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신의 아들로 인간의 형상으로 지상에 왔다고 하고,
그런데 [지상의 인간](The Man from Earth)이라는 영화를 보면
예수는 죽지않는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신성모독적인 발언을 하고
(21세기에는 그런 신성모독을 해도 법적인 심판을 받지 않는다),
박봉성의 만화 중엔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도 있지만,
인간은 적어도 현재까지는 신이 될 수도 없고 신에 가까운 존재도 아니다.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신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신에 대해서
우리 인간들이 어느 정도 일치된 견해를 갖고 있기나 한가?)
인간이 인간인 이상
우리가 외부 환경에 대한 조절능력을 확장시켜 온 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환경 오염과 지구온난화 등을 보면 그 반대로 악화시켜 왔다)
인간은 외부적으로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해 대단히 무기력하다.
내가 타고 있는 비행기가 추락하면 그냥 죽을 수밖에 없고
(기적적으로 살아남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건 대체로 그 사람의 능력과는 무관하다)
손톱 밑에 가시가 박히면 아파할 수밖에 없다
(물론 가시를 뽑으면 고통은 사라진다.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여 그 고통을 억지로 참는 사람들도 있긴 하겠지).
사고를 당하거나 병에 걸리지 않게 조심하지만
그런 일을 당했을 경우엔 또 거기에 맞춰 살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와 대비되는 상황을 그릴 수 있는 능력을 인간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지니고 있어서 더욱 답답하다).
물론 극단으로 몰린 인간은 "까짓것 죽기 밖에 하겠어"라고 되뇌일 수도 있겠으나,
육체적 고통이든, 정신적 고통이든 극심한 고통에 처한 인간은
일차적으로는 삶이든, 죽음이든 거기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 외엔 별다른 여유가 없다.
나의 경우 사다리에서 떨어진 일, 지붕에서 떨어진 일, 전기에 감전된 것,
축구를 하다가 명치를 걷어차인 것, 몇 번의 크지 않은 교통사고 등
쉰 다섯 해 하고도 구 개월 가까이 살면서 아찔한 순간들이 몇 번 있었으나
그래도 외부적으로는 큰 사고없이 지내왔다(다행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하지만 내면적으로는 롤러코스터라도 탄 듯 상승과 급하강을 되풀이하면서 지내온 시간이었다.
보통 감정기복(좀 더 병적인 상태는 조울증)이라고 부르는 이것의 진폭이 상대적으로 큰 편이다
(몇 번의 위기가 있었는데 작년 초의 정신적 위기는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무력한 대로 외부적 사건이나 사고에 휘말리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처럼
또 무력한 대로 내면의 소용돌이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 무던히도 애를 썼다.
어떻게 보면 거기에 너무나도 많은 에너지를 빼앗겨
정작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할 곳에 제대로 쏟아붓지 못했다.
지당한 말이지만 어쩔 수 없다는 걸 알면서 모르면서
애를 쓰기도 하고 체념도 하면서 살아 왔고 살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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