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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밖의영상들

탑 건(토니 스콧, 1986) 대 탑 건 : 매버릭(조지프 코진스키, 2022)

by 길철현 2022. 7. 17.

일상의 분주함 때문에 최근에는 영화를 잘 보지 못했다. 몇 달 전에 '싱크홀'을 보았고, 그러다가 일주일 전쯤에 '유관순 열사 유적지'를 방문한 다음 그녀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어 '항거: 유관순 이야기'와 '1919 유관순'을  보았다. 지난 수요일(13일)에는 '미나리' 이후 1년 몇 개월 만에 처음으로 영화관에 가서 '탑 건 : 매버릭'을 보았다. 영화 마니아는 아니라고 해도 영화관을 이렇게 오래간만에 찾은 것도 성인이 된 이후에는 처음 있는 일이 아닌가 한다.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1986년에 나온 '탑 건'이 너무나도 친숙하여 보았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실제로는 보지 않았다는 점이다(오래 되어서 내용이 기억이 안 나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당시 팝송을 즐겨 듣던 나에게 이 영화는 영화에 삽입된 두 곡의 히트곡 Kenny Loggins의 Danger Zone과 Berlin의 Take My Breath Away가 너무나도 익숙해 그런 착각을 한 듯하다(Take My Breath Away는 아카데미상 음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래서, '탑 건 : 매버릭'(이하 '매버릭'으로 약함)을 보고 난 뒤 집에 와서 다운을 받아서 보면서, 이 후속 편이 전편과 어떻게 연결되는 지도 한 번 살펴보았다. 

 

전편과 마찬가지로 케니 로긴스의 Danger Zone이 흐르는 가운데 항공모함 위에서 비행기가 이착륙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매버릭'은 전편의 스토리 라인을 복제하다시피 따르고 있다(주인공이 탑건에 온다(후속편에서는 교관으로). 주인공이 사랑에 빠진다. 훈련 중 어려움을 겪는다. 실제 전투 상황에 직면하여 어려움을 이겨내고 임무를 무사히 완수한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리처드 기어와 데브라 윙어 주연의 '사관과 신사'(Joe Cocker와 Jennifer Warnes가 부른 이 영화의 주제곡 Up Where We Belong도 차트 1위를 기록하였을 뿐만 아니라 아카데미상 음악상도 수상하였다)의 계보를 잇는다고 할 수 있지만, '사관과 신사'가 훈련의 어려움을 이겨내어 그 과정을 무사히 마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고 한다면, 탐 크루즈의 이 영화들은 제목 그대로 주인공의 Maverick적인 측면, 혹은 영웅성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

 

지극히 미국적이고(미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인가?) 단순하고 어떻게 보면 피상적일 수밖에 없는 스토리의 전개인데도 이 두 편의 영화가 대중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득한 까닭은 무엇일까? 영화는 우리가 포기할 수밖에 없는 전능감에 대한 환상을 충족시켜줌과 동시에, 일과 사랑에 있어서의 성공 내지는 성취라는 측면도 동시에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삶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위안과 대리만족을 추구하는 영화는 대체로 이러한 요소를 담고 있다. 문제는 그것을 사람들에게 먹혀 들어가게 하는 것이리라. 전편을 놓고 본다면 일단은 스토리의 전개가 무리가 없으며, 거기다 비행 장면들이 실감이 날 뿐 아니라 속도감이 스릴을 안겨준다. 거기다, 탐 크루즈가 지닌 매력에다 영화 삽입곡들도 영화에 대한 몰입도를 높인다. 개인적으로는 사람들이 보통 접하기 힘든 해군 조종사란 소재와 비행 장면들을 흡인력 있게 담아낸 부분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전편이 나오고 36년이나 지나 20대의 탐 크루즈가 60이 다 되어(촬영 시점을 기준으로 할 때) 등장한 이 영화에서는 나이가 먹을 수록 그 능력이 증폭되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영화를 보는 동안만이라도 현실로 받아들이도록 하는데 대체로 성공한 듯하다(그렇지 않다면 영화를 보는 도중에 박차고 뛰쳐나가야 할 것이다. 후속편의 제작 이야기는 십 년도 더 전부터 있었는데, 전편의 감독이었던 토니 스콧의 자살로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매버릭은 자살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을 인물인데). 자본과 기술력의 결합으로 비행 장면의 사실감은 더욱 극대화되었다(CG를 거의 사용하지 않아서 더욱 그러하다). 

 

(영화에서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는 가상의 적국은 북한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그 지리적 특성은 북한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기술력에서 미국과 차이가 별로 없기 때문에 인적 자원의 뛰어남이 강조되는 것도 흥미롭다. 적과는 소통이 절대적으로 차단되어, 피트(탐 크루즈)와 루스터(마일스 텔러)가 적국의 비행장으로 들어가는 장면에서도 적과 부딪히지 않는다는 건 F14(전편에서 탐 크루즈가 몰던)라는 이제는 유물이 된 비행기를 몰고 탈출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 탓이겠으나, 적이라는 것이 인간적인 대면이나 적대감의 대상이 아니라 파괴의 대상이라는 걸 상징하는 듯 비친다.)

 

한바탕 신나게 허구의 세계를 걷고 나온 여름 밤의 거리는  바람 한 점 없이 무덥고,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고 해도 얼굴의 일부가 되어 버린 마스크를 벗을 길 없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치솟는 물가로 무겁기 짝이 없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