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티 사크 역에서 지하철을 탄 뒤 두 번 환승을 하고 채링 크로스 역으로 돌아왔다. 이틀 전에 들렀던 '국립 미술관' 바로 뒤에 '국립 초상화 미술관'(National Portrait Gallery)가 있다는 걸 알고 들러보기로 했던 것이다. 다시 트라팔가 광장을 지나 미술관으로 향했다. 비가 오는데도 사람들이 우산을 별로 안 쓰는 것이 다소 놀라웠다. 광장에는 요다가 지팡이만 짚은 채 공중에 떠있었다. 사진을 한 장 찍어 두는 것인데.
국립 초상화 미술관에서는 유명 인물들, 제임스 조이스, 블레이크, 워즈워스, 디킨스 등의 작가들이 내 시선을 끌었다. 그리고 자주 봐왔던 것이지만 직접 보니 흥미로웠던 그림은 브론테 자매들의 초상화와 에밀리의 단독 초상화였다. 샬롯 브론테의 동생이자 에밀리 브론테의 오빠인 브란웰 브론테가 그린 것으로 예술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그다지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브란웰은 이 그림들로 사람들에게 오래 기억될 터였다. 윈스턴 처칠의 초상화도 기억에 남고, 왕들의 초상화들도 방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엘리자베스 1세, 소녀같은 빅토리아 여왕, 찰스 1세와 2세, 헨리 7세와 8세. 다소 거만하고 당당해 보이는 귀족 남녀가 아침 산책 중인 초상화. 찰스 2세의 정부였던 Gwyn의 초상화는 젖가슴을 다 드러내고 있어서 충격적이었다. 나체화도 있었던 모양인데 기억은 나지 않는다. 정말 너무나도 많은 그림들이 있어서 주마간산 격으로 눈으로 대충 훑어보는 정도였다.
다시 국립 미술관에 들러 한 번 더 그림들을 보았다. 수많은 종교화와 유명한 터너의 그림. 내 관심은 고흐에게 가 있어서 다시 그곳을 들러 어제 보았던 그림들을 좀 시간을 들여 보았다. 다리가 좀 아파왔고, 각 방에는 직원들이 앉아서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곳에서 나와서 헌책방들이 많이 있는 Charing Cross Road로 향했다. 이곳을 쉽게 찾을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계속 직진을 했더니 책방들이 눈에 들어왔다. Any Amount of Books라는 서점에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헌책방에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니 혹 비를 피하러 들어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했다. 콘래드 단편집이 있었고, 중복되긴 했지만 가격이 3파운드 내외로 저렴해서 네 권을 구입했다(책을 처분한 돈으로 영국에 와서 다시 책을 사는 아이러니). 그 옆으로도 네 군데 정도 책방이 있었는데 구하는 책들은 보이지 않았다. 분류가 아주 잘 되어 있거나 하지는 않고, 큰 배치 지도만 붙여 놓은 정도였다. 마지막에 들어간 곳은 미술 서점이었는데, 영국 사람들은 그래도 헌책에 대한 애정이 우리보다 강한 듯했다. 주인 분이 손님에게 선명하게 인쇄된 좋은 책이라고 했다.
길거리 음식들도 가역이 만만치 않았고, 점심은 맥도날드에서 가볍게 하기로 했다. 주문을 하자 여점원은 '식사로요?'(As a meal)라고 물었다. 이 말이 정확히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는데 감자튀김이 같이 나온다는 말인 듯했다. 음료는 콜라를 주문했다. 주문하는 곳과 받는 곳이 따로 였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키오스크가 있던 것도 흥미로웠다. 케첩을 주지 않아서 그걸 달라고 요청을 했다. 빈 자리가 없어 좀 기다려야 했고, 식사를 마치고 난 뒤 화장실로 갔는데 남녀공용인지 안에서 여자가 나와서 깜짝 놀랐다.
다시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피카딜리 광장으로 가볼까 했는데, 극장들이 많이 보이는 거리를 지났다. Skoob에 다시 한 번 가볼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계속 걸어가다가 Foyles가 다시 마주치자 이제 런던을 떠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영 박물관을 목표점으로 삼고 길을 걷기 시작했다. 봐도 잘 되지 않아서 구글을 보지 않고 이정표와 방향 감각만으로 걸어갔는데 나중에 보니까 같은 곳이 나와 빙빙 맴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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