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을 읽고/책을 읽다

알베르 카뮈 - 페스트. 김화영 옮김. 책세상(1947)(2005)

by 길철현 2022. 11. 23.

[감상]

카뮈의 이 작품은 정신적으로 굉장히 힘들었던 2001년도 초에 첫 번째로 읽었고, 그 뒤에 한 번 더 읽었는데 감상을 적진 않았다. 이 작품은 2019년 말부터 시작된 코로나로 인해서 새삼 주목을 받게 되었는데, 그것은 팬데믹인 코로나와는 달리 한 도시에서 발생한 페스트를 다룬 작품이긴 하지만 전염병이 유행하는 시기에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또 인간이 어떻게 대처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다루었기 때문이었다. 페스트를 다룬 또 다른 작품으로는 다니엘 디포의 [전염병 연대기]가 있는데 기회가 닿는다면 이 작품도 한 번 읽어보아야 할 것이다.

 

카뮈는 다소 부조리한 소설 [이방인]과 철학적인 에세이인 [시지프의 신화]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 작품은 우리 삶의 부조리성을 다루고 있는 앞의 두 작품과는 다른 방향에서 페스트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정면으로 대면하고 있다. 이 작품이 발표된 것이 1947년이므로 당시 인류는 두 차례에 걸친 세계 대전으로 인간의 이성이나 미래에 대해서 희망적인 비전을 가지기 힘든 상황이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페스트로 도시에 감금된 채 죽음의 공포 속에 떨어야 하는 사람들이나,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 속에서 죽음의 공포와 맞서야 했던 사람들이나 극한적 상황이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다양하게 반응하는데, 작가인 카뮈의 시각에 가장 근접해 있는 인물은 서술자로 밝혀지는 의사 리유일 것이다. 그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중요한 것은 저마다 자기가 맡은 직책을 충실히 수행해나가는 일'(66)이라고 말하며, 의사로서의 자신의 책무를 꿋꿋이 처리해 나간다. 그와 비슷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에 사람들에게 총질을 하는 코타르 같은 인물도 있으며, 또 질병을 인간의 도덕 혹은 종교적인 심판과 연결시키는 파늘루 신부 같은 이들도 있다(읽은 지가 오래 되어서 세부적인 내용이나 느낌을 되살리기가 쉽지는 않다). 

 

인간은 전능성을 생각할 수는 있지만 전능한 존재는 아니기 때문에 우리의 삶은 전능성에 비출 때는 좌절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아니 인간이 현존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특수한 조건들이 갖춰져 있기 때문이고 그나마도 언제 깨어질 지 모르는 불안정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죽음은 바로 문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 카뮈는 이 소설을 통해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자살을 꿈꾸지 않겠다고 외친 그 또한 아이러니컬하게도  교통사고로 마흔여섯의 나이로 이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

그러한 극도의 고독 속에서 결국 아무도 이웃의 도움을 바랄 수는 없었고 제각기 혼자서 저마다의 근심에 잠겨 있었다. 만약 우리들 중의 누가 우연히 자기 내심을 털어놓거나 모종의 감정을 말해도 그 사람이 받을 수 있는 대답은 어떤 종류이건 간에 대개는 마음을 아프게 하는 대답이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상대방과 자기가 서로 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었다. (110)

 

카뮈는 이런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도 인간 상호간의 소통이나 유대가 쉽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정리]

- 옮긴이의 말 

6) 이휘영. 삼중당 문고

 

11) 한 가지의 감옥살이를 다른 한 가지의 감옥살이에 의하여 대신 표현해보는 것은, 어느 것이건 실제로 존재하는 그 무엇을 존재하지 않은 그 무엇에 의하여 표현해본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합당한 일이다.  - 다니엘 디포

(It is as reasonable to represent one kind of imprisonment by another as it is to represent anything that really exists by that which exists not.) Robinson Crusoe

 

제1부

15) 알제리 오랑

16) 어떤 한 도시를 아는 편리한 방법은 거기서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사랑하며 어떻게 죽는가를 알아보는 것이다. 

17) 다른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오랑에서도 시간이 없고 깊이 생각할 여유가 없어서 사람들은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 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21) 베르나르 리유 - 의사

26) 레몽 랑베르 - 기자. 아랍인들의 생활 조건에 대하여 취재

30) 죽은 쥐를 수백 마리나 쓸어냈다. 

어쨌든 우리 시의 시민들이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대충 그 무렵부터였다. 

41) 수위(미셸)의 죽음.

공포가, 그리고 공포와 함께 반성이 시작된 것은 바로 그때부터였다. 

58) 카스텔과 리유. 페스트임을 확정. 

60) 사실 재앙이란 모두가 다 같이 겪는 것이지만 그것이 막상 우리의 머리 위에 떨어지면 여간해서 믿기 어려운 것이 된다. 이 세상에는 전쟁만큼이나 많은 페스트가 있어왔다. 그러면서도 페스트나 전쟁이나 마찬가지로 그것이 생겼을 때 사람들은 언제나 속수무책이었다. 

61) 미래라든가 장소 이동이라든가 토론 같은 것을 금지시켜버리는 페스트를 어떻게 그들이 생각인들 할 수 있었겠는가? 그들은(오랑 시민들)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믿고 있었지만 재앙이 존재하는 한 그 누구도 결코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이다. 

66) 중요한 것은 저마다 자기가 맡은 직책을 충실히 수행해나가는 일이었다. 

67) 조제프 그랑 - 시청 직원

80) 잠시 후 튀김기름 냄새와 지린내가 풍기는 변두리 동네에서 사타구니가 피투성이인 채로 어떤 여인이 나 죽는다고 소리치면서 그(리유)를 쳐다보았다. 

81) 첫 번째 벽보 - 아직까지는 전염성이라고 말할 수 없는 악성의 열병이 오랑 시에 몇 건 발생하였다. 예방적인 조치

85) 어떤 상사의 젊은 사무원이 바닷가에서 아랍인을 한 사람 죽인 사건. (이방인의 내용 연상)

87) 하루 종일, 의사는 페스트 생각을 할 때마다 매번 일어나는 가벼운 현기증이 점점 더 심해지는 것을 느꼈다. 

96) 페스트 사태를 선언하고 도시를 폐쇄하라

 

제2부

99) 독 안에 든 쥐

106) 그들은 그 수렁과 절정의 중간 거리에 좌초되어, 산다기보다는 차라리 둥둥 떠돌면서, 갈 바 없는 그날 그날과 메마른 추억 속에 버림받은 채, 고통의 대지 속에 뿌리박기를 수락하지 않고서는 힘을 얻을 수 없는, 방황하는 망령이었다. 

110) 그러한 극도의 고독 속에서 결국 아무도 이웃의 도움을 바랄 수는 없었고 제각기 혼자서 저마다의 근심에 잠겨 있었다. 만약 우리들 중의 누가 우연히 자기 내심을 털어놓거나 모종의 감정을 말해도 그 사람이 받을 수 있는 대답은 어떤 종류이건 간에 대개는 마음을 아프게 하는 대답이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상대방과 자기가 서로 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었다. 

134) 파늘루 신부 - 오늘 페스트가 여러분에게 관여하게 된 것은 반성할 때가 왔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사람들은 조금도 그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악한 사람들이 떠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140) 파늘루 신부로서는 만인에게 베풀어진 신의 구원과 기독교적 희망을 오늘만큼 느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169) 타루 - 그들이 초기에 이번 질병도 딴 질병이나 다름없는 흔한 것이리라고 생각했을 때에는, 종교도 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들은 향락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쳤던 것이다. 낮에 사람들 얼굴에 그려져 있었던 그 모든 고뇌가 뜨겁고 먼지투성이인 황혼녘이 되면 일종의 흉포한 흥분이나 모든 시민을 열에 들뜨게 하는 서투른 자유로 낙착되고 만다. 

175) 리유 - (신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나는 어둠 속에 있고, 거기서 뚜렷이 보려고 애쓴다는 뜻입니다. 그러는 것이 유별나다고 생각하지 않게 된 지가 벌써 오래 됩니다. 

176) 리유 자신도 이미 창조되어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거부하며 투쟁함으로써 진리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77) 죽기를 거부하는 사람이 있는 것을 아시나요? 어떤 여자가 죽는 순간에 '안 돼!'하고 외치는 것을 들은 일이 있나요? 나는 있어요. 그때 나는 절대로 그런 것에 익숙해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182) 세계의 악은 거의가 무지에서 오는 것이며, 또 선의도 총명한 지혜 없이는 악의와 마찬가지로 많은 피해를 입히는 수가 있는 법이다. 인간은 악하기보다는 차라리 선량한 존재이지만 사실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들은 다소간 무지한 법이고 그것은 곧 미덕 또는 악덕이라고 불리는 것으로서, 가장 절망적인 악덕은 자기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믿고서, 그러니까 자기는 사람들을 죽일 권리가 있다고 인정하는 따위의 무지의 악덕인 것이다. 살인자의 넋은 맹목적인 것이며, 가능한 한의 총명이 없고서는 참된 선도 아름다운 사랑도 없는 법이다. 

206) 외부의 지원

 

제3부

229) 가장 뚜렷했던 것은 생이별과 귀양살이의 감정이었다. 거기에는 공포와 반항이 내포되어 있었다. 

231) '항상 나보다 더 부자유한 사람이 있다'라는 것은 그 무렵에 가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을 요약하는 표현이었다. 

232) 페스트는 특별히 군인이라든가 수도승이라든가 죄수들처럼 단체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악착같이 공격하는 것 같았다. 

233) 외관적으로는 포위된 상태 속에서의 연대 책임을 시민들에게 강요하고 있던 질병은 동시에 전통적인 결합 형태를 파괴하고 개인개인을 저마다의 고독 속으로 돌려보내고 있었다. 그것은 혼란을 초래했다. 

234) 절도범 두 명이 총살되었다. 

244) 무시무시한 불행은 오래 끌기 때문에 오히려 단조로운 것이다. 그런 나날을 겪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는, 페스트를 겪는 그 무시무시한 나날들이 끝없이 타오르는 잔혹하고 커다란 불길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발바닥 밑에 놓이는 모든 것을 짓이겨버리는 끝날 줄 모르는 답보 상태 같아 보이는 것이었다. 

247) 페스트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사랑의 능력을, 심지어 우정을 나눌 힘조차도 빼앗아가 버리고 말았다는 사실도 말해야겠다. 왜냐하면 연애를 하려면 어느 정도의 미래가 요구되는 법인데, 우리에게는 이미 현재의 순간 이외에는 남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제4부 

300) 그(파늘누 신부)는 페스트로 인해서 생기는 상황은 논리적으로 납득하려 해서는 안 되고 거기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을 배우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리유가 막연하게나마 이해한 것은, 페스트에 대해 신부로서는 아무것도 설명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336) 역사는 내 생각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주었습니다. 오늘날에 있어서는 많이 죽이는 자가 승리하는 모양이니 말이에요. 그들은 모두가 살인에 미친 듯이 열중해 있습니다. 달리 어쩔 도리가 없기 때문이지요. (타루)

338) 사람은 제각기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그 누구도 그 피해를 입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타루)

339) 나는 인간의 모든 불행은 그들이 정확한 언어를 쓰지 않는 데서 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정도를 걸어가기 위하여 정확하게 말하고 행동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타루)

345) 사람이란 기다림에 지치면 아예 기다리지 않게 되는 법이다. 그래서 우리들의 도시 전체는 미래의 희망 없이 살고 있었다. 

351) 리유는 그것을 뒤적거려보았는데, 그 종이뭉치에는 전부 동일한 문장을 수없이 다시 베끼고 고치고, 가필 또는 삭제한 것들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354) 통계는 병세의 후퇴를 표시하고 있었다. 

 

제5부 

384) 마침내는 자신의 무력함을 한탄하는 눈물이 앞을 가려 리유는 타루가 갑자기 벽 쪽으로 돌아누워 마치 몸 한구석에서 가장 근원적인 어떤 줄 하나가 툭 끊어지기나 한 것처럼 힘없는 신음소리를 내며 숨을 거두는 것조차 보지 못했다. 

388) 리유 아내의 죽음

407) 페스트가 대체 무엇입니까? 그게 바로 인생이에요. 그뿐이죠. (노인 환자)

409) 그래도 그는 이 연대기가 결정적인 승리의 기록일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기록은 다만 공포와 그 공포가 가지고 있는 악착같은 무기에 대항하여 수행해나가야 했던 것, 그리고 성자가 될 수도 없고 재앙을 용납할 수도 없기에 그 대신 의사가 되겠다고 노력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개인적인 고통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수행해나가야 할 것에 대한 증언일 뿐이다. (10개월)

 

- 해설 : 부정을 통한 긍정 -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445) 코타르는 과연 그 혼자만으로도 충분히, 독일군에게 점령된 프랑스 땅에서 적과 협력한 무역자상을 뚜렷이 암시해주고 있다. 

446) 보이 스카우트적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