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겨울밤이면 무덤 같은
밥그릇을 아랫목에 파묻어두었습니다
내어린 발은
따뜻한 무덤을 향해
자꾸만 뻗어나가곤 하였습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배고픔보다 간절한 것이
기다림이라는 듯이
달그락달그락 하는 밥그릇을
더 아랫목 깊숙이 파묻었습니다
밥그릇은 내 발이 자라는 만큼
아랫목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내 발이 아랫목까지 닿자
나는 밥그릇이 내 차지가 될 줄 알았습니다
쫓길데가 없어진 밥 그릇은
그런데 어느날부터 보이지 않았습니다
봄이 되자 나는 밥그릇에 대한
미련이 사라졌습니다
설령 밥그릇이 있다 해도
발이 닿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나는 이미 어른이 되어 있었습니다
밥그릇의 따뜻한 온기보다 더한
여름이 내 앞에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쉽게 시골 소년에게 열리지 않았 습니다
사나운 잠에 떠밀리다
문지방에 어른 거리는 것이 있어
방문을 여니.
해당화꽃 그늘 이었습니다
뿌리에서 부터 막 밀고 나온듯,
묵은 만큼 화사해진다는 처음 꽃핀,
삼년생 해당화 붉은 꽃이였습니다
거기에 어느새 늙은 어머니가 계셨습니다
저녁 바람에 달그락거리는 밥그릇 처럼
해당화꽃 그늘 속에 서계신
어머니는 허리가 굽은 노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꼭 가슴에서 무언가를 꺼내느라
열중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사라졌던 밥그릇은 어머니의 가슴속에
묻혀가고 있었던 것 입니다
늙은 어머니의 손에서 떠난 그 작은 무덤들이
붉디붉은 꽃으로
환하게 피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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