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여행 이야기, 어쩌다 보니 문학 기행(12)세인트 폴 성당/빅벤과 국회의사당/웨스트민스터 애비

글로브 극장에서 나와 다시 걷기 시작했다. 바로 눈 앞에 영국에 와서 처음으로 본 노점상이 있었는데, 땅콩과 아몬드 등을 작은 종이컵에 담아 팔았다. 이것도 2파운드나 했다. 인도교인 밀레니엄 브리지를 건너자 앞쪽에 돔형의 큰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적으로 내 머리는 오작동을 하여 미국의 국회의사당과 혼선을 일으키며 영국의 국회의사당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이 건물은 17세기에 설립된 유서 깊은 '성 바울 성당'(St. Paul's Cathedral)이었다. 거리에서는 불을 돌리는 묘기를 선보이는 사람도 있었고, 그 앞에선 남자 어린아이가 연신 감탄사를 날렸다. 3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계속해서 크게 울리고 여자애 한 명은 뭔가 소동이라도 일으켰는지 경찰에 손목을 잡혀 있었다.

밀레니엄 브리지 위에서

밀레니엄 브리지에서 타워 브리지 방향을 보며

 

거리의 공연자

St. Paul 성당. 규모가 엄청나다

거리를 좀 걷다가 거기에서 빅벤으로 유명한 국회의사당이 별로 멀지 않은 듯하여 그곳으로 가는 버스를 눈치껏 탔다. 국회의사당에도 관광객들로 넘쳐 났고, 나는 옆에 있는 분에게 부탁해서 빅벤을 배경으로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국회의사당과 빅벤

 

 

국회의사당 주위를 한 바퀴 돌고 난 다음에 근처에 웨스트민스터 애비(Westminster Abbey)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곳으로 향했다. 영국 왕의 대관식이 행해지는 곳일 뿐만 아니라 왕족을 비롯한 유명 인사들, 특히 작가들의 매장지이기도 해 꼭 한 번 찾아봐야 할 곳이었다. 그런데 분명 웨스트민스터 애비에 왔는데 생각보다 규모도 작았을 뿐 아니라 안내 책자의 사진과도 달랐다. 거기다 내부수리 중이었는지 출입금지였다. 

내가 찍은 사진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웨스트민스터 애비

조지5세 상

지금에 와서 보면 내가 찍은 사진은 웨스트민스터 애비를 옆에서 본 것이었는데, 옆에 있는 안내문을 보고나는 이곳이 St. Margaret's Church(이 교회는 옆에 있는 보다 작은 건물임)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내가 사진으로 본 것은 웨스트민스터 커시드럴(성당, Westminster Cathedral)이라고 또 엉뚱한 생각을 하고는 그곳을 향해 걸어갔다. 구글 안내를 따라 가다가 어떤 광장 근처에서 내 생각대로 걷다가 지나가 버려서 길을 좀 헤맸다. 어디에선가는 불이 나서 도로가 폐쇄되고 소방차와 소방관들, 그리고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는 사람들. 내 옆으로 말 탄 경관들이 지나가기도 했다. 

길을 걷다보니 Joseph Conrad House가 나와, 순간적으로 내 박사논문의 대상인 소설가 Joseph Conrad와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닌가 했으나,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고급 빌라에 해당하는 저택의 이름이었다.

화재 현장

가까스로 도착한 웨스트민스터 커시드럴은 독특하긴 했으나 웨스트민스터 애비가 아닌 것은 분명했다. 조사를 해보니 이 건물은 국교회(혹은 성공회) 건물이 아니라 카톨릭 성당으로, 영국의 카톨릭 성당 중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성당이었다.  

날도 저물어 가고 배도 출출하고 해서 빅토리아 스트리트에 있는 '잇수'(Itsu)라는 일식 체인 식당으로 들어가 늦은 점심을 먹었다. 모듬회와 김밥은 시간이 오래되어서인지 다행히도 반값 할인이었다. 마실 것이 없어서 얼결에 얼 그레이를 시키고 말았다. 그래도 국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살펴 보니 앞에 미소가 작은 봉지에 담겨 있어서 그것을 집어 들고 컵 같은 것은 어디 없느냐고 물었더니, 흑인 여직원이 그건 포장용('takeaway' 용, 미국식 용어인 'takeout'이 아니라 'takeaway'를 쓴다는 것도 이 때 알았던가?)이라고 했다. 미소국은 따로 주문을 해야 했다. 자리에 앉아서 회를 먹으며 미소국을 맛보았는데 완전 맹탕이라 이걸 어떻게 먹나 했는데, 거의 다 먹고 나서 보니까 저어서 미소를 풀어야 하는 것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기 위해 채링 크로스(Charing Cross) 역으로 가는 버스를 또 눈치껏 탔던 듯하다. 그런데 내리고 보니 그곳이 국회의사당으로 가는 길에 보았던 트라팔가 광장이 있는 곳이었고 넬슨 기념상도 높다랗게 서 있었다. 거기다 이 광장 뒤편에는 국립 미술관(The National Gallery)이 있었다. 다섯 시가 넘어 날은 이미 어두워 졌고 굉장히 피곤했지만 미술관이, 입장료도 없는 미술관이 눈 앞에 있는데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여섯 시에 폐관이라고 해서 재빨리 들어가 아무 방에나 무작정 들어갔는데 내가 좋아하는 고흐의 그림이 있는 방이었다. 고갱과 세잔 등도 같은 방에 있었다. 나는 풀밭, 생 레미 숲, 의자, 해바라기, 오베르의 집, 게, 농부 여인의 얼굴 등을 잠시 보고 좀 더 구경을 하고 싶었지만 너무나도 피곤해 숙소로 귀가했다(이 국립 미술관은 이틀 뒤에 다시 찾았다). 베이커루(Bakerloo) 노선을 타고 환승했던가?

St. Paul's Cathedral에서 국회의사당으로 가는 버스에서 찍었다.

패딩턴 역 부근에 있는 KFC로 가 치킨과 음료를 포장해 와서는 좀 먹은 다음 조금만 누웠다가 일어나려고 했는데 피곤한 나머지 그대로 다음 날 새벽까지 자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