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시 및 감상

박형준 - 해당화

by 길철현 2023. 5. 23.

어머니는 겨울밤이면  무덤 같은

밥그릇을 아랫목에 파묻어두었습니다

내어린 발은  

따뜻한 무덤을 향해

자꾸만 뻗어나가곤 하였습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배고픔보다 간절한 것이

기다림이라는 듯이

달그락달그락 하는 밥그릇을

더 아랫목 깊숙이 파묻었습니다

 

밥그릇은 내 발이 자라는 만큼

아랫목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내 발이 아랫목까지 닿자

나는 밥그릇이 내 차지가 될 줄 알았습니다

쫓길데가 없어진  밥 그릇은 

그런데 어느날부터 보이지 않았습니다

 

봄이 되자 나는 밥그릇에 대한

미련이 사라졌습니다 

설령 밥그릇이 있다 해도

발이 닿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나는 이미 어른이 되어 있었습니다 

밥그릇의 따뜻한 온기보다 더한

여름이 내 앞에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쉽게 시골 소년에게 열리지 않았 습니다

사나운 잠에 떠밀리다

문지방에 어른 거리는 것이 있어

방문을 여니.

해당화꽃 그늘 이었습니다

뿌리에서 부터 막 밀고 나온듯,

묵은 만큼 화사해진다는 처음 꽃핀,

삼년생  해당화 붉은 꽃이였습니다

 

거기에 어느새 늙은 어머니가 계셨습니다

저녁 바람에 달그락거리는 밥그릇 처럼

해당화꽃 그늘 속에 서계신 

어머니는 허리가 굽은  노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꼭 가슴에서 무언가를 꺼내느라

열중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사라졌던 밥그릇은 어머니의 가슴속에

묻혀가고 있었던 것 입니다

늙은 어머니의 손에서 떠난 그 작은 무덤들이

붉디붉은 꽃으로 

환하게 피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