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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 및 감상

송찬호 - 김(金)사슴

by 길철현 2023. 5. 25.

 어쩔 수 없이 그 타고난 이상으로 하여

  최초로 머리에 뿔이 있었던 사람

  사슴의 신분으로 태어나

  사자의 학교를 다니고

  평생을 가둔 우리와 싸운 사람

  그 유별난 이름으로 김사슴이 아닌

  화려한 금사슴으로 종종 오인되곤 하던 사람

  결국 그 뿔의 영광으로 하여

  사냥꾼들의 표적이 되었던 사람

  만년에는 산으로 돌아와

  나무와 벌레와 들꽃의 뿌리에

  사슴의 똥을 나누어주었던 사람

  어이 거기 누구신가, 거긴

  또 누구신가 ─ 되돌아오는 메아리를 벗삼아

  사슴의 민둥산에

  도토리 알을 심어나가던 사람

  어느 가을날 문간에 앉아

  그리운 사람의 편지를 읽다

  추적자들의 납탄알을 맞고

  쓰러져간 비운의 운명, 金사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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