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무라카미 하루키의 대표작인 이 작품을 이제야 읽었다. 일본 소설을 즐겨 읽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작품이 지나치게 대중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작가가 '반딧불이'라는 단편 소설의 내용을 확장한 것이다. 나는 두 작품의 내용이 같은 것을 알고서 다소 혼란스럽기도 했다.)
1987년에 나온 이 작품은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를 시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주인공을 비롯하여 주요 등장인물들은 막 20대가 되었거나 20대 초반이다(작품 초반에 잠깐 30대 후반의 주인공이 등장하기는 한다). 이 시기의 일본이 어떠했는가에 대해서는 피상적인 지식 밖에 없지만, 이 작품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듯 일본이 고도의 경제 성장을 이루어 나가는 가운데 성에 대해서도 상당히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던 때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전체적으로 이 작품은 연애소설이자 전형적인 성장소설이다. 정신분석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주인공 와타나베가 오이디푸스적 갈등을 이겨나가는 과정을 형상화한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생인 와타나베가 대학 생활이나 사회 현실에 대해 뿌리 깊은 허무감을 느끼며, 나오코와 미도리라는 두 여자와의 관계 가운데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해 나가는 것을 보여준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체는 감각적이면서도 신선하게 그리고 어렵지 않게 읽어나갈 수 있어서 많은 독자들의 호응을 얻는 듯하다. 그러나 문학사상사에서 이 책을 번역할 때 그 제목을 [상실의 시대]라고 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에는 여러 건의 자살이 나온다. 나오코의 자살 뒤 와타나베의 행적은 죽음에 다가가는 것이자 동시에 거기에서 빠져나오려는 격렬한 몸짓이다. 그것은 인간이 상징계로 진입하는 과정에 수반되는 고통과 상실감의 비유이기도 하다.
[정리] (20220420-0513) 60년대
12) 나오코
21) 와타나베
23) 불현듯, 혹시 내가 가장 중요한 기억의 한 부분을 잊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 몸속 어딘가에 기억의 변경이라 할 만한 어두운 장소가 있어 소중한 기억이 모두 거기에 쌓여 부드러운 진흙으로 바뀌어 버린 게 아닐까 하는.
24) 지나치게 자세한 지도가 자세함이 지나치다는 그 이유 때문에 때로 아무 역할도 못하는 것과도 같다. 그러나 지금은 안다. 결국 글이라는 불완전한 그릇에 담을 수 있는 것은 불완전한 기억이나 불완전한 생각뿐이다.
48) 기즈키 - 나오코 남자 친구. 자살. 와타나베 친구
53) 그(기즈키)는 그날 밤, 차고에서 죽었다. N360의 배기 파이프에 고무호스를 연결하고 창틈을 테이프로 바른 다음 시동을 건 것이다.
62) 그녀가 갈구하는 것은 내 팔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팔이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나의 온기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온기이다. 내가 나라는 이유로 뭔지 모를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64) 클로델 (프랑스 작가)
65) 레이먼드 챈들러
67)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이나 읽을 정도면 나하고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가사와)
76) 하쓰미
93) 내 몸은 심한 굶주림과 목마름에 여자의 몸을 찾아 헤맸다. 나는 여자들과 자면서도 늘 나오코 생각을 했다. 어둠 속에 하얗게 떠오르는 나오코의 벗은 몸과 내뿜는 숨결, 빗소리를 생각했다. 그런 것들을 생각할수록 내 몸은 더욱 굶주림과 목마름에 떨었다. 나는 혼자서 옥상으로 올라가 위스키를 마시며 생각했다. 나는 대체 어디로 가려는 거냐고.
103) 9월 두 번째 주에 나는 대학 교육이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고 나는 대학 4녕을 지겨움을 견뎌 내는 훈련 기간으로 삼기로 작정했다.
122) 이들(운동권 학생들)의 진정한 적은 국가 권력이 아니라 상상력의 결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58) 미도리 - 아무 느낌이 없는 거야. 슬프지도 않고 쓸쓸하지도 않고 거의 보고 싶지도 않아. 때로 꿈에 나타날 뿐이야. (엄마의 죽음에 대해) (아버지의 뇌종양)358
196) 레이코 - 나오코와 같은 방에 있는 여자
289) 나오코 언니의 죽음
387) 미도리 아버지의 죽음
415) 다른 남자와 결혼하고 2년 뒤 면도날로 손목을 그음 (히쓰미의 죽음)
524) 나오코가 죽은 다음에도 레이코 씨는 나에게 편지를 몇 차례 하면서, 그 일은 내 탓도 아니고 다른 누구의 탓도 아미녀, 하늘에서 내리는 비처럼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556) 생각해 보면 우리는 처음부터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결합되었거든요. (나오코)
- [상실의 시대] 한국의 독자들에게 (문학사상사. 유유정 옮김)
(15)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엽에 이르는 나날은(즉 나의 10대 끝에서 20대 초기에 걸친 시기가 되는 셈이지만), 우리들에게 있어 이른바 [배멀미의 시대]였습니다.
(16) 내가 여기서 그려내고 싶었던 것은,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입니다. 그것이 이 소설을 간명한 테마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와 동시에 하나의 시대를 감싸고 있었던 공기라는 것을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사람을 진실로 사랑한다는 것은 자아의 무게에 맞서는 것인 동시에 외적 사회의 무게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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