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깬 시각은 대략 다섯 반 경이었다. 어제 오후처럼 통증이 심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앞섰으나 심하게 아프지는 않았다. 통증이 너무 심해 돌아다닐 수 없으면 배를 타고 나가기라도 해야겠지만(들어온 것이 아까워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었지만), 들리는 말로는 파도가 심해 오늘은 배가 뜨지 않는다고 했다. 결항이 이렇게 많은 것을 보면 시간적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섬으로 여행을 떠났다간 낭패를 보기 십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기야 그런 낭패가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겠지만.
모텔 벽지에 적힌 구절이 흥미로워 사진에 담아 보았다. 우리 사랑은 바람과 같아, 볼 수는 없어도 느낄 수는 있지. 유행가 가사 같기도 하고, 엘리자베스 배릿 브라우닝이 자신의 남편 로버트 브라우닝에게 보낸 연시의 한 구절 같기도 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니콜라스 스파크스가 쓴 [A Walk to Remember]라는 소설에 유사한 구절이 나왔다. Our love is like the wind. I can't see it, but I can't feel it. 볼 수는 없어도 느낄 수는 있다는 구절은 또 자연스럽게 크리스티나 로제티의 '누가 바람을 보았나'를 떠올리게 한다(내게도 다시 사랑이 찾아올까? 혼자인 게 좋은가?).
Who has seen the wind?
Neither I nor you:
But when the leaves hang trembling,
The wind is passing through.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며 누워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나가서 좀 걷기로 했다. 특별히 갈 곳도 없고 해서 내 발걸음은 다시 심청각으로 향했다. 어제 오후에 백령도에 도착하여 본 것이라곤 백령면내의 거리와 골목들, 그리고 야밤에 올라가서 본 심청각뿐이라 뭔가를 봤다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심청각으로 발걸음이 향한 것은 그나마 북한 땅이라도 좀 보고 싶었던 것인데 안개로 가시거리가 얼마되지 못해 그마저도 실패로 돌아갔다.
심청각 앞의 비석에 적힌 설명을 보면 백령도가 정말로 심청전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듯이 보인다.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인간의 능력과 그것의 향유. 그래서 소설은 인간이 가장 즐기는 장르의 하나가 되었다. 요즈음은 시각적 이미지까지 더해진 영화의 그 무궁무진한 조작력? 때문에 인기가 많이 시들긴 했지만.
안개 등으로 가시거리가 얼마되지 않아 북한 땅은 보이지 않았다. 망원경으로 보아도 바다와 구름낀 하늘뿐이었다.
고은의 머리에는 시가 가득 차 있어서 버튼을 누르면 시가 흘러나오는 듯하다.
점박이 물범 또한 백령도의 명물인 듯한데, 나는 백령도에 머무는 동안 한 마리도 보지 못했다.
심청각 아래 이 골목에는 효를 주제로 한 글짓기에서 입상한 글들이 붙어 있어서 몇 편 읽어보았다. 지금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고생하는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려야겠다는 정형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았던 듯하다. 포스터들도 붙어 있었는데 몇 작품은 참신했던 듯하다.
아침은 편의점에서 김밥 등을 구입해서 간단하게 떼우려고 했는데, 아침 식사를 파는 식당이 있어서 들어가서 [닭죽]을 시켰다. 의자가 아니라 맨 바닥에 앉는 곳이었는데 식사가 나올 때까지 서 있다가 통증을 참으며 먹었다.
허리가 안 좋긴 하지만 그래도 관광에 나서보자는 생각에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서 차를 렌트했다. 원래 24시간 기준이지만, 배가 들어오는 시각인 다음날 1시 정도까지 해 줄 수 있다고 했다. 전화 통화를 하고 한 20분 지났을까? 모텔 앞에 있다는 연락이 와 나는 짐을 챙긴 다음 모텔을 나섰다. 본격적인 백령도 관광이 시작된 것이다. 나는 먼저 두무진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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