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세상 뜨시고
몇 달 뒤에 형이 죽었다
천둥 벼락도 불안 우울도 없이
전화벨이 몇 번씩 울었다
아버지가, 캄캄한 형을 데려갔다고들 했다
깊고 맑고 늙은 마을의 까막눈들이
똑똑히 보았다는 듯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다른 손을 빌려서
아버지는 묻고
형은 태웠다
사람이 떠나자 죽음이 생명처럼 찾아왔다
뭍에 끌려나와서도 살아 파닥이는 은빛 생선들
바람 지나간 벚나무 아래 고요히 숨쉬는 흰꽃잎들
나의 죽음은 백주 대낮의 백주 대낮 같은
번뜩이는 그늘이었다
나는 그들이 검은 기억 속으로 파고 들어와
끝내 무너지지 않는 집을 짓고
떵떵거리며 살기 위해
아주 멀리 떠나 버린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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