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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책을 읽다

김훈 - 하얼빈. 문학동네(2022)

by 길철현 2022. 11. 14.

[감상]

인간으로 한 평생을 산다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아니 한 개인은 이 삶을 어떻게 살아나가야 하는가? 

 

김훈은 다시 한 번 역사에 도전하여 안중근이라는 인물을 오늘에 되살려 내었다. 안중근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로는 이문열의 [불멸]이 12년 전에 출간 되었는데, 두 소설가가 역사 속의 한 인물을 어떻게 그려내고 있는지를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김훈의 문체에 흔히 비장미라는 수식어가 붙는 듯한데, 어쨌거나 역사 소설을 쓸 때 그의 필력이 더욱 힘을 받는 듯하다. 물론 중*단편에서는 현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도 좋은 작품이 있다. 이상 문학상을 수상한 '화장'이라는 작품은 한 남자의 미묘한 심리를 잘 살려낸 수작이었다. 대신에 [개], [내 젊은 날의 숲], [공터에서] 등 현대를 배경으로 한 장면은 그의 [칼의 노래]나 [남한산성], [흑산] 등의 작품이 보여주었던 공감을 불러오지는 못했다. 

 

70대에 이른 작가가 서른 하나의 나이로 당시 식민지로 완전히 전락하기 일보 직전의 우리나라의 주적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여 살해한 이 역사적 사건은 우리 민족으로 보아서는 자신의 목숨을 초개같이 버린 영웅적인 행동이었다. 하지만 김훈은 안중근의 행동에 감상을 일체 배제하고 그 행위가 필연적이고 당위적인 것임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그와 동시에 그는 이토 히로부미의 심리도 미묘한 부분까지 포착했다고 보기는 어려워도 객관적으로 묘사하려 애를 썼다. 거사 이후 대한 제국의 황실이나 우리나라 국민들의 반응 또한 가감 없이 담고 있다.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안중근(안응칠)이 세례를 받은 천주교인 이었다는 점(세례명 도마)이며, 그의 담임 신부였던 빌렘이나 당시 조선 천주교의 총책임자였던 뮈텔 주교의 생각 등도 압축해서 제시하고 있다. 

 

다시 국가란 무엇이고, 국민으로 산다는 것, 더 나아가 인간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어떻게 해야 부끄럽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목숨을 보존하며 살아갈 수 있는지, 무릎을 꿇으면서도 목숨을 부지해 나가야 하는 것인지, 여러 가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정리]

7) 메이지(명치明治)

9) 순종(이척)은 황위에 오른 뒤 국내 정치에 관하여 통감의 지도를 받기로 협약했다. 내각총리대신 이완용과 통감 이토 히로부미가 협약에 도장을 찍었다.

17) 도장을 찍어서 한 나라의 통치권을 스스로 넘긴다는 것은 보도듣도 못한 일이었으나, 조선의 대신들은 국권을 포기하는 문서에 직함을 쓰고 도장을 찍었다. 

21) 미개한 군중을 제압하려면 경찰보다는 군대를 써야 하고 일시에 맷돌처럼 갈아버리는 방법이 좋다고 하세가와(사령관)는 늘 이토에게 말했다. 

29) 조선인들은 우중충했고 기진해 있었다. 빌렘은 걸으면서 이 가엾은 백성들의 어두운 영혼에 빛을 밝혀주시기를 날마나 하느님께 기도했다. 

33) 안중근은 열여섯의 나이에 고을 사내들을 이끌고 나서서 마을로 접근하는 동학군을 격퇴했다. 

71) 해산된 군인들이 의병 부대에 가세했다. 의병들은 전국 산골, 도회지, 섬에서 싸우다 죽었고, 져서 자살했고, 잡혀가서 죽임을 당했다. 

88) 이토를 어떻게 해서든지 눌러야 한다는 생각이 언제부터 마음에 자리잡은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확실하지 않았으나 분명히 자리잡고 있었다. 그것은 어찌할 수 없는 골병처럼 몸속에서 자라나고 있었다. 멀리서 다가와서 넓게 퍼진 골병처럼 그것은 몸속에 자리잡고 있었으나 집어서 드러내 보일 수는 없었다. 

101) 의군 참모중장

166) 총의 반동을 손아귀로 제어하면서 다시 쏙, 또 쏠 때, 안중근은 이토의 몸에 확실히 박히는 실탄의 추진력을 느꼈다. 

177) 미개한 사회의 원주민들이 문명개화로 이끄는 선진의 노력을 억압으로 느끼고 거기에 저항하는 사례들을 뮈텔은 세계의 후진 지역에 파송된 동료 성직자들의 보고를 통해서 알고 있었다. 

178) 한국 황실은 불령한 신민 한 명이 잘못 태어나서 저지른 죄업을 일본 황실에 거듭 사죄했다. 뮈텔은 이 황급한 사죄에서 사건의 배후로 의심받지 않으려는 한국 황실의 두려움을 읽었다. 

184) 이토가 죽은 뒤에 안중근이 천주교인인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뮈텔은 안우근은 이미 천주교인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개인들의 영성이 꽃처럼 피어나면 그 꽃들이 모여서 문명을 이루고 하느님의 나라가 그 위에 세워지는 평화의 구도를 뮈텔은 아직도 이 황잡한 세상에 펼 수가 없었다. 적개심에 가득한 자에게 평화를 말할 수는 없었다. 

205) 지방 군수와 서생들 중에서 힘있는 자들이 사죄단, 위문단을 구성해서 일본으로 가면서 그 여행 비용을 주민들에게 걷었다. 뜻있는 자들이 모여서 이토의 죽음을 사죄하러 일본에 가려고 13도 인민 도일 대표단을 결성했다. 

도쿄의 한국 황태자 이은은 태사인 이토의 죽음을 애도해서 삼 개월 복을 입고 식음을 간소히 했다. 

221) 그대가 믿는 천주교에서도 사람을 죽이는 것은 죄악이 아닌가?

그렇다. 그러나 남의 나라를 탈취하고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자를 수수방관하는 것은 더 큰 죄악이다. 나는 그 죄악을 제거했다. 

236) 무릇 세상에는 작은 벌레라도 자신의 생명과 재산의 안전을 도모하지 않는 것은 없다. 인간 된자는 이것을 위해서 진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244) 안중근은 신심이 깊었으나 그의 심성과 언동은 신앙에 의해 길들여지지 않았고 교회의 가르침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하느님은 교회를 통해서 섭리하시고, 교회의 울타리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교회의 가르침을 빌렘은 안중근에게 말해줄 수가 없었다. 말을 한다 해도 심어줄 수는 없을 것 같아서 빌렘도 말을 머뭇거렸다. 안중근의 신심이 더욱 무르익어서 스스로 알게 될 날이 있기를 빌렘은 그날 기도했었다. 

251) 황사영은 국가를 제거하려다가 죽임을 당했고 안중근은 국가를 회복하려고 남을 죽이고 저도 죽게 되었는데, 뮈텔은 이 젊은 이들의 운명을 가로막고 있는 '국가'를 가엾이 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