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대한 관심은 오래되었다. 아주 오래 전(아마도 20년 전쯤)에 북한에서 나온 한자로 된 원문과 번역본이 한 세트로 된 영인본을 구입해 두었던 것이다. 하지만 내 관심은 거기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우연한 기회에 고미숙 등이 엮고 옮긴 이 책을 구입하게 되었고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왜 박지원을 조선 후기 최고의 문장가라고 하는지를 번역으로도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었다. 박지원이 열하까지 다녀온 18세기 후반은 중국이나 우리나라나 평온했던 시기였으며, 당시 청에 대한 이중적인 감정, 우리나라를 짓밟은 오랑캐라는 감정과 우리가 보고 배워야 할 선진 대국이라는 이 이중적인 감정 가운데에서도 북학파였던 박지원은 후자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당시에 중국으로의 여행기는 100여종에 이를 정도로 대유행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유독 박지원의 이 글이 돋보이는 것은 단순한 여행기를 넘어서는 생생한 인물들의 묘사와 그의 유머 감각과 또 문장력 덕택이다. 거기다 다른 사람은 갈 기회가 별로 없었던 황제의 여름 별궁인 열하까지 갔다 온 것도 이 작품을 돋보이게 하는 또 다른 요소이다.
박지원의 예찬자인 고미숙은 이 작품을 '세계 최고의 여행기'라고 하고 있는데, 굳이 그런 찬사가 아니더라도 흥미진진한 사건들과(말이 통하지 않아 필담으로 의사소통을 했음에도), 세심한 관찰, 그리고 무엇보다 박지원의 기질 저변에 흐르는 유머 감각이 이 긴 여행기를 손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정리]
(상)(20220105-09)
개정신판 머리말 - 고미숙
열하일기 완역본 : 돌베개 출판사
보리출판사(북한판 완역본)
1780년 5월 - 10월
- 도강록 (0624-0709)
44) 형가와 진무양. (장이모[장이머우] - 영웅: 천하의 시작)
77) '이용'이 있는 뒤에야 후생이 될 것이요, 후생이 된 뒤에야 정덕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용 - 기술이나 제도. 후생 - 구체적인 의식주)
138) 인생이란 본시 어디에도 의탁할 곳 없이 다만 하늘을 이고 땅을 밟은 채 떠도는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을.
- 성경잡지(0710-14)
217) 홍대용이 중국의 대대로 전수되는 기술을 우리로선 당하지 못한다고 한 말이 바로 이걸 두고 한 것이리라. (다리의 정교함. 의산문답)
- 일신수필(0715 - 23)
258) 성경의 점포들은 모두 창문에는 무늬를 새겼고 문에는 수를 놓았다. 길을 사이에 두고 늘어선 술집들은 더욱 오색 찬란하였다. 특이한 건 단청한 난간이 처마 밖으로 나와 있어 여름 장마를 겪었을 텐데도 단청빛이 퇴색하지 않은 점이었다.
277) 강가에 거주하던 민가 몇 백 호가 지난해 몽고의 습격을 받아 다들 아내를 잃고 몇 리 밖으로 옮겨 갔다고 한다. (몽고의 침략)
(하)(20220109- 0201)
- 관내정사 (0724 - 0804)
64) 호질
- 막북행정록 (0805 - 09)
147) 주위 사람들이 위험하다고 뜯어말리면, "나랏일로 왔으니 설사 물에 빠져 죽는다 해도 그것이 내 본분이니, 다른 도리가 없네"라고 했다. (박명원)
150) "자네가 만 리 길을 마다 않고 여기까지 온 건 천하를 널리 구경코자 함이거늘, 대체 뭘 망설이는가. 만일 돌아간 뒤에 친구들이 열하가 어떻던가 하고 물어오면 뭐라 답할 텐가. 게다가 열하는 누구도 가 보지 않은 길인데, 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그냥 놓칠 셈인가"(박명원)
[연경을 구경하고 싶어 열하까지의 동행을 망설이는 박지원에게]
- 일야구도하기
184) 내 일찍이 문을 닫고 누워 가만히 이 소리들을 비교하며 들어본 적이 있었다. (여러 가지 소리) 이는 모두 바른 마음으로 듣지 못하고 이미 가슴속에 자신이 만들어 놓은 소리를 가지고 귀로 들은 것일 뿐이다.
185) 나는 이제야 도를 알았다. 명심(깊고 지극한 마음)이 있는 사람은 귀와 눈이 마음의 누가 되지 않고, 귀와 눈만을 믿는 자는 보고 듣는 것이 더욱 섬세해져서 갈수록 병이 된다. 지금 내 마부는 말에 밟혀서 뒷수레에 실려 있다. 그래서 결국 말의 재갈을 풀어 주고 강물에 떠서 안장 위에 무릎을 꼰 채 발을 옹송거리고 앉았다. 한번 떨어지면 강물이다. 그땐 물을 땅이라 생각하고, 물을 옷이라 생각하고, 물을 내 몸이라 생각하고, 물을 내 마음이라 생각하리라. 그렇게 한번 떨어질 각오를 하자 마침내 내 귀에는 강물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무릇 아홉 번이나 강을 건넜건만 아무 근심 없이 자리에서 앉았다 누웠다 그야말로 자유자재한 경지였다.
188) 열하까지 오는 나흘 밤낮 동안 한 번도 눈을 붙이지 못하였다.
- 태학유관록(0809 -14)
228) 철현이 기름에 튀겨 죽음을 당했던 일
246) 내가 찬술을 따라 오라고 했을 때 여러 오랑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고, 단숨에 주욱 들이켜는 걸 보고는 거의 기절 직전이었다.
268) 조선에선 한 번이라도 부처와 인연을 맺으면, 평생에 허물이 된다. (하사한 불상 처리 문제)
292) (기풍액) 땅덩이가 네모지다고 우기는 자는 뭐든 방정해야 한다는 대의에 입각해서 물체를 이해하려 하지요. 반대로, 땅덩이가 둥글다고 주장하는 자는 보이는 형체만 믿고 대의는 염두에 두지 않지요. 이런 의미에서 땅덩이를 보자면 형태로는 둥글고, 대의로 말하면 방정하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천원지방의 인식과 서양 과학의 충돌)(월식)
326) 야소(예수)교 이야기.
327) 저 야소교는 본래 불교의 찌꺼기를 어정쩡하게 얻은 겁니다.
- 환영도중록
372) 사신들이 번승 접견하기를 꺼려한 탓이다. (그 때문에 대우가 달라짐)
384) 우리나라 사람들의 술 배는 너무 커서, 반드시 이마를 찌푸리며 큰 사발의 술을 한 번이 들이켠다. 이는 들이붓는 것이지 마시는 게 아니며, 배 부르게 하기 위한 것이지 흥취로 마시는 게 아니다. 그러므로 술을 한번 마셨다 하면 반드시 취하게 되고, 취하면 바로 주정을 하게 되고, 주정을 하면 즉시 싸움질을 하게 되어 술집의 항아리와 사발들은 남아나질 않는다. 풍류와 운치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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