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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책을 읽다

김현희 - 이제 여자가 되고 싶어요. 고려원(1991)

by 길철현 2022. 11. 9.

[감상] 

1987년 대선 직전에 있었던 칼기 사건은 3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은 많은 수수께끼를 안고 있다. 당국과 김현희 본인의 발표에 따르면 북한 수뇌부의 지령에 따른 폭파인데, 이 사건은 13대 대선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당시 일기를 찾아보니 이상하게도 이 사건에 대한 언급이 하나도 없다). 이 사건이 얼마나 얽히고설킨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는 이 사건을 15년 동안이나 연구해 온 박강성주의 발언이다.

 

이 사건으로 석사논문도 쓰고 박사논문도 쓰고, 또 책도 여러 권 썼지만, 나는 진실이 무엇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다만 여러 경로를 통해 밝혀왔듯, 1988년 1월 15일 발표된 수사결과와 이를 전후로 사건을 처리한 과정에 문제가 많았다는 점은 분명하다. ([만들어진 테러범, 김현희]. 126)

 

김현희는 사건이 있고 난 4년 뒤 자신의 행적과 심정을 밝히는 이 책을 내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는데(당연한 이야기지만 대필 작가의 도움을 받았다), 이 책에 나오는 여러 내용 또한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김현희의 발언을 뒤집을 결정적인 증거는 나오지 않고, 나 역시도 객관적인 증거는 없으나 정황상 김현희의 말이 사실이라는 쪽으로 기운다. 

 

그렇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분단 상황이 남북한 당국을 대치 상황으로 몰고 그 과정에서 국민들이 희생당하는 비극을 막을 방도를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다시 남북 관계를 어떻게 화해의 길로 이끌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난제로 이어진다. 

 

[정리] 

- 제 1부. 내 영혼의 눈물(20220411-13)

13) 재판이고 뭐고 할 것도 없이 어서 빠릴 죽여줬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그저 죽는 길만이 유족에게나 나에게나 편한 길이다 싶었다.

-) 막연히 내가 무고한 115명의 인명과 비행기를 폭파한 죄인이라고만 여겼었다. 그러던 것이 유족들의 울부짖음과 몸부림 앞에서 정말 내가 저지른 일이 얼마나 끔찍스러운 일이었는지 피부로 느끼기 시작했다. 온몸이 덜덜 떨리고 정신이 아찔해지는 듯하였다. 재판장이 뭐라고 물었지만 나는 미처 대답하지 못하다가 겨우 나의 이름을 말했다. 

22) 평양을 출발한 후 공작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나는 내가 한 일에 대해 아무런 의문이나 죄책감도 가져 본 적이 없었다. 이 시대가 조선 사람에게 맡겨 준 민족적 사명(조국통일)을 내가 해냈다고 생각하면 당장 영웅이 된 기분이었다. 

46) 앙골라에 무역부 수산 대표로 나가 계시는 아버지 -> 이런 직책이 없다고 해서 이 부분은 김현희가 만들어진 인물이라는 것의 한 증거로 제시되었다. 

58) 북한 - 종교는 가장 반동적이고 악질적인 미신 

91) 이렇게 붙잡힌 것이 원통하지만 조국을 영구히 분단시키는 너희 괴뢰놈들의 책동을 막는 것이 내 임무다.  

107) 무엇보다도 놀란 것은 나를 최대한 편하게 해주려는 그들의 배려였다. (김현희가 이해하지 못한 것은 대선에 자신이 이용되고 있었다는 것)

147) 흑룡강성에는 오상현은 있어도 오상시는 없는데 당신의 출생지가 오상시라고 하니 그런 것도 자세히 알아두지 않고 거짓말을 해요?

--) 수사관은 갑자기 나에게 하던 말을 멈추고 옆 수사관들에게 조선 말로 "얘가 거짓말만 하고 있어" 하고 수군거렸다. 나는 흥분해서 "내가 무슨 거짓말을 했어요?" 중국어로 소리치며 달려들었다. 나의 결정적인 실수였다. 계속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라 그가 하는 조선 말은 못 알아듣는 척해야 하는데 착각을 한 것이었다. 

172) 서울 첫 나들이 - 남조선의 우월성을 똑똑히 알 수 있었습니다. 

185)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국과 민족을 위해 아주 대단한 일을 해냈다고 스스로도 대견해 하는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탑이 하나하나 무너져내렸다. 이제는 내가 한 일이 무고한 인민을 희생시킨 단순한 살인 행위였다는 죄책감만이 남으려는 순간이었다. 

196) 두 개 조선 책동인 88서울올림픽을 저지하기 위해 남조선 비행기를 제끼라는 것이었습니다. 

274) 내 자신이 저지른 일이면서도 115명과 함께 공중분해되어 버린 비행기의 모습이 꺼림칙하게 가슴에 걸리는 마음과 나도 이제 당과 위대한 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의 뜻을 받들어 큰일을 해냈구나 하는 마음이 동시에 교차되었다. 

328) 나는 인간으로서 가장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죄인이라는 사실 

 

-제 2부. 꿈꾸는 허수아비(20220413~17) [북한에서의 생활 회상]

13) 사면을 받아 다시 살아난 것이 기쁘기도 하고, 이렇게까지 목숨을 구걸하듯 살아난 것을 기뻐하는 나 자신이 비참하기도 하고, 살아 있으면서도 부모형제를 못 만날 일이 서럽기도 하고, 평생을 죄인으로 살아갈 일이 암담하기도 하고, 그동안의 그 심적 고통이 꿈 같기도 하였다. 

15) 1990년 4월 12일

174) 중앙당에 소환

178) 북한에서는 중앙당이 김일성, 김정일을 가장 가까이 모시고 그들의 신임을 가장 받는 당이기에 친척 중 한 사람이 중앙당에 있더라도 그 일가의 빽과 권세는 대단해진다. 

312) 사면 - 어느 분이 축하 전화를 걸어 주면서 "인간의 사악함이 너를 이용했고 하나님의 사랑이 너를 살렸다"고 하던 말을 생각하며 푸른 하늘을 우러러 보며,

'아나님, 제가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듬뿍 받아 다시 새 삶을 살게 된 것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시면서 이 세상 모든 것을 아름답게 만드셨다는 걸 오늘에야 깨달았습니다. 오늘 아침은 정말 천지가 다 아름답습니다.'라고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