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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 및 감상

유용주 - 닭 이야기

by 길철현 2023. 5. 23.

울 아부지 없는 살림 경영하시느라 늘 스님들 공양 드셨는데요(요즘 말로 하자면 타잔이 정글에서 먹는 거와 비슷한) 무슨 바람이 불었나 어머이 몸 보하신다고 집에서 기르던 씨암탉, 눈 질끈 감고 그만 열반에 들게 하셨는데요 그 시절 귀한 인삼도 한 뿌리, 대추와 마늘과 찹쌀을 넣고 푹 고아서 말이죠 우선 기름 동동 뜨는 국물에 밥 말아 아 어여 먹어 내 걱정일랑 붙들어두고 슬며시 뒷짐지고 외양간 가는 척 넘어가는 산그리메 바라보시고 혹 손님 탈까 큰 돌 하나 묵지근하게 솥뚜껑에 올려놓고 짧은 여름밤 가을 농사 걱정이 많으셨대요 감나무 몇 그루로 경계 삼아 대문 없는 집 가축과 벌레와 함께 초저녁 잠 달게 주무시고 자리끼 찾아 막 일어서는데 어허 이 이 놈의 손・・・・・・솥뚜껑 여는 소리가 ・・・・・・살며시 문 열고 지겟작대기 꼬나잡은 아부지 손목 바람맞은 째보아재처럼 마구 떨리는데, 장골에 담력 크기로 소문난, 궂은 산판일 상머슴들도 못 진 재목 다 져 나르셨다는 아부지, 험한 세상 만나 보국대로 두 번이나 왜놈들에게 끌려가 막장에서 삶과 죽음을 몇 번씩 건너갔다 온 울 아부지, 아주 짧고 둔중한 비명소리 크어억! 잠결에 속적삼 바람으로 먼저 달려 나간 건 우리 어머이, 한번 잠에 빠지면 구신이 떠메가도 모르는 아들녀석은 눈곱도 못 떼고 어리둥절하는데 손은 손인디 두 발 달린 손님이여 내 간 떨어진 거 정지에서 주워 왔는가 자네 날 밝으면 국 한 사발 넉넉하게 말아 옆집 공님이 엄마 갖다 주소 지금 한참 돌이라도 삼키고 싶을 때 아닌가 차암 이번에는 아들어야 최 주사도 손을 이을 텐데 흠흠 또 풍년초를 두툼하게 말아 구수하게 내뿜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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