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는 심장에, 이야기는 뇌수에 박힌다.
처용이 밤늦게 돌아와, 노래로써
아내를 범한 귀신을 꿇어 엎드리게 했다지만
막상 목청을 떼어 내고 남은 가사는
베개에 떨어뜨린 머리카락 하나 건드리지 못한다
하지만 처용의 이야기는 살아남아
새로운 노래와 풍속을 짓고 유전해 가리라.
정간보가 오선지로 바뀌고
이제 아무도 시집에 악보를 그리지 않는다
노래하고 싶은 시인은 말 속에
은밀히 심장의 박동을 골라 넣는다.
그러나 내 격정의 상처는 노래에 쉬이 덧나
다스리는 처방은 이야기일 뿐
이야기로 하필 시를 쓰며
뇌수와 심장이 가장 긴밀히 결합되길 바란다.
정간보(井間譜) 조선 세종 때에, 소리의 길이와 높이를 정확히 표시하기 위하여 만든 악보. ‘井’ 자 모양으로 칸을 질러 놓고 율명(律名)을 기입하였다.
'한국시 및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송찬호 - 김(金)사슴 (0) | 2023.05.25 |
---|---|
송찬호 - 기린 (0) | 2023.05.25 |
김지하 - 무화과 (0) | 2023.05.23 |
유용주 - 닭 이야기 (0) | 2023.05.23 |
백석 - 여승 (0) | 2023.05.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