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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책을 읽다

정지아 - 아버지의 해방일지. 창비(2022)

by 길철현 2022. 11. 7.

- 감상

(밀린 여행기를 쓰느라 책 읽을 여유가 없었는데, 친구가 책을 사준다고 해서 얼마 전에 출판사를 운영하는 과 후배가 재미있게 읽었다고 한 이 책을 포함해서 소설책을 세 권 집어들었다.)

 

자전적인 소재에 허구를 가미한 이 소설은 해방과 625를 전후한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 21세기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 지를 다소 가벼운 어조로 풀어나가고 있다. 아버지의 장례식이라는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 숱한 과거가 소환되고 그리하여 얽히고설킨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념 때문에 서로를 죽여야 했던 상황이 지나간 후 그 지역민들이 어떻게 살았는 지를 조망해 보고 있는 것이다. 

 

625라는 동족 상잔의 비극을 거치면서 권위주의 정부는 공산주의를 가장 경계해야 할 이념으로, 공산주의자(흔히 빨갱이로 통칭되는)는 물론이거니와 그 일가친척들에게까지 전근대적인 연좌제를 적용하여 사회 활동을 철저히 봉쇄해왔다. 8,90년대 이문열은 그러한 상황에 처한 작가의 모습을 자신의 작품을 통해 잘 드러내기도 했다. 

 

근래에 들어 한국소설을 별로 읽지 않아서 정지아는 낯선 작가였는데, 그녀 또한 공산주의자(그녀의 경우에는 빨치산)의 딸로 살아가는 것의 힘겨움을 첫 작품인 [빨치산의 딸]에서부터 이야기해 온 듯하다. 이 작품은 주제의 심각성이 문체의 유머스러움으로 인해서 묘한 긴장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사회주의자라고 해도 한 인간이고, 아버지이며, 허당끼도 많은 노인이라는 것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고 있다. 

 

흔히 하는 말로 힘을 빼고 썼다고 할 수 있을 것인데 아버지와 자신의 삶을, 또 인간으로서 한 평생을 헤쳐나간다는 것의 신산함과 그 속에 점점이 박혀 있는 웃음을 통찰력 있게 보여주고 있다. 

 

 

[정리]

50) 항꾼 서로 같이   (한꺼번에?)

66) 나는 아버지가 정의를 위해 목숨을 걸었던 위대한 혁명가

67) 아버지 - 노동자와 농민이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싸웠지만 정작 자신은 노동과 친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버지에게 노동은 혁명보다 고통스러웠다. 

96) 나 - 정확하고 분명하고 야무지다 

124) 아버지는 옳아서 선택한 사상이었지만 그 사상이 작은아버지에게는 철처지한이었다. 

132) 구십년대 들어서면서 부모님 인터뷰가 몇번 언론을 탔고, 기자가 아니더라도 찾아오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137) 아버지 - 민족이고 사상이고, 인심만 안 잃으면 난세에도 묵심은 부지하는 것이여. 

163) 구례라는 곳은 어쩌면 저런 기이하고 오랜 인연들이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엮인 작은 감옥일지도 모른다.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의 첫 아내 동생을 만나는 장면)

224) 빨치산의 딸이라는 말에는 '빨치산'이 부모라는 전제가 존재한다. 그 부모에게도 마땅히, 자식이 부모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듯 자식에 대한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해보지도 못했을 만큼 빨치산의 딸이라는 굴레가 무거웠다고, 나는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다. 

252) 아버지는 백운산에 가장 오래 있긴 했지만 이산 저산 떠돌며 48년 겨울부터 52년 봄까지 빨치산으로 살았다. 아버지의 평생을 지배했지만 아버지가 빨치산이었던 건 고작 사년뿐이었다. 

 

- 작가의 말 

269) 사램이 오죽하면 글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