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강
234) 플라톤은 그의 철학으로 보아서나 철학적 전형으로 보아서나 혼합적 특징이 두드러진 최초의 위대한 인물. (혼합성) / 독창성(이전 철학자들)
240) 지혜 - 가장 탁월한 학문(아리스토텔레스)
246) 페레키데스가 엮은 최초의 산문체 우주생성론 - 헵타미코스
1. 에테르인 제우스로 그것을 통해 모든 것이 만들어졌다
2. 질료인 크톤(Chthon)(토양)으로 그것에서 모든 것이 만들어졌다.
3. 시간인 크로노스로 그 안에서 모든 것이 만들어진 것.
248) 땅이 먹여 살리는 것들 가운데 인간보다 더 비참한 존재는 없다. (오디세이야)
- 다수의 통치는 좋은 것이 못 된다. 한 사람만이 다스릴지어다. 주도권을 갖도록 명민한 크로노스의 아들이 지휘봉과 법을 하사한 한 사람의 왕이 다스릴지어다. (일리아스)
266) 그 전체 방향에서 보면 이오니아의 철학자들은 어쨌든 올바른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최초로 이토록 현란한 이 전 세계를 유일한 원소가 단지 형식적으로만 다르게 발전하는 것으로 파악하는 데는 엄청난 자유와 대담성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누구도 그만큼은 두 번 다시 할 수 없는 공헌입니다.
274) 아낙시만드로스 - 무한정자: 물자체 Ding an sich
275) 이로써 그는 탈레스를 무한히 능가했습니다. 즉 영원한, 우리에게는 부정으로만 파악되는 존재의 세계를 생성하고 소멸하는 경험의 세계에서 분리한다는 사실에는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중요한 물음이 제기되고 있는 것입니다.
278) 원존재의 불멸성은 그것의 무한성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그것에 한정된, 몰락으로 이끄는 성질들이 없다는 데 근거한 것입니다. 원존재가 규정된 것이라면 그것은 또한 생성된 것일 겁니다. 그러나 그와 함께 그것은 몰락하도록 정해졌을 것입니다. 생성이 결코 중단되지 않도록 원존재는 생성을 초월해야 하는 겁니다. (das Unbestimmte/ das Unendliche)
281) 그의 고유의 위대성은, 어떤 하나의 현존하는 질료로 사물들의 최초의 생성이 설명되지는 않는다는 인식입니다. 그는 무규정자에까지 도피해 들어갔습니다.
286) 파르메니데스는 자신의 철학 대부분에서 본질적으로 아낙시만드로스의 사유를 한층 더 진행시켰습니다.
9. (헤라클레이토스) 피타고라스
288) 무한정자와 생성의 세계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방식으로 병립되어 있습니다. 일종의 매개되지 않은 이원론입니다. 헬라클레이토스는 존재의 세계를 전적으로 부정하고 오로지 되어가는 과정의 세계만을 주장합니다. 파르메니데스는 아낙시만드로스의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 반대를 행했습니다. [아낙시만드로스의 이원론의 문제점]
292) 피타고라스 - 윤회설과 일정한 종교적 계율에서 오르페우스 교도들과 일치
294) 영혼의 불멸성, 윤회 - 이집트인들/ 인도인들과의 연관성?
10. 헤라클레이토스
310) 통일성 - 피타고라스는 인류의 무수한 세대의 동일성, 아니 그보다는 영혼을 가진 모든 것은 모든 시기에 있어서 동일하다는 데 대한 믿음/ 소크라테스 - 통일성, 그리고 영원히 동일한, 어디에서나, 어느 시기에나 동일한, 구속력 있는 논리적 사유의 힘에 대한 믿음 / 헤라클레이토스 - 자연 과정의 통일성과 영원한 합법칙성에 대한 믿음.
313) 폰 베어 - 어떤 견해가 살아 있는 자연에 관한 옳은 견해인가? (인간의 관점이 아닌 다른 관점)
316) '그것은 있다'고 사람들이 말할 수 있는 사물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존재자를 부인합니다. 그는 오로지 되어감의 과정 속에 있는 것, 유동하는 것만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지속에 대한 믿음이 착각이라고, 어리석음이라고 논합니다. 그리고 이제 거기에다 다음과 같은 생각을 덧붙입니다 : 그러나 되어가는 과정에 있는 그것은 영원한 변전 속에서 하나이다. 그리고 이 영원한 변전의 법칙, 사물들 안의 로고스는 바로 저 하나인 불이다. 이와 같이 원래 되어가는 과정에 있는 하나인 존재는 자기 자신에게 법칙이 됩니다. 그것이 생성한다는 사실과 그것이 생성하는 방식은 불인 로고스의 업적입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이렇게 오로지 일자(一者)를 봅니다. 그러나 파르메니데스와는 반대의 의미에서 봅니다. 사물들의 모든 성질, 모든 법칙, 모든 생성과 소멸은 일자의 존재가 지속적으로 개시되는 방식입니다. 파르메니데스가 감각의 착각이라고 생각하는 잡다는 헤라클레이토스에게는 일자의 의상, 일자가 모습을 드러내는 형상이지 결코 착각이 아닙니다. 일자는 도대체 달리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318) 여기 이 세계는 신들이나 인간들 가운데 어느 누가창조한 것이 아니라, 항상 존재했고, 현재에도 존재하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법도에 따라 타오르고 법도에 따라 꺼지면서 영원히 살아 있는 불.
이 세계는, 모두에게 동일한데, 어떤 신이나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언제나 있어왔고 있고 있을 것이며, 영원히 살아있는 불로서 적절한 만큼 타고 적절한 만큼 꺼진다. (245. [소크라테스 이전] . 클레멘스)
333) 전반적으로 제기되어야 할 유일한 물음은 어째서 불은 항상 불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이 물음에 대해 그는 말합니다. "--- 그것은 하나의 유희이다"라고
11. 파르메니데스와 그의 선구자 크세노파네스
349) 우리는 파르메니데스에게 아주 비상한 추상력이 있다는 것을 전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근본적 착상은 '오직 존재자만이 있고, 비존재자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비존재자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최대의 배리입니다.
---) 영원한 흐름에는 인식의 항상성이 없다는 것, 그래서 앎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상세히 설명. (플라톤 - [크라틸로스])
353) 칸트에게는 물자체와 현상의 세계의 대립은 인식에 대한 거의 반대되는 비판에서 생겨났습니다. 칸트는 파르메니데스가 자신의 존재자에게 보류해두었던 바로 그 술어들, 즉 시간, 공간, 실체를 표상의 세계에 대한 우리의 필연적인 전제로 본 반면, 물자체는 오히려 한정되지 않은 것으로, 우리의 인식에게는 질적인 특성을 나타내지 않는 것으로 서술했습니다.
355) 일원론자 - 헤라클레이토스, 파르메니데스
다원론자 - 원자론자들. 플라톤.
- 모든 입장들 가운데 파르메니데스의 후기의 입장이 가장 내용이 공허하고,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으므로 가장 비생산적입니다.
12. 제논
363) 중요한 것은 물론 오랜 철학이 어찌해볼 도리를 몰랐던 인식, 즉 우리의 표상들을 영원한 진리들로 보는 모든 방식은 모순으로 이끈다는 인식입니다. 절대 운동이 있다면 공간은 없다. 절대 공간이 있다면 운동은 없다. 절대 존재가 있다면 다수는 없다. 절대 다수가 있다면 하나는 없다. 등등. 여기에서 우리가 그러한 일반적 개념들로는 얼마나 사물의 핵심을 건드리지 못하는가 하는 것이 명백해져야 할 겁니다.
13. 아낙사고라스
370) 오로지 회전 운동을 통해서만 이성은 질서를 부여하는 작용을 합니다.
373) 현재 살아 있는 모든 존재 안에 있는 정신, 그것은 물론 언젠가 움직임에 원동력을 부여했던 정신이기도 합니다.
[아낙시만드로스의 무한정자라는 개념과 비교. Nous - 오성? 정신, 이성?]
374) 아낙시만드로스와의 연관성 - 모든 성질을 나누지 않고 뒤섞은 것으로 무한정자가 좀더 상세히 규정됨. 창조의 시작은 정신을 통해서. 그 과정은 점진적으로 분리되어나가는 과정. 시작은 이원론과 함께.
14. 엠페도클레스
395) 성생활은 그에게 최상의 것이자 가장 고귀한 것으로서, 불화의 충동에 대한 최대의 반대입니다.
양성구유, 어지자지, 사방지, androgyne hermaphrodite 간성 남녀추니 자웅동체 intersex congenital eunuch
398) 사랑은 모든 것을 서로 맺어줍니다. 황소의 몸통들을 인간의 머리와, 인간을 황소의 머리통들과, 양성 구유의 존재들과 모든 가능한 괴물들을 연결시킵니다. 같은 것을 향한 충동에 항상 이끌려, 이제 차츰 지체(肢體)들이 조화롭게 결합됩니다.
(사랑과 불화)
402) 그의 위대함은 그가 엄밀한 원자론을 준비했다는 데 있습니다.
15. 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
409) 운동이 있다. 그것은 내가 사유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유는 실재성을 가진다.
그러나 운동이 있다면 허공도 있어야 합니다. 또는 '비존재자는 존재자만큼이나 실재적'입니다. 즉 아무것도 아닌 것은 그 무엇보다 결코 덜 실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410) 규정에 따라 단 것이 있고, 규정에 따라 쓴 것이 있고, 규정에 따라 따뜻한 것이 있고, 규정에 따라 찬 것이 있고, 규정에 따라 색깔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오로지 원자들과 허공이 있을 뿐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지각의 대상들을 믿고 또한 인정하기는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들이 아니라 다만 원자들과 허공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411)(로크 - 우리의 관념 밖에서 사물들 자체에 귀속되는 일차적 특성들인 연장, 불가입성, 형태, 수 / 2차적인 것 - 위의 일차적인 특성들이 우리의 감각 기관에 미치는 작용의 산물들로서 이들 감관내에서 일어나는 단순한 느낌들로 따르는데, 색, 소리, 맛, 냄새, 딱딱함, 유연함, 매끄러움, 거칠음 등과 같은 것들입니다. 감관 신경의 활동인 것은 이렇게 사물의 성질에서 제외됩니다.) 일차적 특성/ 2차적 특성 - 이 구분을 잘 생각해 볼 것.
412) 비교적 오래된 모든 체계 가운데 데모크리토스의 체계가 가장 일관성 있습니다. 모든 사물에 지엄한 필연성이 내재한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419) 유물론 고유의 곤경 - 객관적인 모든 것, 연장된 모든 것, 작용하는 모든 것, 즉 유물론이 가장 견고한 기초로 간주하는 모든 물질적인 것 -- 그것은 그러나 기껏해야 간접적으로 주어진 것, 기껏해야 상대적으로 현존하는 것일 뿐입니다. 이 물질적인 것은 뇌의 기계 장치를 통과하여 시간, 공간과 인과율이라는 형식들로 틀지어져 있으며 이 형식들 덕택에 공간 안에서 연장되고 시간 안에서 작용하는 것으로서 스스로를 제시하는 겁니다. 그러한 식으로 주어진 것에서 이제 유물론은 유일하게 직접적으로 주어진 것, 관념을 이끌어내고자 합니다. 그것은 엄청난 거짓 원인의 오류입니다. 즉 마지막 연결 고리가 이미 사슬의 첫 연결 고리가 걸렸던 출발점인 것으로 돌연 드러납니다. 그런 까닭에 유물론자를, 말을 탄 채 물에서 헤엄치면서 다리로는 말을 끌어올리고 자신은 앞쪽으로 드리워진 자신의 머리채를 잡고 끌어올리는 뮌히하우젠 백작에 비유했습니다. 그 황당무계함은 그가 객관적인 것에서 출발하다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객관적인 모든 것은 인식하는 주관에 의해 다양한 방식으로 한정되어 있고 따라서 주관을 제거하면 전적으로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에 반해 유물론은 상대적 진리로서의 귀중한 가설입니다. 최초의 착각이 발견된 후에도 그것은 자연과학에는 안도감을 주는 관념입니다. 그 관념의 모든 귀결은 비록 절대적인 것은 아니나 우리에게서는 진리성을 유지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세계이고, 우리는 그것을 산출하는 데 항상 종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16. 피타고라스 학파의 인물들
431) 코페르니쿠스 - 자신의 근본 관념. 키케로 Acad II와 플루타르코스의 "필롤라오스에 대하여"에서 이끌어 냄.
17. 소크라테스
439) 그는 최초의 삶의 철학자. 사유에 의해 지배되는 삶! 사유가 삶에 봉사합니다. 이와는 달리 소크라테스 이전의 모든 철학자에게서는 삶이 사유와 인식에 봉사했습니다.
449) 죽음의 공포를 몰아내는 자로서의 소크라테스는 우리가 만나게 되는 현자의 마지막 전형입니다. 지혜를 통해 본능에 대한 승리를 쟁취하는 자로서의 현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