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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호수행

연지못[연지, 경남 창녕군 영산면 서리](20220630)

by 길철현 2022. 7. 4.

벚꽃 핀 연지(인터넷에서 가져옴)

[소개] 영산천 위에 놓인 만년교와 함께 영산면을 대표할 만한 명소로 봄이면 저수지 둘레에 피는 수양 벚꽃이 특히 유명하다. 조선 시대에 조성된 유서 깊은 이 저수지에는 밀양의 위량못(위양지)처럼 다섯 개의 섬이 있으며 그 중 가장 큰 섬에는 항미정이라는 정자가 놓여 있다. 영축산을 배경으로 가볍게 둘레길을 한 바퀴를 돌다가 저수지가 보이는 카페에서 차나 커피와 함께 여유를 즐기는 것도 좋을 듯하다. 다만 수질 관리를 얼마나 더 잘 하느냐 하는 것이 큰 과제로 남아 있다.  

 

[마을 소개] 영산읍내의 성외리 중 서쪽에 있는 마을이므로 서리(西里)라 하였다. 전에 면사무소가 있었던 일대로 못 가운데 5개의 섬과 항미정(抗眉亭)이 있어 경치가 아름다운 연지(硯池)못이 있다. 행정리로는 서리 1개가 있다.

 

[항미정(杭眉亭)의 유래] (고쳐 쓴 것. 정자의 유래이면서 동시에 연지의 유래도 포함하고 있다.)

 

예부터 영산 고을의 진산인 영축산은 불덩어리의 형상을 띈 산이므로 고을에 화재가 자주 일어날 수 있다 하여 "불은 물로 다스린다"는 오행 사상에 의거 화재를 예방하고 또 농사에도 이로운 치수구(治水口)로 벼루 모양의 못을 만들었는데 이것을 연지(硯池)라 하였다. 

 

그러나 오랜 세월 동안 가꾸지 않아 못의 구실을 못하다가 1889년 신관조 현감이 다시 파고 막아 개울물을 끌어들이고 하늘의 오성(五星)을 본떠 다섯 개의 섬을 만들었다. 삼 년 뒤 그중 큰 섬에다 여섯 기둥과 굽은 난간에 한 칸의 초가 정자를 세우고, 소동파가 중국 항주의 서호(西湖)를 일컬어 "항주(抗州)의 미목(眉目)"과 같다고 읊은 것을 빗대 항미정(抗眉亭)이라 불렀다. 

 

그 후 1920년 두 칸 사각의 기와 정자로 개축하였다가 1971년 다시 육각정자로 크게 중건하여 오늘날의 항미정이 되었다.

 

[원래 안내문]

옛부터 영산 고을의 진산인 영축산은 불덩어리의 형상을 띈 산이므로 고을에 화재가 자주 일어날 수 있다하여 "불은 물로 다스린다"는 오행 사항에 의거 화재를 예방하고 또 농사에도 이로운 치수구(治水口)로 벼루모양의 못을 만들었는데 이것을 연지(硯地)라 하였다. 

 

그러나 오랜 세월동안 가꾸지 않아 못의 구실을 못하다가 1889년 신관조 현감이 다시 파고 막아 개울물을 끌어들이고 하늘의 오성(五星)을 본따 다섯 개의 성을 만들었다. 삼년뒤 그중 큰섬에다 여섯기둥과 굽은 난간에 한칸의 초가 정자를 세우고 중국의 유명한 항주호수의 미정(眉亭)에 비겨 현판을 항미정(抗眉亭)이라 한 것이 최초의 이 정자이다.

 

그후 1920년 두칸 사각의 가와정자로 개축하였다가 1971년 다시육각정자로 크게 중건하여 오늘날의 항미정이 되었다.

 

 

(참고 -  1. 오행 - 수, 화, 목, 금, 토 / 사항 - 물은 불을 이긴다? 사상을 잘못 쓴 것인 듯.)

2. 연지(硯地) -   池를 잘못 쓴 것

3. 다섯개의 성 - 다섯 개의 섬 (별을 닮은 다섯 개의 섬이란 말)

4. 항주호수, 즉 서호의 미정은 확인이 되지 않는다.

5. 가와정자 - 기와 정자를 잘못 쓴 것.

 

[이 오래된 안내문은 띄어쓰기는 차치하더라도 철자를 틀리게 쓴 부분이 너무나 많다. 새로운 안내문이 필요하다.]

 

[탐방기]

영산면은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영산현의 본현에 속해 문화재가 많고, 1914년 창녕군과 영산군이 통합하여 창녕군에 속하게 될 때까지 영산군의 중심지라서 면 치고는 규모도 크고 인구도 많다. 영산면 중심가로 들어선 나의 첫 인상도 사람이 많고 활기가 넘치는 듯했다. 

 

목욕탕에 들렀다가 문이 닫혀 이곳 연지로 향했다. 로터리길 빈 공간에 차를 주차하고는 둘레길로 올라섰는데, 연지는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아도 면 중심지에 있다는 사실과, 작은 저수지로는 뜻 밖에도 안에 섬을 다섯 개나 거느리고 있어서(처음엔 정확히 몇 개인지도 몰랐지만)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거기다 동쪽에 위치한 영축산(영취산)이 풍광을 돋보이게 했고, 인접한 아파트와 아기자기한 건물들도 저수지와 잘 조화를 이루었다. 다만 수질이 썩 좋지 않은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나는 서에서 동쪽 방향으로 천천히 저수지를 한 바퀴 돌았다. 

이 안내문은 이제 새 것으로 바꿔야 할 듯.
항미정과 항미정으로 들어가는 다리(가교)
낡을 조자 밑의 글자는 뭔지 모르겠다.

다리는 다섯 개의 섬 중 두 개의 섬을 잇고 있으며 들어갔다가 다시 돌아나와야 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저수지를 다리로 절단하지 않은 것이 나로서는 잘한 선택으로 생각되었다. 글을 쓰면서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수원에 서호와 항미정이 있다는 걸 알게 되어서 한 번 찾아가보고 싶은 욕구가 솟았다. 

'연지로 오시오'라는 뜻인 듯
멀리 보이는 비는 [남산호국공원]에 있는 영산지구전적비. 영산지역은 한국전쟁 당시 부산지역 공격을 위하여 북한군이 막바지 대공세를 펼쳤으나 국군과 유엔군의 결사 방어로 남침이 저지된 격전지였다고.

아담한 크기이지만 다섯 개의 섬과, 섬으로 이어지는 가교, 그리고 둘레길이 잘 가꿔진 연지는 영산면의 명소로 손색이 없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