나지 않으나 대충 이런 의미였던 듯하다)라고 말하는 부분이다. 또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통해 노예 제도의 불합리성을 지적한 1956년의 영화와는 달리 이 작품에서 뭉쿳 왕은 국내 정치 문제에 대해서 간섭을 하지 말라고 안나에게 오히려 충고를 한다. 다시 말해 이 작품은 이 전의 작품들에 비해 다소나마 균형잡힌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근본적으로 여교사와 왕의 로맨스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서 한 편의 역사 드라마로보다는 성적 판타지로 보게 된다(텔레비전에서 방영하던 것을 얼마간 시청한 적이 있었는데, 유튜브에서 소개하는 것을 우연히 접하고 다운을 받아서 보게 되었다). 전작에 없던 부분으로 새롭게 첨가된 것이 장군의 반란과 그에 따른 왕실의 위기이다. 이 위기는 뭉쿳 왕의 당당함과 안나의 기지로 극복되는데 이 부분의 극적 긴장감이 약한 것이 이 영화의 약점 중의 하나가 한다. 전체적으로 엄청난 제작비를 들여 서구 열강의 식민지 쟁탈전에서 동남아 국가 중 유일하게 독립을 지킨 1860년대 태국을 아름다운 영상으로 담아낸 대작이지만(실제로는 태국 당국의 반대로 태국에서 영화를 촬영하지 못하고 말레이시아에서 촬영해야 했고 영화 자체도 역사적인 부정확성, 왕의 명예를 실추시킨 것 등의 이유로 상영 금지를 당했다), 당당하면서도 자상한 면을 지닌 태국 왕의 이미지와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이면서도 왕과 마찬가지로 당당하고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여주인공의 이미지가 로맨스로 이어지는 것에는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한다.
[이 작품은 서양이 동양을 어떻게 보는가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재료이다. 기억력의 한계 등으로 대략적인 글쓰기를 할 수밖에 없지만 나중에 따로 좀 꼼꼼하게 살필 기회가 있지 않을까 한다.]
--------
cinematography
92백만 달러 = 9백 20억/ 천 억에 가까움.
1백
로맨스
Anna Harriette Leonowens The English Governess at the Siamese Court (1870) Romance of the Harem (1872).
Margaret Landon소설 1944 (미국 작가)
Anna and the King of Siam (1946) 영화
The King and I 1956(뮤지컬 영화) / 그 전에 뮤지컬 (50년)
- Anna and the King of Siam (1946 film)
- The King and I (1951 stage musical)
- The King and I (1956 film musical)
- Anna and the King (1972 TV series)
- The King and I (1999 animated film musical)
- Anna and the King (1999 film)
'영화 그밖의영상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외계+인 - 최동훈. CGV 포천(20220720) CGV 왕십리(0721) (0) | 2022.07.21 |
---|---|
탑 건(토니 스콧, 1986) 대 탑 건 : 매버릭(조지프 코진스키, 2022) (0) | 2022.07.17 |
싱크홀 -- 김지훈(2021) (0) | 2022.04.17 |
점퍼(Jumper) -- 더그 라이먼(Doug Liman)[2008] (0) | 2022.03.08 |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North by Northwest)--알프레드 히치콕(1959) (2) | 2022.0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