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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영국여행이야기

영국 여행 이야기, 어쩌다 보니 문학 기행(9)버스 타기

by 길철현 2022. 10. 8.

- 셋째 날(20160124, 일)

 

시차 적응이 아직 안 되어서인지 초저녁에 잠이 들어 한 시가 좀 넘어서 깨고 말았다. 일단 컵라면을 한 사발하고, 이 호텔을 주소지로 해서 인터넷으로 도서 주문을 했다. 그런데, 한 권이 2월 3일이 되어야 발송을 하고 도착은 그보다 더 늦어질 것이라고 했다(그 때는 이미 영국에 없을 것이었다). 다행히 만 원이 조금 넘는 금액이라 포기를 하든지 해야 할 듯했다. 최대한 빨리 보내 달라는 메일을 보냈다. 

 

아침 식사를 하기 전에 동쪽 방향으로 가벼운 산책에 나섰다. 한 블록 정도 걸어가니까 약간 번화가가 나왔고 은행이며 식당(중동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보였다), 잡화점, 수퍼마켓들이 늘어서 있었다. 어딘가에는 카지노도 있어서 한 번 들어가 나의 운을 시험해 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남쪽으로 좀 더 내려가다가 오른쪽으로 도니 하이드 파크였다. 런던 길이 이제 가소롭다는 어처구니 없는 망상에 빠지기도 하면서 좀 더 동쪽으로 가다가 식사 시간이 되어서 발걸음을 재촉해 숙소로 돌아왔다. '마사지 샵'도 한 군데 보았는데 중동 사람들이 주로 찾는 곳인지 아랍 어가 적혀 있었다. 가격은 30파운드와 50파운드로 두 종류였는데 고물가를 생각할 때 그렇게 비싸지는 않은 편이었다.

A5 도로 상에 있는 Lloyds Bank
케밥을 파는 곳, 아라비아 어 등이 적힌 것으로 보아 중동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인 모양이었다

아침 식사 메뉴는 어제와 똑같았다. 두 여인은 여전히 표정이 어두운 듯했고, 나는 묵묵히 식사를 했다. 내가 전날 노라고 했기 때문인지 토스트를 먹겠느냐고 한 번 묻지도 않았다. 어제 먹었던 약간 회색 빛을 띤 죽 같은 것의 이름이 그릿츠(grits)가 아닐까 했는데, 그릿츠는 미국 남부에서 주로 먹는 것이고 영국에서는 별로 먹지 않는 음식이라 이건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게 되었다. 

 

런던에서는 5일 정도 묵을 예정으로 5일을 예약해 두었다. 이틀 밤을 보냈으니 앞으로 3일이 남았다. 지하철은 여러 번 탓으므로 이날은 버스를 한 번 타보기로 했다. 숙소 앞에서는 동쪽으로 가는 버스가 오지 않아서 패딩턴 역 앞으로 가서 무작정 처음 오는 버스를 탔다. 205번. 1파운드 50펜스. 영국의 명물인 이층버스를 탔으니 이층으로 올라가는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기대했던 것처럼 그렇게 높지도 않았고 전망도 별로 색다르지 않았다. 아주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있지는 않았으나 'London Bridge is falling down, falling down'이라는 동요의 가사가 머릿속에서 맴돌아서 일까 런던 브리지로 가보려는 생각은 있었다. 그런데 나는 사진에 자주 나오는 타워 브리지를 런던 브리지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고, 런던 브리지는 노래 가사처럼 여러 번 무너져 내려 현존하는 것은 1973년에 건설된 현대식 다리였다. 버스는 운 좋게도 동쪽으로 계속 나아갔고, 변두리로 나갈 수록 중동 사람들의 모습이 많이 보이고 건물들도 내가 있는 곳에 비해 상대적으로 낡은 느낌을 주었다.

버스에서

그렇게 한 30분을 달렸을까? 드디어 종점이었다. 종착지가 '보우 처치'(Bow Church)라고 되어 있었는데 바로 그 앞은 아니고 그 부근인 모양이었다. 길 건너편에 보이는 '보우 로드'(Bow Road) 역으로 가서 안내도를 보는데 지명에 셰익스피어의 출생지인 '스트래트포드'(Stratford)가 보이고 또 인근에는 '타워 햄릿츠'(Tower Hamlets)도 보여 순간적으로 이곳이 셰익스피어의 출생지인가 했다. 하지만 셰익스피어의 고향인 '스트레트포드-어폰-에이번'(Stratford-upon-Avon)이 이렇게 가까운 곳에 위치할 수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런던에서 서북쪽으로 꽤 거리가 있는 곳에 있었다. 그리고 타워 햄릿츠는 런던을 13개로 나눈 행정구역(우리나라의 구에 해당할 듯) 중의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