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훈 감독의 영화들은 모두 인기가 있어서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을 빼고는 다 봤다('범죄의 재구성'도 본 듯한 느낌이다). 다만 '전우치'는 전개가 지루하고 도술이라는 소재가 별로 와닿지 않아서 끝까지 참고 봤는지 아닌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타짜, 전우치, 도둑들, 암살)
이번 영화는 마침 시간도 나고 해서 개봉일에 맞춰 기대를 안고 보았는데, 기대에는 못 미쳤다. 차라리 기대감이 없었다면 그런대로 재미있게 볼 수는 있었을 듯하다. 우선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부분은 외계 죄수들의 감옥으로 인간의 뇌(몸)를 이용한다는 것이 흥미롭고 신선한 착상이긴 하지만 설득력이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인간보다도 훨씬 발달된 문명이, 시간 여행까지도 가능한 문명이 죄수의 감옥으로 비윤리적일 뿐만 아니라 위험부담도 큰 인간의 뇌(몸)를 이용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없어서 영화는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출발하는 셈이다.
그 다음으로 영화 속에 너무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 그것이 정리가 잘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은 대로 일단 영화의 줄거리 및 설명을 적어본다. (여기까지 적고 난 다음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작품에 대한 이해가 줄거리를 적을 수 있을 정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영화를 한 번 더 보았다. 내용 자체가 복잡한 데다가, 내 청력이 떨어져서인지 대사를 알아들을 수 없는 경우가 많이 있었고, 또 피로해서 나중에는 집중력도 좀 떨어졌기 때문이다.)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내용을 알고 싶지 않은 사람은 보고 난 다음에 읽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경우 두 번째 보니까 잘 이해가 되지 않던 부분들이 이해하기 쉬워서 영화를 좀 더 잘 즐길 수 있었기 때문에 읽고 보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먼저 영화의 내레이션은 외계인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의 뇌를 감옥으로 이용해 왔는데(시간 여행이 가능한 상황에서 오래전이라는 말은 좀 무의미해지는 느낌이다.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라는 대사가 나온다) 죄수들을 여러 시간대에 나눠 수감했다(하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시간대는 고려말 1380년과 1391년, 그리고 현대뿐이다). '가드'(김우빈, 사이보그)와 '썬더'(로봇)는 이 죄수들을 관리하는 임무를 맡아 지구에 와 있다. 현대를 주된 거점으로 하고 있는 그들은 인간의 몸에서 탈옥한 죄수를 좇아 1380년으로 와서 죄수를 인간의 몸에서 추출하여 감금실?에 가둔다(인간의 뇌에 죄수를 주입할 것이 아니라 진작부터 자기 별에서 그렇게 관리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이때 죄수가 들어가 있던 여인이 죽고 아기만 남아 있는데, 썬더가 연민 때문인지 현대로 아기를 데려온다(로봇에게 그런 감정이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왜 아기를 데려왔는가?)
십 년이 지나 아기는 '이안'이라는 이름의 초등학생으로 학교에 다니는데 아버지 가드를 경찰에 신고한다. 가드와 썬더가 이안의 뇌를 자극해서인지 그녀는 상당히 똑똑하고, 그래서 가드와 썬더의 정체를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으며 무슨 큰 일이 벌어질 것을 예감한다.
그 다음 장면은 1391년이 배경이다. 갑자기 현상금을 노리는 무륵도사(류준열)가 등장하는데, 그는 현상금이 큰 신검(외계에서 온 에너지 칼로 이것은 에너지원일 뿐만 아니라 시간 여행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다)을 추적하는데, 그 뿐만 아니라 성인이 된 이안(천둥을 쏘는 처자로 알려져 있고 현상금 리스트에 올라와 있다. 천둥의 정체는 어린 이안이 현대에서 가져간 권총이다. 김태리), 자장(김의성), 살인귀, 삼각산 신선인 청운(조우진)과 흑설(염정아), 개똥이 등도 신검을 쫓는다.
(이 장면은 영화 후반부에 나오는 현대의 장면을 보아야 이해할 수 있다.)
107명의 죄수들이 병원에 있는 사람들의 몸에 감금되고, 용케 죄수가 몸에 들어오는 것을 피한 이안은 이 장면을 휴대폰으로 촬영한다. (과거에서 현재로, 또 현재에서 과거로 가는 장면을 두 번이나 보았는데도 순서대로 기억하기는 어렵다. 기억대로 좇아가면서 써본다.) 그런데, 외계에서 웬 로봇이 비행선을 몰고 와서 서울 시내를 난장판으로 만들고(이 로봇의 정체도 불분명하다. 누가 보낸 것인지? 외계 문명에서 반란이라도 일어난 것인지), 서울의 대기를 외계의 그것으로 바꾸기 위해 '하바'라는 것을 터뜨리려고 하고 실제로 하나가 터져 많은 사람들이 죽는다(지구의 대기가 외계인들의 그것과는 달라 그들은 인간의 몸 밖으로 나와서는 5분 이상 견디지 못한다). 병원에서 죄수들이 자신들의 몸에 침투한 사람들 중에 이곳 서울 도심에 있게 된 사람은 형사인 문도석(그의 몸에 들어간 외계인은 설계자로 엄청난 소지섭)과 의사(김의성, 과거로 가서는 자장도사가 됨), 정체 미상인 인물 이렇게 세 명인데, 이들과의 싸움에서 불리한 형편에 처한 가드와 썬더는 이안의 충고에 따라 이들을 과거에 가둬버리기 위해 고려말로 간다. 이들이 어느 시간대로 갔는지 정확히 나오지는 않지만 영화 첫 장면에 나오는 1380년 언저리로 갔다고 봐야 시간이 맞아 떨어진다. 이안을 비롯해서 이들은 모두 고려말의 시간에서 십 년을 보내며 신검과 우주선을 찾아헤맨 것이다.
(퍼즐을 맞추듯이 영화의 내용을 맞춰나가야 하는데, 한 번에 이 모두를 파악하기에는 사건도 많고 등장인물도 너무 많다. 그래서 영화를 즐기기가 힘들다.)
더 나아가 영화는 현대에서 이들이 1380년으로 들어올 때, 황릉현감과 삼각산 신선인 청운과 흑설, 개똥이, 그리고 현감의 제자(이 부분의 발음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는데, 이 아이가 무륵이다)가 목격하게 된다. 이 때 물에 빠졌던 이안은 강물을 따라 흘러오다 어린 무륵의 도움으로 물밖으로 나오고, 이안이 신검을 찾으려 하자 그것은 못 찾고 그 대신에 이안의 등에 매는 가방을 찾아준다. 문도석은 거의 기가 다 빠진 상태라 새로운 몸이 필요했는데, 마침 어린 무륵과 맞딱뜨리게 된다(새로운 몸에 들어가면 기억을 잊어버리게 된다고 함).
영화는 무륵의 몸에 설계자인 외계인이 들어가 있다는 것이 밝혀지는 지점에서 끝을 맺는다.
줄거리를 적어보니까 내용이 복잡하고, 한 번 봐서는 쉽게 즐기기가 어렵다는 걸 잘 알 수 있다. 두 번 봄으로써 영화에 대한 이해도와 영화에 대한 평가도 좀 좋아지긴 했으나, 그렇다고 괜찮은 영화라고 말할 정도는 아니다.
처음에도 말했듯이 인간의 몸을 죄수의 감옥으로 사용한다는 설정 자체가 신선한 반면에 논리적 설득력이 없으며, 죄수들 편인 로봇은 누가 보낸 것인지 불분명하고(그런 내용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외계의 대기가 지구인에게는 치명적인 반면에 외계인들은 지구의 대기 가운데에서 5분 버틸 수 있다는 설정 또한 지나치게 작위적이다.
시대극적인 면, SF적인 면, 액션 영화로서의 측면 등 다양한 장르가 뒤섞인 것을 감독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겠으나 너무 묙심이 많았던 것은 아닌가 한다. 극장에서 보는 영화라는 것이 책처럼 이해가 안 될 때는 잠시 멈춰서 생각을 해보거나 앞으로 가서 다시 보거나 할 수 없기 때문에(물론 돈을 내고 여러 번 볼 수는 있다) 이 영화의 내용을 한 번에 모두 흡수하기에는 보통 사람의 머리로는 무리가 따르고, 부분부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장면들이 있음에도 그러한 복잡함 때문에 자칫 지루해 질 수 있다는 것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졸리고 머리가 잘 안 돌아 간다. 내일 다시 한 번 정리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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