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춘천 퇴계동의 CGV에서 장률의 [경주]를 본 뒤 이 영화에 빠져 열 번 이상 시청했다. 여행을 떠나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 이 영화에서 나는 내 마음이 지향하는 바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영화의 실제 공간적 배경에 대한 관심으로 직접 경주를 찾아 영화에 나온 곳들을 찾아보기도 했다(경주라는 도시가 작은 곳이라서 영화를 찍은 곳을 대부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원래 소설가였던 장률은 홍상수의 영화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으면서도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개성을 보여준다. 가장 대표적인 차이는 홍상수가 인간의 욕망을 강조한다면, 장률은 윤리 의식에 좀 더 방점이 가있다고 할 수 있다.
2016년에 나온 [춘몽]은 재개발을 앞둔 서울의 수색을 배경으로 한 영화인데, 당시 이 부근의 한 고등학교에서 탁구 수업을 하고 있어서 특히 흥미롭게 다가왔다.
2018년에 나온 이 영화는 나온 것도 모르고 있다가 2019년도에 다운을 받아서 보았다. 전반부에 윤영(박해일)과 송현(문소리)이 군산에 들러 민박집에 묶으면서 겪게되는 이야기가 펼쳐지고, 후반부에 이들이 어떻게 해서 만났고, 어떻게 군산까지 가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관객은 전반부 내내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되고 어떻게 해서 군산에 가게 되었는지 궁금증을 자기 나름대로 여러가지 추측을 하면서 보게 된다.
이 영화를 보고 나는 군산에 가서 영화의 공간적 배경이 된 곳을 찾아보려 했으나 경주에서 그랬던 것과는 달리 실패하고 말았다(인터넷으로 자세하게 조사를 하지는 않았다). 이번에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된 것은 지난 8월에 군산에 들러 군산 또한 목포처럼 일제 강점기의 문화 유산이 많이 있고, '근대화 거리'가 형성되어 있다는 알게 되어,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근대화 거리 이곳저곳을 거닐었는데,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이 영화의 공간적 배경으로 나왔던 듯했기 때문이었다(윤영과 송현이 묶었던 민박집을 찾으려 근대화 거리를 빙빙 돌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이웃게스트하우스'가 나와 찾아보니 근대화 거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이 숙박시설이 영화의 배경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장률은 원래 목포를 배경으로 영화를 촬영하려고 했다가 자신이 생각하던 공간적 배경으로는 목포보다 군산이 더 낫다는 걸 알고는 촬영지를 군산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런데, 장률이 이 영화를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인지는 정확히 잡히지 않는다. 우선 드러나는 것 중의 하나는 주요 등장인물이 상처를 안고 있다는 점이다. 송현은 이혼의 아픔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민박집 이사장(정진영)과 그의 딸 주은(박소담)은 아내이자 어머니가 트럭에 치여 죽는 장면을 목도했다(주은은 그 트라우마로 자폐 증세를 보인다). 시인이었던 윤영의 상처는 구체적이지 않은데 폐철로 위에 누워 송현에게 "우리 어머니도 이렇게 돌아가셨다"라고 말해 자살을 암시하는 것 같기도 하며 어쨌거나 죽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군산은 어머니의 고향)이 부각된다. 윤영은 송현을 좋아하지만 송현은 그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고, 송현은 오히려 민박집 주인인 이사장을 좋아한다. 하지만 이사장은 또 송현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다. 게다가 자폐증이 있는 주은이 윤영에게 관심을 가진다(윤영과 주은이 배를 타고 섬에 가는 장면은 다소 비현실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결국 윤영 혼자 서울로 올라오는 것으로 전반부(시간적으로는 마지막)는 거의 끝을 맺는다.
또 하나 이 영화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윤영이 처음 보는 사람에게 '우리 어디선가 만난 적 있지 않나요?'라고 되풀이 해서 묻는 부분이다(송현 또한 민박집 이사장을 처음 보았을 때 이 말을 한다). 인간과 인간이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송현을 다른 사람과 착각한 조선족 여인처럼 인간 인식의 불확실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면서 그것은 인간의 근원적인 상실감 혹은 그리움과 이어진다. 이 상실감이 새로운 대상을 만나면 활성화되지만 결국에는 채워질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하면 너무 도식적이리라.
영화의 후반부는 윤영과 송현이 어떻게 해서 가까워졌고, 또 어떻게 군산으로 가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영화는 이 두 사람의 연애 이야기가 중심축인 듯하지만 흔히 조선족이라고 부르는 중국 동포, 그리고 민박집 주인을 비롯하여 군산에서는 한국으로 온 재일 교포 등 한민족이지만 외국인으로 한국에서 차별을 당하거나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거기다, 부제인 '거위를 노래하다'는 또 어떤 의미인지 애미하다. 당나라의 시인인 낙빈왕이 7살 때 지은 것으로 알려진 이 시 또한 영화에서 윤영이 춤까지 곁들여 가면서 보여주는데 무슨 의미인지 구체적으로 못박기는 어렵다.
거위야 거위야 거위야
굽은 목으로 하늘 향해 노래하네
흰 깃털 푸른 물에 떠다니고
붉은 발바닥으로 맑은 물결 일으킨다
우리의 삶이 하나의 의미로 수렴될 수 없듯이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인물들의 모습을 담아내는 동시에 일상에서 부딪히게 되는 다양한 장면들의 제시를 통해 우리의 삶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하고 있다. 거기에는 이미자의 오래된 노래 '님 떠난 군산항'도 있다.
정든님 떠나가신 군산항구에
끝이없는 뱃길따라 노을만 진다
언제다시 만나자는 기약도 없이
천리만리 가고없는 미운사람을
그리워도 보고파도 만날길 없네
달뜨는 저녁바다 군산항구에
님도없는 선창에는 바람만 차다
마음깊이 사모치는 추억만들고
천리만리 떠나가신 미운당신을
잊으려고 맹세해도 잊을길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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