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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영국여행이야기

영국 여행 이야기, 어쩌다 보니 문학 기행(7)대영박물관

by 길철현 2022. 10. 6.

패딩턴 역 앞

일단 패딩턴 역으로 향했다. 거기서 '킹스 크로스'(King's Cross) 역까지 간 다음 피카딜리 노선으로 갈아타고 '러셀 스퀘어'(Russel Square) 역으로 갈 예정이었다. 이 글을 쓰면서 알게 된 것인데 패딩턴 역은 4개의 지하철 노선이 교차할 뿐만 아니라, 일반 철도 역도 있어서 상당히 복잡한 곳이었다. 그 뿐 아니라 패딩턴 역은 따로 떨어진 두 개의 역이 존재했다(런던의 지하철 노선은 모두 11개인데, 이 밖에 다른 철도 노선들도 있다. 지금 글을 쓰면서도 이렇게 머리가 복잡한데 당시에 제대로 이해했을리가 만무했다). 이제 나도 길을 좀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역으로 들어가 물어보지도 않고 개찰구를 통과하려는데 직원이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다(내가 들어간 곳은 일반 철도 역인 모양이었다). 나는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에지웨어 로드'(Edgeware Road)를 대었다. 그는 나에게 디스트릭트 노선을 타라고 했던 듯하고, 나는 상대방이 듣기에 이상한 말을 했다. 

 

I don't want to go Edgeware Road. (에지웨어 로드(역으)로 가고 싶지 않아요.)

 

그럼에도, 그는 의아해하지 않고 친절하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Oh, you want to go to Hammersmith, then. (그럼, 해머스미스(역으)로 가고 싶은 거군요.) 

 

그가 무슨 근거로 디스트릭트 노선 중의 한 역인 해머스미스를 꼭 집어 말했는지는 알 수 없다. 에지웨어 로드 반대편 끝이 해머스미스 역이라서 그랬던가? 그리고는 '오른쪽으로 가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택시 정류장(사실은 택시라는 말만 들렸다)을 지나가라'라고 했다. 서클(Circle) 노선을 타고 다섯 역만 가면 됐는데, 이 노선 이름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았던 듯하다. 내가 있던 패딩턴 역에서는 디스트릭트 노선을 타고 에지웨어 로드로 가서 그 다음 서클 노선을 타고 가야했던 듯하다. 어쨌거나 크게 헤매지는 않고 러섹 스퀘어 역에 도착했던 듯하다(혼란스럽기만 한 이 부분을 굳이 상술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의문도 들지만 런던의 지하철 노선의 복잡함, 혼란스러움을 보여주고 싶었다).

 

두터운 파카를 입을 필요는 없을 듯해서, 체육복 윗도리를 걸치고 이번에 거금 삼천 오백 원을 주고 구입한 검정색 빵모자를 쓰고 길을 나섰는데, 피곤함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낯선 환경에 내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기 때문일까? 지하철을 기다리는 동안에 갑자기 내 모자에 새겨진 'classy SNOB'(세련된 속물)이라는 말이 걸렸다. 이 말이 혹 SOB(Son of Bitch, 개새끼)를 꼬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갑작스럽게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던 것이다. 내 안에 가득 차 있는 욕설, 혹은 세상이 나를 향해 욕설을 퍼붓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 열차 안에서는 맞은 편 좌석에  앉은 어떤 여자가 나를 노려보고 있는 것이 더욱 나를 불안하게 해서 급기야는 SNOB에 정말 그런 뜻이 있는 것이 아닌지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기까지 했다. 

 

런던 지하철에 대한 간단한 인상 - 런던은 지하철 역사가 워낙 오래되어서 그런지 계획적이지 못하다는 것이 우선적으로 드는 생각이었다. 언더그라운드라는 이름 그대로 땅속에다 여기저기 굴을 파놓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열차들의 크기도 노선에 따라 달랐는데, 어떤 것은 정말 작았다. 통로도 아주 좁고, 에스컬레이터에서는 두 줄 서기를 하지 않고 한 줄은 서고 한 줄은 걷는 방식이었다. 엘리베이터는 들어가는 곳과 나가는 곳이 다른 곳이 많았고(이건 우리나라에서도 간혹 볼 수 있는 것이지만), 계단을 이용할 수 없으니 엘리베이터를 타라고 되어 있는 곳도 있었다(킹스 크로스 역이었던 듯하다). 거기다 역이 다른 건물들과 구분이 되지 않고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있어서 한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러셀 스퀘어 역에 도착한 뒤 구글과 안내판의 도움을 받으며 부근에 있는 대영박물관으로 향했다. 어디가 어디인지 아는 곳이 없고, 방향 감각도 없으니 지도를 제대로 읽는다는 것이 무척이나 힘이 들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러셀 스퀘어를 가로 지르니 곧바로 박물관이 나왔다. 입장료를 따로 받지는 않았고, 어깨에 맨 가방을 검색하고 들어갔더니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입구에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부탁을 해 사진을 한 장 찍었다.

건물도 몇 개가 연달아 이어져 있는데다 그 하나하나의 규모가 엄청났다. 각 대륙과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너무 많으니까 볼 엄두가 나지 않아 그냥 주마간산 격으로 방과 방을 지나다니는 형국이었다. 로마, 그리스, 이집트, 이탈리아의 에스투르카? 지역. 하지만 아프리카 관에는 사람들이 거의 가지 않았다. 한 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칭호를 받을 정도로 세계 최강국이었고, 제국주의의 선봉에 선 나라로 정말 많은 물품들을 약탈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면서 기분도 좋지 않았다.  

 

이집트 상형문자 해석에 실마리를 제공한 로제타 스톤에 특히 사람들이 많았다. 워낙 유물이 많으니까 손대지 말라는 경고 표시에도 불구하고 어떤 흑인 여성은 관에 기대기도 했다. 방마다 구석 자리에는 직원들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정말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누군가의 말대로 그래도 한국관은 봐야겠다는 생각에 한국관(67)을 찾아 나섰는데, 방을 찾는 데에도 상당히 애를 먹었다. 겨우 찾아 들어갔더니 관람객도 별로 없고, 전시품도 도자기, 향로, 미술품,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설치품 등 몇 가지 되지 않았다. 다만 꽤 규모가 있는 고려시대 청동 불상이 하나 눈길을 끌었다.

식당과 카페에도 사람들로 넘쳐나고 기념품이라도 하나 살까 하고 둘러보았으나 마땅한 것이 없었다. 자동우산이 눈에 띄어 집어 들었더니 30파운드, 우리 돈으로 5만 원 돈이 되어서 제자리에 놓고는 서둘러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